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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얼떨결에 다시 복식호흡”


글 김윤식 안토니오 신부 | 동촌성당 보좌

 

“뜻밖의 일을 갑자기 당하거나, 여러 가지 일이 너무 복잡하여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는 판”을 일컬어 ‘얼떨결’이라 합 니다. 지금 제 상태를 잘 표현해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뜻밖의 원고청탁과 여러 가지 다른 일들로 복잡해 정신을 가다듬지 못한 채, 말 그대로 얼떨결에 이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사제로서 2년 남짓 살아온 제게, 이 자리에 글을 연재한다는 것이 영광보다는 큰 십자가로 다가옵니다. ‘영화’를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전문지식 하나없고, 마땅한 글재주도 없어 그동안 ‘영화이야기’를 즐겨 읽으시던 독자 분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느님께 내 맡긴 삶, 가난한 과부가 봉헌했던 렙톤 두 닢처럼 작지만 제가 가진 것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연재인 만큼 바로 ‘영화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앞으로 제가 글을 작성해나갈 방향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먼저 정신을 가다듬고, 한승훈 신부님께서 그동안 연재해주신 글을 모아서 읽어 보았습니다.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일상의 친근한 소재와 함께 적절히 버무려 연재해주신 좋은 글 앞에 제 부담감이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부담감을 제 강점으로 삼아볼까 합니다. 그동안 한 신부님의 연재를 통해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을 충분히 습득하셨으리라 믿으며, 그것을 전제로 저는 보다 쉽고 가벼운 느낌, 그야말로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개인 감상문 수준의 글을 연재하려 합니다. 한 신부님께서 첫 연재를 “영화 평론이 홍수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셨는데, 그 홍수를 이루는 한 물줄기 정도로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첫째 이유는 다른 모두가 그러하듯 영화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점차 나이가 들면서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등 다른 유형의 매체들도 접해왔지만, 저는 계속해서 영화를 주로 선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찾은 두 번째 이유는 ‘효율성’입니다. 영화는 대략 2시간 남짓의 시간을 투자함으로써 이야기가 주는 재미, 감동과 더불어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짧은 시간 안에서 타인의 삶을 ‘간접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세 번째 이유입니다. 줄곧 하나의 길만 바라보고 나름대로 바쁜 삶을 살아온 저에게, 짧은 시간을 투자해서 다양한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세 가지 장점이 하나의 길을 바쁘게 걸어가고 계신 이 시대 모든 분들에게 영화라는 매체가 주는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세 가지 이유로 ‘영화’를 선택했다면, 곧 두 번째 문제가 따릅니다. 그렇다면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입니다. 제 첫 번째 기준은 ‘관객들의 선택’입니다. 저는 주변의 입소문과 실제 관객 수, 포털사이트의 평점을 선택의 첫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직업병’이기도 한데,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큰 문화적 영향력 때문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할까? 무엇이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또 일상의 자리에서 그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라도 그 영화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략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면 의무적으로 그 영화를 관람하려 합니다.

그 다음은 ‘감독, 배우, 장르’ 등 매우 일반적인 선택 기준입니다. 감독의 가치관, 스타일, 배우와 장르에 대한 호불호 역시 중요한 기준입니다. 끝으로 세 번째는 앞서 말씀드린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데, 그 영화가 내게 주는 ‘가치’ 혹은 ‘의미’입니다. 영화는 둘째치고라도, 1인 미디어까지 날로 발전해가는, 바야흐로 콘텐츠의 대홍수 시대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영화를 비롯한 콘텐츠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지고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가운데 거짓 정보들과 각종 유해한 콘텐츠가 무분별하게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홍수 가운데 내게 가치 있는 것을 스스로 ‘식별’해 내고 ‘취사선택’ 할 수 있는 능력,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 없이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행착오가 필연적으로 따르겠지만 먼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러한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식별’과 ‘선택’의 기준이란, 의심의 여지없이 ‘복음’일 것입니다. 특별한 고민과 대책 없이 홍수에 휩쓸려 다녔던 결과, 그 부작용들이 사회와 교회 안팎에서 다양한 현상들로 드러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회의 문제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는 말 그대로 ‘매체’로서 그러한 사회적 문제와 고민들을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신학생 때 이러한 제 생각을 정리해서 교지에 짧은 연재를 했었고, 연재 제목을 키워드인 ‘복음’과 ‘식별’, 그리고 세상과의 ‘호흡’의 첫 글자를 따서 ‘복식호흡’으로 정했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얼떨결에 다 시 복식호흡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간 연재하게 될지,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정리가 채 되지 않았지만, 일단은 시작해보려 합니다. 너무 거창하게 시작하는 것 같아 또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다음 글부터는 정말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저와 함께 호흡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김윤식 신부님은 현재 동촌성당 보좌신부로, 2017년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