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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가톨릭다운 사랑실천을 위한 독립성(Independence)


글 도건창 세례자요한 | 꽃동네대학교 카리타스학 교수

 더 많은 사람의 참여 대 더 적은 기회를 가진 사람의 참여, 일하는 보람과 더 많은 임금?

5년 전 교구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모색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장애 때문에 일반 직장에서 일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곳이다. 일하는 장애인의 필요에 따라 임금을 통한 소득 보장에 중점을 두는 시설도 있고, 직업생활을 위한 재활과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시설도 있다.

세미나의 중심 이슈는 첫째로 ‘장애를 겪는 사람의 노동권과 삶의 질을 보장하는 복지성과 직업재활시설 근로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기 위한 경제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당시 현황조사에 따르면 대구대교구 가톨릭 직업재활시설이 근무하는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직업훈련 및 여가시간 프로그램 수는 전국 평균보다 높았지만 임금 수준은 평균보다 낮았다.1) 당시 우리나라는 1997년 환율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일자리 창출에 정책적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장애인직업재활사업도 일자리 제공을 통한 소득보장에 더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었다. 당연히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을 평가하는 데에서도 수익 창출이 더 강조되었다. 정책방향의 전환은 이해할 수 있고 필요했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일자리가 부족하고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생산품에 관한 사회의 관심이 낮아 판로가 제한된 상황에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리려면 장애를 겪는 개인의 노동 능력 향상보다 관공서나 회사에 납품할 수 있는 물품을 자동화된 기계로 생산하는 것이 유리했다. 그러면 장애를 겪는 사람은 자동화 공정의 보조자 역할을 주로 하고 생산과정에 직접 참여할 기회는 줄어든다. 소득은 올라가지만 일하는 사람으로서 보람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그런데 가톨릭 사회교리는 노동을 “개인의 본질적인 표현이며, ‘인격적인 행위’(actus personae)”(『간추린 사회교리』 271항)로 보아 작업의 성과보다 작업이 당사자에게 가지는 의미와 미치는 영향을 중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 가르침을 구현하려면 우리 교구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 다니는 장애를 겪는 사람은 더 낮은 임금을, 시설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감수해야 했다. 여기에 첫 번째 고민이 있었다.

 다음으로 ‘어떤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위 조사에 따르면 교구 내 가톨릭 직업재활센터의 평균 참여자 수와 중증장애를 겪고 있는 참여자 비율은 평균보다 높았다. 그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해온 장애인주거시설 주민을 대상으로 직업재활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애인복지정책 중심이 시설에서 보호하는 것에서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가정에서 살고 있는 장애인을 위한 직업재활 기회를 넓히는 것이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려면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그러려면 근로능력이 나은 경증장애를 겪는 사람을 더 채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을 시작한 취지인 시설 거주 중증장애인의 참여기회가 줄어들 수 있어 상대적으로 더 적은 근로기회를 가진 그들을 또 한 번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노동은 인간에게 “하나의 책임이며 의무”(『노동하는 인간』 16항; 참조 『간추린 사회교리』 274항)이기에 모든 사람이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나아가 “장애인들에게도 그들의 능력에 따라 노동이 주어질 수 있다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목표는 인격체로서, 노동의 주체로서 그들의 존엄성이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회칙 『노동하는 인간』 22항)라고 했다. 또 모든 사회구성원이 서로에게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보는 연대성 원리에 따라 근로기회가 적은 사람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법규와 문화를 요청한다. 더욱이 가톨릭교회 사랑실천(Caritas)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원칙에 따라 일할 권리를 보장받을 기회가 더 적은 중증장애를 격고 있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 어디에서 균형점을 찾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해 갈 것인가 하는 것이 두 번째 이슈였다.

 

사회나 국가의 요구와 가톨릭교회 가르침 사이에 긴장이 생길 때, 교회 사랑실천(Caritas)이 독립성 원칙를 지키려면 요구를 식별할 눈, 판단을 실천할 용기, 이를 이루어 낼 교회 공동체의 협력과 전문 역량이 필요하다.

요즘 거의 모든 가톨릭 사회복지 시설·기관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으며 국가 사회보장체계 안에서 인간 존엄성을 위협받는 사람을 돕고 있다. 가톨릭 사회복지 시설·기관이 모든 사람의 복지 증진을 위해 공공복지에 능동적,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예산 지원 때문에 공공복지의 맹목적 심부름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앞에서 보았듯이 때때로 가톨릭교회 사랑실천조직(Caritas)은 사회나 국가의 요구와 고유한 가치나 이념 사이에 고민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국제카리타스윤리강령은 ‘독립성(Independence)’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카리타스 회원기구인 우리는 스스로 “운영의 우선순위와 프로그램을 결정하며, 국내외의 경제적·정치적 이해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부합하지 않을 때에 그러하다.”(『국제카리타스윤리강령』 원칙 중 ‘독립성’)

 

 

독립성 원칙을 실제로 지켜 나가려면 가장 먼저 면밀한 식별이 필요하다. 면밀한 식별은 다음과 같은 절차로 이루어진다. ①문제 상황과 그 원인은 무엇이며, 그 문제와 관련된 개인이나 집단은 누구이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어떤 과학적 방법을 사용해야 할지 살펴야 한다. ②가톨릭교회 가르침에 근거해 ‘더 인간다운 삶’, ‘더 인간다운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그런 모습을 이루기 위해 무슨 목표를 달성해야 할지 연구하고 생각해야 한다. ③각 목표가 가져올 좋은 점과 문제점을 저울질하고 더 작은 희생으로 같은 목표에 이를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한다. ④어느 목표에 더 우선순위를 둘지 결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할 방법이 의도한 결과를 가져 올지, 또 무슨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⑤그렇게 내린 판단과 그것이 요구하는 행동규범을 모든 관계자가 받아들일 만한지 확인해야 한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용기다. 사회와 국가의 요청은 어떤 형태로든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 사랑실천 조직이 함께 용기 있는 행동을 하려면 위에서 설명한 식별 과정을 함께 공유하고, 이해하며, 공감하고 확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할 때 가톨릭교회 사랑실천조직(Caritas)이 공동으로 자신의 예언자적 소명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용기 있는 결단은 지지와 지원을 필요로 한다. 가톨릭교회 전체가 함께해 주지 않으면 독립성 유지를 위한 어떤 시도도 성공하기 어렵다. 사회와 국가의 압력이 거셀수록 더 그렇다.

마지막으로 독립성 원칙을 지켜 나가는데 필요한 것은 전문 역량이다. 아무리 면밀하게 식별하고 용기 있게 결단해도 그것을 구현해 나가는 절차와 방법에 관한 전문 지식과 기술, 협력할 개인이나 집단과 소통하고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 없으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이 네 가지는 가톨릭교회의 사랑실천(Caritas)이 “곁에서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주체로서 교회의 본질에 부합하는 활동”(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29항)을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독립성 원칙을 지키겠다는 결단은 이 네 가지를 실현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의미한다.

 

1) 참조. 이운식, “천주교 대구대교구 장애인직업재활사업의 현황과 전망”, 대구가톨릭사회복지시설협의회, 천주교 대구대교구 장애인직업재활사업의 현황과 전망, 대구가톨릭사회복지시설협의회 : 2013, 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