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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사목을 하며
죽음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글 정진섭 도미니코 신부 | 교구 병원사목부 담당

11월은 위령성월이죠? 위령성월이 되면 우리는 죽음에 대해 묵상합니다. 여러분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번 달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죽음과 가까이 지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생을 마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탄생의 순간과 함께 있으며 죽음의 순간과도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을 여러분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거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이기에 생각해야 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제가 만났던 한 형제님의 이야기입니다. 형제님은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원의 원목 수녀님을 통해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받고 싶다고 해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형제님을 만났을 때 형제님의 얼굴은 검은 빛이 돌고 있었고 광대뼈가 나올 만큼 말라 있었습니다. 눈은 약간의 황달 증세도 있어 보였습니다. 성사 전에 형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동안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맏이로서의 책임감, 타지에서의 외로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죄송함 등을 털어놓았습니다.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미 형제님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 형제님은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하셨습니다.

  다른 한 자매님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병실을 방문 할 때 만났던 분입니다. 이 자매님은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고 호스피스 병동에 계셨습니다. 남편 분이 자매님 곁을 지키며 정성으로 간호하고 계셨습니다. 어느날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남편과의 관계가 너무 좋았지만 이제 혼자 남게 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둘 있는데 아직 중학교, 초등학교 학생이라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데 그러지 못하니 마음이 무겁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보고 싶은 사람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시댁 어른들, 가장 친한 친구, 화해하고 싶은 가족에 대해서요. 나중에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너무 행복했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이 자매님의 마지막은 어땠을 것 같습니까?

제가 만난 두 분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하셨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죽음을 외면하고 회피했던 것이 아니라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고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남아 있을 가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족들은 아직 죽음을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제가 병실에 가면 저에게 이야기해 주십니다. “왜 저렇게 빨리 포기하는지 모르겠다.”, “마음 아프게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환자의 입장에서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것이지만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맞이하기 싫은 순간이기에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사별 여정을 하시면서 다시 유가족들을 만나게 되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때 그이가 했던 이야기가 참 힘이 되었어요.”, “그때는 아버지가 너무 미웠는데… 그래도 잠깐이지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제가 기억하는 이 사람의 모습을 그리 나쁘지 않게 해 줘서 고마웠어요.”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면 우리는 참 바쁘게 살아갑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출근하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저녁 늦게까지 야근합니다. 잦은 회식으로 몸은 점점 약해져갑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냥 쉬지 못합니다. 앞날을 위해 공부도 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집안일도 도와줍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어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바쁩니다. 집안일은 하루 종일 해도 표시도 나지 않습니다. 남편은 야근이다 회식이다 늦게 들어오고 아이들은 공부한다고 늦게 돌아옵니다. 혼자 밥을 먹기에 제대로 차려먹지도 않습니다. 왜 이리 바쁘게 살아오셨습니까? 잘 살기 위해서죠.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였죠? 그렇다면 죽음은 잘 준비하고 계십니까? 언제 찾아 올 지 모르는 일이기에 그냥 미루어 놓고만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 산다는 것은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도 됩니다. 죽음을 우리 삶의 끝이 아니라 일부분으로 바라보고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서 준비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죽음을 맞이한 환자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 보면 후회가 많습니다. ‘진작 그때 그 말을 해 주지 못했을까?’, ‘진작 그때 그렇게 해 주지 못했을까?’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나중에 하지.’라는 생각으로 자꾸 미루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둘도 없는 친구들에게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드러나고 우리 이웃들과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고 사랑해드리는 것을 통해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표현하십시오. 그것이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며 지금의 삶을 잘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