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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사목을 하며
“신부님!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글 조재근 마르코 | 교구 경찰사목 담당

 

경찰사목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의경 부대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신부님!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신자 의경 대원의 이 한마디 말이 제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군부대에는 일찍부터 군종 신부님들이 사목을 하고 있지만 경찰로 군복무를 하는 의무경찰들은 오랫동안 사목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주일에 가까운 성당에 가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군복무 중이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대단한 신심이 아니고서야 젊은이가 그러기란 쉽지 않겠지요. 요즘에는 과거에 비해 외출이 수월해졌다고 하지만 경찰의 업무 특성상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주일마다 외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경찰사목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의경’들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경험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투경찰로 군복무를 했습니다. 3월에 춘천 102보충대에 입대하여 6주간 강원도 인제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후 전경으로 차출이 되었지 뭡니까. 군복 대신 기동복을 입고 중앙경찰학교에서 3주간 전투경찰 훈련을 받고 서울로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전투경찰은 군대와 달리 주일이라고 쉬는 게 아니었습니다. 48시간 3교대 근무를 하고 부대로 돌아와서 그날 하루 쉬고 다음 날에 교육받는 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육군훈련소에서는 종교활동 시간이 있었고 의무적으로 참석을 해야 할 정도로 신앙생활이 보장되었지만 전경으로 차출이 된 이후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개신교회는 일찍부터 경찰복음화에 힘써 왔습니다. 제가 있던 부대에도 인근 교회의 목사님이 오셔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렸는데 신병 때 의무적으로 몇 차례 참석했습니다. 목사님과 대원들의 관계가 친밀하지 못하고 다소 형식적인 만남이어서 조금은 무미건조한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입대를 한 그해 겨울이 다가올 무렵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서울대교구 경찰사목 신부님과 선교사님이 부대에 오셨습니다. 그날 이후 선교사님은 주일마다 간식을 한 보따리 들고 저희를 찾아오셨습니다. 근무를 나가고 비어 있는 소대 생활실에서 천주교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비번 소대와 교육 소대에 있는 신자들 몇 명이 전부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구타와 가혹행위가 난무하던 시절이었지요. 일·이경들은 휴가만 손꼽아 기다리며 지옥 같은 날을 하루하루 버텼습니다. 힘든 시절에 엄마 같은 마음으로 찾아와 따뜻하게, 그리고 친근하게 대해주시는 선교사님이 참 고마웠습니다. 모두들 선교사님이 오시는 날을 기다리게 되었고, 신자가 아닌 대원들도 하나 둘씩 관심을 가지고 참석하게 되어 식구가 날로 늘어갔습니다.

제가 전경으로 복무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엄마 같은 마음으로 대원들을 만날, 선교사로 봉사할 분들을 찾았습니다. 같이 기도하고 교리공부도 하고 간식도 나누며 영적 돌봄을 할 ‘경찰사목선교사’가 필요했습니다. 뜻이 있는 분들과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그렇게 2015년 여름부터 한두 곳씩 순차적으로 선교사들을 파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대를 방문하여 그곳에 근무하시는 경찰관들에게 불교와 개신교뿐 아니라 천주교에서도 경찰사목을 한다는 것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경승(경찰위촉승려), 경목(경찰위촉목사)은 들어봤어도 경신(경찰위촉신부)은 처음 알았다. 천주교도 경찰기관에서 활동하느냐?”며 생소해 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승과 경목은 경찰서 한 곳에 5명 정도 위촉되어 있지만 경신은 대구지방경찰청에 위촉된 저 혼자뿐이고, 그것도 아직 몇 달 되지 않았으니 잘 모르는 게 당연했습니다.

부대에서 근무하시는 경관님들의 배려로 신자 대원들과 선교사의 만남을 주선(?)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예상보다 신자들이 너무 적어서 놀랐습니다. 신자 비율이 2~3%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신자가 단 한 명도 없는 부대도 있었습니다. 그 부대에서는 신자 신병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에게는 경찰서에 출입하는 것부터 부담이고, 모임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열악합니다. 그리고 부대를 방문할 수 있는 요일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월초에 방문할 수 있는 날짜를 알려주는데 이마저도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뀝니다. 한번은 선교사와 함께 기동대에 방문해서 대원들을 만나고 있는데 갑자기 시위 현장에 긴급 출동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겁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준비한 간식만 챙겨 주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맙고 기특하게도 신자 대원들은 선교사의 마음을 알아주고 선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비신자 대원들을 모임에 데리고 옵니다. 이러한 노력과 주님의 은총으로 작년부터 한 해에 두 차례 세례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건상 본당처럼 체계적으로 교리를 다 가르친 후에 세례를 주지는 못하고, 전역 날짜를 고려해 다음 세례식까지 미룰 수 없으면 좀 덜 배웠지만 먼저 세례를 주기도 합니다. 비록 부족한 게 많지만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라 생각합 니다.

시도는 해 봤지만 여력이 되지 않아 교구 내 경북지방에 있는 부대에는 아직 선교사를 파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몇 년 후에는 의무경찰 제도가 사라집니다. 마지막 의경 기수가 전역하는 날까지 미약하나마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경찰사목선교사들을 격려해 주시고, 기도로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번 호부터 조재근 신부님의 경찰사목을 하며가 연재됩니다. 많은 애독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