HOME                로그인

병원사목을 하며
“다음주는 안 됩니다!”


글 이종민 마태오 신부 | 교구 병원사목부 담당

 

제가 형제님을 처음 뵌 것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서 다시금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입니다. 암을 앓고 있다고 하셨지만 처음 만났을 무렵만 해도 형제님은 별 무리 없이 이야기를 하시고 함께 기도도 하셨습니다. 매주 봉성체를 했는데 형제님을 뵐 때마다 ‘기다리셨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봉성체를 갈 때마다 형제님의 몸이 점점 마르고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형제님에게 마지막으로 봉성체를 갔던 날, 형제님은 힘없이 지친 모습으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뜨지도 못한 채 누워 계셨습니다. 당연히 말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숨을 몰아쉬는 형제님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영성체를 못하시겠구나. 힘들어 보이시는데 오늘은 조용히 기도만 하고 돌아가야겠다.’하고 혼자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형제님 옆에서 조용히 주모경을 외우고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그리고 병실 문을 나서려는데 온 힘을 짜내어 저를 부르시는 형제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다음주는 안 됩니다!” 형제님의 목소리를 듣고 황급히 되돌아 들어갔더니 형제님은 힘들게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뜨고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제가 “영성체를 하시겠어요?” 하고 여쭈었더니 형제님은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래서 주위에 둘러선 가족들과 함께 기도로 영성체 준비를 하고 형제님은 영성체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다시 “다음주에 뵙겠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틀 뒤, 다음주에 또 뵐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저의 기대를 뒤로 한 채 형제님은 돌아가셨습니다. 형제님은 이웃들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면회는 거절하셨지만 봉성체는 늘 기다리셨습니다. 스스로의 상태를 잘 살피셨던 모양입니다. 되돌아보면 ‘형제님은 자신의 죽음을 조용히 준비하시면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형제님의 모습을 보면서 종말론적인 삶에 대한 묵상을 눈앞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종말론적 삶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종말이 있음을 믿고, 그 종말에 비추어 오늘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때를 기다리는 자세로 지금 깨어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는 자세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깨어 준비하는 것입니다.(마태 24,42 참조)

환자들이 보내고 있는 지금의 시간은 고통과 두려움을 헤쳐 나가는 시간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부정하고 하느님께 화를 낼 때도 있습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하느님께 매달려 기도하기도 합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모두 의미 있는 시간들입니다. 환자들의 그 힘든 시간 전체가 예수님을 만날 준비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환자들에게는 매 순간이 깨어 있는 시간인 것입니다.

원조들의 범죄로 고통과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을 예수님께서 열어주셨습니다. 고통과 죽음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그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나, 시간이 왜 이렇게 안가나.’하면서 때로는 바쁘게, 때로는 지겹게 그저 흘러가는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돌아봅니다. 예수님을 만날 준비를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돌아봅니다. 다음으로 미루고, 다음주 만남을 기대하는 나에게 “다음 주는 안 됩니다!”라고 불러 세우시는 형제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지금의 매 순간이 깨어 있는 시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