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나의 삶, 나의 신앙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길을 걸으며


글 양세미 소화데레사 | 두류성당, 초등학교 교사

“선생님!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요?” “선생님 꿈은 시인!” “엥? 시인? 선생님, 시 잘 쓰세요?” “…아니.” 어린 시절 꿈이 시인이었다고는 하지만 시를 쓸 줄도, 심지어 제대로 읽고 느낄 줄도 모르지만 마음에 콕 와 닿는 시가 있습니다.

꽃들에게 인사할 때

꽃들아 안녕!

 

전체 꽃들에게

한꺼번에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꽃송이 하나하나에게

눈을 맞추며

꽃들아 안녕! 안녕!

 

그렇게 인사함이

백번 옳다.

 

나태주 시인의 「꽃들아 안녕」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가 마음에 와 닿은 이유는 시 속의 꽃이 우리 아이들과 닮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많은 아이들은 같은 나이에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 보여도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르고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보면 ‘어쭈~’ 할 만큼 아직 멀었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고 여전히 더 노력할 점이 훨씬 많습니다.

 

처음 발령을 받아 아이들을 만나고 약 한 달의 시간이 흐른 뒤, 공개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공개수업이었지만 아무도 우리 반을 찾지 않았는데도 어찌나 떨렸던지요. 며칠을 고민하고 나름대로 준비해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천진난만한 우리 아이들은 저의 수업 의도와는 달리 서로 큰소리로 이야기도 많이 하고 큰 액션도 취하고 옆 친구와 투닥투닥 다툼도 하며 전에 없이 활발한 교실을 만들었습니다. 속으로 ‘망했다.’ 싶었지요. 아이들에게 친구 같이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저의 다짐은 무너지고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크게 화를 내고야 말았습니다. ‘내가 최선을 다해 준비한 수업인데 왜 아이들은 나처럼 열심히 해주지 않을까.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부끄럽게도 아이들 앞에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막상 우리 반 아이들은 ‘선생님, 왜 저래?’라는 눈망울로 저를 순진하게 보고 있었지요. 자존심도 상하고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게 부끄럽고 창피하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뭐가 잘못 되었나 억울하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르다는 것. 내가 수업을 잘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면 아이들도 저와 똑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해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아이들 각자의 마음과 생각이 어떤지 헤아리지 못한 저의 실수였지요. 이 사건 이후로 저를 감싸고 있던 껍데기 하나가 부서졌습니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려면 우리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 마음과 같아 달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치 모두 다른 꽃송이가 모여 꽃다발이 되듯이 우리 아이들도 모두가 서로 다른 모습, 서로 다른 마음으로 존재하기에 교사는 각각의 아이들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게 함께할 수 있도록 그들을 엮어주는 튼튼한 리본 같은 협력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계속해서 학교에 가고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양세미 소화데레사는 참으로 훌륭한 교사가 되었습니다. 끝~!”이라는 해피엔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이들과 함께한 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까지 저의 삶은 매일이 새롭고 놀라운 일로 가득합니다. 어떤 날은 과도한 업에 시달려 내가 교사인지 사무원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아이들과 똑같이 열 살짜리 꼬마가 되어 유치하게 화내고 토라지기도 하며 기대하지 못한 아이들의 사랑에 코끝이 찡하도록 감동적인 날도 있습니다. 이제 누군가가 제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동시 쓰고 동요 짓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너무 거창한 꿈일까요? 취업 걱정을 하던 10년 전의 저를 생각해보면 그리 막연한 꿈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제가 이렇게 교사로서의 삶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매일 새로움과 마주하며 실수와 잘못을 거름삼아 한걸음씩 내딛다보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모습이 되어 2018년의 저를 또 다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길을 걸으며, 오늘도 꽃 같은 우리 아이들을 만나러 갑니다. 꽃들아 안녕! 안녕!

 

* 2회에 걸쳐 좋은 글을 써주신 양세미 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