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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 피정을 다녀와서
7박 8일 통독피정을 끝내고


글 김동말 요셉피나 | 주교좌범어대성당

 

2018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새해계획을 세우면서 올해는 꼭 성경통독을 하리라고 마음먹었었는데 1월에는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온다고, 2월에는 구정이 있어서, 3월에는 직장 일이 바빠서, 그리고 그 다음 달에도 역시나 핑계 아닌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나에게 7박 8일 동안 성경통독 피정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일정을 보니 마침 직장에서 휴가를 가기에 괜찮은 시기여서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참가하겠다는 답장을 보내면서 그 날부터 피정에 갈 수 있게 해주십사 하는 기도를 드리다가 나는 꼭 갈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파동에 위치한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의 중후한 문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부터 8일 동안 세상일은 다 잊고 말씀 안에서 살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지도 수녀님의 안내로 성경읽기가 시작되었다.

 

6월 30일

오늘의 읽기는 창세기부터 여호수아기까지. 쪽수를 먼저 보니 460페이지, 조금 두꺼운 책 한 권이다. 이걸 오늘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내 생각을 수녀님께서 아셨는지 읽을 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냥 시작하라고 하신다. 그냥 읽기보다 난 마음에 다가오는 말씀을 쓰기 위해서 노트를 준비했고 거기다가 말씀을 써 보았다. 창세기 18장 14절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지금 바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 같아서 마음을 비우고 계속 읽는데 다시 탈출기 4장 12절 “네가 말할 때 내가 너를 도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 통독피정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나의 응답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7월 1일

어제 다 읽지 못한 부분을 이른 새벽에 읽고 오늘은 역대기 하권까지가 주어졌다. 오늘 주님께서는 사무엘 하권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라는 말씀을 주셨다.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온 것이 그냥 나에게 주어진 것이고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돌아보니 순간순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함께하셨는데 왜 그걸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지….

 

7월 2일

시편까지 읽으라고 하셨는데 왠지 읽는 데에 부담이 되지 않고 그냥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고, 마음이 편해서 낮잠까지 자면서 여유를 부렸다. 욥기 2장 10절의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하지 않겠소?” 욥기 5장 18절 “그분께서는 아프게 하시지만 상처를 싸매 주시고 때리시지만 손수 치유해 주신다네.”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늘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지만 결국 나 중심으로 살고 있지,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지 못했구나. 그래서 이렇게 필요할 때 필요한 말씀으로 나를 일깨워 주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시는구나.’라는 걸 깨닫는 소중한 날이었다.

7월 3일

집회서 19장 6절 “혀를 절제하는 이는 갈등 없이 살고 뜬소문을 싫어하는 이는 잘못을 덜 저지르리라. 절대로 말을 옮기지 마라.”는 말씀을 주셨다.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남의 말을 하고 말을 옮기고 거기다 자신의 생각까지 첨가하여 살아가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무심결에 내뱉은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부끄러워졌다.

 

7월 4일

오늘은 구약성경 읽기가 끝나는 날이다. 분량이 엄청났지만 구약의 말씀이 달게 느껴지기 시작하였고 성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특히 아모스! 나 역시 아모스 예언자처럼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신자인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하느냐고 신부님이나 수녀님께 못 하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서 부끄러웠다. 한편 지금껏 25년을 가톨릭 신자로 살아오면서 구약의 말씀이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낀 적이 또 있었을까 할 정도로 그날의 말씀이 내 마음에 다가왔으며 많은 성경 구절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7월 5일

매일 미사에 참례하면서 평소 신약성경을 좀 읽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복음서는 좀 빨리 읽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는데, 구약성경보다 더 진도가 나가지 않고 금방 읽은 부분도 잊어버려서 다시 읽으면서 계획은 내가 세우지만 실행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말씀을 생각하였다. 계속 되는 장마로 창밖으로 보이는 산은 운무가 가득했고 그 운무 속에서 공관복음서에서 말씀하시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는 주님의 말씀이 금방이라도 들릴 것 같았다. 특히 오늘은 마태오 복음 12장 36~37절 “사람들은 자기가 지껄인 쓸데없는 말을 심판 날에 해명해야 할 것이다.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의롭다고 선고받기도하고,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단죄받기도 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강하게 나의 마음속에 박혔다.

 

7월 6일

사도 바오로는 왜 이렇게 많은 편지를 써서 서간은 읽어도 읽어도 끝이 나지 않느냐고 살짝 불평을 하였는데 야고보서를 읽으면서 불평을 한 나 자신이 죄송스러워서 ‘주님, 아침에 한 불평을 취소해주세요.’라고 화살기도를 바쳤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미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같은 입에서 찬미와 저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7월 7일

오늘은 통독이 끝나는 날이다. 점심식사 전에 통독을 마치고 8일 동안 노트에 쓴 말씀들을 살펴보니 유난히 말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려주셨고, 그 말씀들은 지금까지의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진짜로 매일 많은 말을 하면서 진짜로 필요한 말보다 필요 없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며 살고 있는지, 음식의 단식이 아니라 말의 단식을 통하여 자신을 정화시켜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예레 15,16)라는 말씀을 수녀님께서 내가 사용하는 방문 입구에 붙여 놓으셨는데 진짜 말씀이 기쁨이 되고 즐거움 이 되는 은총의 시간이었다.

특히 이번 통독을 통해서 모세가 말솜씨가 없고 입이 무디고 혀도 무디다고 할 때 주님께서 도와 무슨 말을 할지 가르쳐 주겠다고 하시고, 그래도 제발 보내실 만한 사람을 보내라는 모세에게 아론을 대변인으로 세워주시고,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이사야의 입술에 닿게 하여 그의 죄를 없애주시자 자신을 보내달라고 아뢰는 이사야를 만났고, 아이라서 말을 할 줄 모른다는 예레미야에게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며 당신 손을 내미시어 그의 입에 대시며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고 하시는 주님. 그 밖에도 많은 판관들과 예언자들에게 주님 친히 보여 주신 사랑의 말씀을 나에게 직접 들려주시는 것 같은 은총의 시간을 보내고 이런 소중한 시간을 허락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끝으로 오늘 새벽미사에서 예레미야 예언서 15장 16절이 봉독될 때 나에게 사랑을 이렇게 고백하시는 그 사랑에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