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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이야기
요셉과 마리아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글 장숙희 루시아 수녀 | 민족화해위원회,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요셉과 마리아’라는 세례명은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대세(비상세례)를 베풀 때 가장 많이 주는 세례명일 것입니다. 저 또한 수많은 요셉과 마리아를 알고 있고, 대세와 조건대세를 베풀 때 항상 이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세상에서 기억해줄 사람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경우도 어떤 이유로, 또는 심한 경우에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부모와 형제,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상황의 그들을 반겨주는 곳은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정착하여 살면 더 나은 앞날을 기약할 수 있겠지만 심각한 병이 드는 경우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낯선 타지에서 부모, 형제, 친척, 친구도 없이 홀로 맞이해야 하는 임종은 보는 이들에게도 크나큰 슬픔과 고통을 줍니다.

얼마 전 하느님께로 돌아간 정 요셉은 90년대 후반 탈북하여 무수히 많은 어려움을 헤치고 몇 년 전 대한민국에 정착했습니다. 그에게는 북에 남겨진 가족이 있는데, 그 아내와 남매와는 소식이 끊겼다고 했습니다. 동료 북한이탈주민들을 통해 들은 바로는 아내와 딸은 중국으로 넘어가서 소식이 끊겼고 남겨진 아들은 도시로 떠났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면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일용직을 하며 성실히 살았던 요셉이었습니다. 그런데 노동 현장에서도 조선족 중국인이나 동남아 외국인들이 많아져서 더욱 소통이 어려웠고, 무시와 냉대는 일상화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노동은 존경받을 만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던 요셉에게는 일터 자체가 육체적으로 쇠잔케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게 만드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민족, 형제자매라고 여기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도 북한이탈주민을 무시하는 현실, 외국인 노동자보다 더 낮은 계급의 사람이 되었다는 인식은 그를 헤어 나오기 힘든 고통과 고독 속으로 밀어 넣었다고 합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은 삶의 좌표를 잃었기 때문에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일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잃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실히 일하던 요셉은 가족을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에서 벗어나고자 매일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술만 마시며 살던 요셉에게 다가온 결과는 참으로 비참하게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쓰러진 그는 큰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고, 영양실조와 함께 나타난 간의 손상이 간암으로 진행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후 가족도 없고 남은 재산도 없던 그는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 안타까운 사연은 요셉 형제의 사후 입국한 딸과의 만남을 통해 알게 되었고 우리는 한줌의 재로 남겨진 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유골함 앞에 놓여진 작은 사진, 언제 찍었는지 모를 사진 속의 그는 의외로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임종의 순간에 대세의 은총을 받은 그가 하느님의 품에 있으리라는 믿음이 우리를 덜 서럽게 해주었고 기도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 대한 지도와 전망을 갖지 않으면 여행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듯이 우리 인생 여정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길을 잃은 사람들과 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길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은 우리 신앙들에게 맡겨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임

무입니다. 하느님의 연민과 사랑, 자비는 지상과 천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희망의 문입니다.

주님, 삶과 죽음을 넘어선 통공으로 저희가 모두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은총의 길로 이끌어 주시고, 정 요셉과 세상을 떠난 모든 요셉과 마리아가 빛과 평화와 생명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2테살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