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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신앙
“먼저 사랑하고, 모두를 사랑하고…”


글 정효근 스테파노 | 성정하상성당, 포콜라레 운동 정회원

 

한 번은 근무하던 회사에서 기획실 내의 다른 부서로 이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동하게 될 부서의 부서장은 업무에 관해 서는 대내외적으로 최고의 능력자로 인정받았지만 업무 진행에서 담당자의 자율성보다는 본인이 모든 내용과 스케줄을 완벽히 통제하는 스타일이라 부서원들이 매우 힘겨워하는 분이었고, 특히 프로젝트 진행시에는 직원들이 자신의 사생활까지도 통제받는다고 불만을 터뜨릴 만큼 업무 주도력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분과의 관계 때문에 부서원의 잦은 이동과 퇴직이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처음 이동이 결정되었을 때는 인간적인 걱정이 앞섰지만 선입견을 갖지 않고 의욕적으로 열심히 해 보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겪어보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만만치 않은 업무보다 더 큰 어려움은 진행하고 있던 제 업무의 긴급성에 대한 배려가 없는 부서장의 잦은 호출과 부서장이 지시한 업무를 최우선적으로 처리하다 보니 쌓이는 긴급 업무들을 처리하느라 가중되는 업무 스트레스였습니다. 게다가 업무 보고 때마다 견해차가 있을 경우에는 과격한 언어 표현으로 인한 인격적인 모욕감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저 사람 밑에서 견디면 세상 다른 어떤 사람 밑에서도 견딜 수 있겠다.’는 인간적인 오기로 버텨 보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의지는 점점 꺾이고 비상구 계단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한숨짓는 일이 많아졌고 속이 상해 눈물을 흘린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어느 책 속에 꽂아 둔, 예전에 마음에 두고 살던 성경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너희가 만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루카 6,32) 저는 이 말씀을 다시 살아보리라 결심하고는 기도로 제가 부서장을 잘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것과 그분에게 자애로운 마음을 주실 것을 청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대할 때는 존경의 눈빛을 갖고자 노력하며 모든 일의 우선 순위를 부서장의 업무에 맞추었습니다. 부서장과의 대면 후 괴로워하며 나오는 동료에게는 차 한 잔을 건네면서 동병상련의 말과 미소를 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매일매일 그분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하나 배워간다고 마음을 고쳐먹었고, 제 의견이 무시당할 때는 기꺼이 제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렵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스스로 지고 가신 예수님의 십자가에 비해 제 십자가는 아주 작고 가볍다고 생각하며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일이 늘어나고 미뤄진 일을 밤늦게까지 하는 빈도가 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 기쁨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했던 사람을 기꺼이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제 안에 존재했던 미움이 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저에 대한 그분의 태도가 바뀌었고 업무 지시는 마치 아우를 가르치듯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저 또한 딱딱하고 사무적인 표정 뒤에 감춰진 그분의 인간적인 따뜻함과 장점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고,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부서에서 웃음소리가 늘어나고 분위기도 아주 밝아졌습니다.

어느 날 뜻밖에 부서장이 회사의 환리스크 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한 사업추진 보고를 독자적으로 수행해 보라는 제안을 하였고, 없는 능력이지만 최선을 다해 프로젝트를 마무리했습니 다. 프로젝트 수행 보고가 끝나고 부서장이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대표이사께서 그 일로 부서장을 크게 치하한 사실을 알려주며 개인적으로 저에게 자랑스럽다고 말해 주었을 때는 백배의 상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포콜라레 운동에서는 매월 성경말씀 한 구절을 삶으로 실천하고자 하는데, 이것을 “생활말씀”이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 생활말씀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6,47) 인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므로 삶의 여러 가지 상황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그분의 말씀을 열성껏 실천하라고 권고해 주었습니다. 이 구절을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내와 마트에 가던 중 전날 미사 강론 중 들었던 모니카 성녀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깊이 공감하던 아내가 자신의 기도생활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마도 그것 때문인지 주일 늦은 밤, 아내가 “내일 새벽미사에 갈까?” 하고 얘기했습니다. 새벽에 운동하고 서둘러 출근하려던 계획이 있었지만 아내와 함께하고자 미사에 참례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자고 있는 저를 두고 혼자 새벽미사를 가려고 준비하는 아내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날 아침 저의 계획을 알고 있던 아내가 저를 배려하여 혼자 미사에 가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서둘러 준비를 마쳤습니다. 함께 미사에서 돌아오면서 아내의 사랑과 저의 작은 사랑이 서로 응답함을 느꼈고 우리 가족의 기도생활에 대해서도 함께 얘기하면서 행복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던 작은 경험이었습니다. 요즘 본당활동과 신앙생활에 전에 없이 열심인 아내를 보며 하느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주변의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할 때 “저 자신”이 무언가 큰일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의 주체는 “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랑의 주체는 세속적인 것에 쉽게 빠지는 나약한 저를 너무 잘 아시고 사랑하셔서 저를 위해 끊임없이 사랑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계시는 “하느님”이신 것 같습니다. 매 순간 “사랑할래?”라고 물어 보시는 하느님께 저는 단지 너무나 가끔 “네”라고 답할 뿐입니다. 아픈 아이, 늦둥이 셋째 끼아라 루체를 보내주심에 특별히 감사드리며,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작지만 더 많은 “네”를 드리며 살기로 다시 결심해 봅니다.

* 2회에 걸쳐 좋은 글 써주신 정효근 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