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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사목을 하며
“창살 안에 갇힌 예수님”


글 임태숙 크레센시아 | 경찰사목선교사, 만촌1동성당

 

2016년 2월 1일, 제가 유치장 선교사로 첫 발걸음을 내디딘 날입니다. 경찰사목담당 신부님의 권유에 겁없이 덜컥 순명하는 마음으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유치장 방문 선교활동을 하고자 하는 봉사자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우리 교구보다 10년 이상 앞서 활동해 온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를 방문했습니다.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선교사님들의 회합에도 참석하고, 다음날 유치장 방문 활동에도 함께했습니다. 오랜 노하우로 만들어진 매뉴얼에 따라 차분하게 활동을 하는 선교사들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 그분들의 뜨거운 열정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배운 것을 토대로 경신실에 모여서 한 사람씩 실전에서 하는 것처럼 연습도 하면서 선교사로서의 역량을 키워 나갔습니다. 경찰사목선교사로 봉사하면서 지금까지 ‘수지에니어그램, 심리문화강의, C.P.E, 미술치료’ 등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해 8월, 드디어 유치장 선교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유치장 활동은 1회성 만남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선교활동은 하지 않습니다. 넓은 의미로 감옥에 갇힌 이에게 찾아가는 자비의 활동이라 생각하며, 유치장에 갇힌 이들에게 좋은 이야기와 음악으로 마음의 위로를 주고자 하는 것이니까요.

처음으로 유치장 철창을 사이에 두고 그분들을 마주 보게 되었는데 온몸에 문신이 가득하고 험상궂게 생겨 조금은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보호자 없이 여기저기 상처 입고 아파서 우는 가엾은 아이처럼 보이는 연민의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는 내 마음이 아닌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의 눈길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육받은 대로 음악을 틀고 차와 빵을 드렸습니다. 이어서 준비해 간 좋은 글을 읽어드리며 마지막에 “기도를 해드릴까요? 청하는 것이 있으면 기도 속에 넣어드릴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 동료가 많이 아픈데 좀 안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를 청하는 그분의 마음이 천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유기도 후 저를 따라 덩달아 십자성호를 긋는 그분들은 어둠 속에 빛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유치장 방문 활동이 벌써 4년째로 접어듭니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처럼 경관님들의 마음이 열려 협조자가 되기까지 숱한 기도의 두드림이 있었습니다. 늘 유치장 선교사로 파견되는 날은 아침 미사를 통하여 하루를 주님께 봉헌하며 오늘 만날 유치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유치인이 없는 공실일 때도 있고 만남을 거부해 방문을 할 수 없는 날도 있습니다. 때로는 가기 싫고 귀찮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사야 58장 6절의 말씀을 되새깁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백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유치장 방문을 하면 갖가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제가 무슨 말을 해 드릴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오히려 제가 어떤 말을 하기 보다는 그분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갑니다. 얼마 전 유치장에서 만난 OOO 자매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폭언으로 신고 당해 들어왔는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잦은 행동으로 잠시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자매의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모녀를 폭행했고 매 맞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결국 가게까지 화재로 불타버려 배상을 위해 모녀가 힘겹게 돈을 벌어 갚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상처가 많은 그 자매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고 상대방의 목소리가 크거나 눈빛이 안 좋다고 느껴지는 순간, 본인도 모르게 흥분되고 폭언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감춰진 아픈 속내를 드러내면서 눈물을 흘리는 자매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아픔 속에 머물러 있어 이 세상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연약한 아이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제가 그 자매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사랑 가득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 자매를 사랑의 온기로 채워달라는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유치장 팀장님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조금 전에 OOO 씨와 잠시 얘기를 나눴습니다. 얼굴이 너무 밝아졌습니다. 여기 들어오고 나서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진심으로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많이 울었고 너무 고맙다는 인사까지 잊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OOO 씨는 많이 바뀐 삶을 살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늘 대가없는 배려와 봉사에 유치장 근무자를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이 문자를 받고 참으로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일미사 때 본당신부님의 강론 중에 “하느님의 영광은 물질이 아니라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통하여 드러나신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이는 세속적인 잣대 또는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대상으로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계시는 고통 받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고 위로하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이 아닌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부족한 저를 경찰사목선교사로 이끌어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유치장 방문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이라 생각하고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유치장 문을 두드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