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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의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 이야기
마르지 않는 우물, 희망의 목장


글 김동진 제멜로 신부 | 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 주임

 한국을 떠나 지금까지의 여정은 참으로 멀고도 험난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미국 LA를 경유해 칠레 산티아고에 도착한 다음, 환승을 위해 기다리고 있던 중 갑자기 볼리비아의 스테파노 보좌신부님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신부님, 저 지금 치와와 주유소인데요. 차량사고가 났습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구요.”

본당 청소년 사목을 맡고 있는 최용석(스테파노) 신부님의 차량이 운행 중에 사고가 난 것이었습니다. 100킬로미터가 넘는 비포장길,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 정비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지면과 갑작스럽게 나타난 큰 웅덩이 등등 늘 사고의 위험은 다분했습니다. 저의 휴가로 두 사람 몫의 일을 하며, 미국 의료팀을 도시 공항에 데려다주고 주일미사 봉헌을 위해 급히 밀림 속 본당으로 돌아가다 난 사고여서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자동차만 파손되고 운전자와 동승자는 아무도 다치지 않아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국에서의 모든 일들이 순조로웠던 반면, 이곳 선교지에 돌아온 후의 지난 5개월의 여정은 시작부터 복잡한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특별히 크게 다친 곳은 없지만 간단한 검사를 받기 위해 보좌신부님을 도시에 두고, 본당으로 돌왔습니다.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기간이 길지 않지만 그래도 1년여의 기간을 두고 할 예정이어서 여유있게 시작하려고 생각 중이었고, 교회 주도(主導)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투명성이 보장되기에, 사회간접자본 사업이지만 본당이 주체가 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착해서 프로젝트의 상황을 알아보니 무언가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인디오 시정부는 처음의 이야기와 달리 주정부의 사업을 받아 이미 독일업자와 계약을 맺었고, 착공기마저 마을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주정부 예산이 부족하니 교회가 독일업자와의 옵션계약을 맺었으면 하고 제게 제안을 해왔습니다. 부정부폐가 만연해 있는 곳이라 먼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치열한 머리싸움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인구 7000명 정도의 작은 사회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라 커다란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육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순박한 사람들과 교육을 받고 마을을 위해 일하는 사람,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마을을 착취하는 사람 등 여러 인간 군상들이 존재합니다. 한국에 있었으면 절대 경험해보지 못했을 정치, 사회의 이면들과 때로는 마을의 최고권위자 중의 하나로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올바른 판단을 위해 노력하며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싸움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늘 놓여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습니다. 도대체 그들 계약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왜 갑자기 저의 대답과 모금 결과를 알기도 전에 일을 급하게 추진한 것일까? 수많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감춰진 사실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교회 주도의 사업이 아니었기에 독일계 회사가 마을에 기계를 가지고 착공하러 들어온 며칠 후에야 업체의 현장 감독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인사를 하기 위해 현장에 들렀더니 이상하게 낯이 익은 장비들이 있었고, 현장 감독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작년에 본당의 우물 착공으로 인해 알게 된 브라질계 지하수 업체의 현장 책임자 돈 오라시오라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돈 오라시오, 어떻게 된 겁니까? 또 만나게 되어 반갑네요. 이직하신 건가요? 독일인 회사에 들어가신 건가요?” 그러자 사람 좋은 돈 오라시오가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자신들은 독일인들이 하도급 계약을 맺어서 온 것뿐이고, 물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미터당 얼마를 받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그 독일 사람들은 중간업자일 뿐 지하수개발 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정보를 주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섭리는 오묘하신 게 산타크루즈의 수많은 지하수 개발업체 중에 하필 그들은 저희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브라질계 회사와 하도급 계약을 맺었던 것입니다.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인디오 시정부와 마을, 교회의 모든 것이 얽혀 있어 모든 사실이 다 확연하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단 물이 나오는 것이 목적이고, 이미 일을 시작하고 있었기에 일단은 지켜보자는 심정으로 상황을 주시했습니다.

2주일이 지난 어느 날 파티마 공동체의 학교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착공기와 컴프레셔를 실은 대형차량들이 줄지어 마을에서 나오는 것을 길에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기계가 철수하는 이유는 단 두 가지뿐입니다. 지하수를 찾았거나, 지하수 찾기를 포기했거나. 그 전주까지도 지하수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먼저 급하게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현장 책임자 돈 오라시오를 불러 물을 찾았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신부님! 물이 나오긴 했지만 많지 않은 수량입니다. 하루 1톤도 안 될 겁니다. 120미터까지 팠는데, 더 파면 나올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이 진행비조차 주지 않아 디젤 살 돈도 없어 거의 1주일간 기계를 세워 놓았습니다. 회사에 문의하니 철수하라고 해서 소득없이 철수 하는 길입니다.”

저의 마음은 급해졌습니다. 교회가 주도로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구두로나마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하였고, 도시와 멀리 떨어진 거리 때문에 중장비를 불러 오는데 많은 비용과 힘이 들기 때문에 일단 들어온 장비를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인디오 시장과 정부관계자들에게 연락을 해야 했습니다.

일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큰 책임자인 인디오 시장을 찾고 있던 중, 웬걸 정말 한국 아침드라마에 나올 법한 막장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가장 일선에서 이 큰 프로젝트를 조율하고 지휘해야 하는 인디오 시장이 불륜으로 인해 처남과 폭력사건을 벌이고 내연녀와 도시로 도망을 갔다는 것입니다. “오, 하느님 맙소사!”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12월 호에 계속)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 후원

대구은행 505-10-160569-9 재)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조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