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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의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 이야기
무학 희망목장


글 김동진 제멜로 신부 | 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 주임

 

지난 1월을 기점으로 볼리비아 무학 희망목장의 우유 생산량과 수익이 목장자립을 위한 수준으로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는 이제 사업이 안정화되었고, 저희 목장의 궁극적인 목적인 가축대여은행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남은 건 시간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렇게 궤도에 오르기까지 몇번의 크고 작은 고비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축산업의 문외한으로서 이국땅에서 큰 비용을 들여 목장사업에 뛰어든 저의 무모함을 탓하며, 몇 번이나 그만둬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을 고백합니다. 소 구입 때 속아 샀던 몇몇 나쁜 종자의 소들, 경험 부족으로 병으로 죽은 소들, 일꾼들 사이의 문제들, 크고 작은 사고들 모든 것이 고비였지만 그 중 가장 큰 고비는 바로 초지 조성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겨울이 길어 방목을 할수 없기에, 한국의 축산업을 하는 지인들에게 초지에 대한 자문을 구할 수가 없었고, 그야말로 바닥부터 초지조성 방법을 물어 연구하며 만들게 되었습니다.

초지 조성은 일단 밀림속 비옥한 땅을 한 헥타르씩 구분하여 일꾼들에게 전기톱으로 벌목을 하게 한 다음 한 달여 강한 햇살에 쓰러진 나무를 말린 후, 바람이 동풍으로 부는 햇살 좋은 날 11시 경에 불을 놓아 마른나무와 잔가지를 태워서 만들게 됩니다. 전기톱으로 나무 밑동을 자르고 가지들을 잘 정리하여 바닥에 밀착하게 하여 불이 지나갈 때 큰 나무들까지 잘 타게 하는 것이 기술인데, 여러 시행 착오를 거쳐 경작지를 조성하는 것까지는 잘 이룰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소가 잘먹는 풀을 기르기 위해 씨앗을 심는 풀재배에서 발생했습니다. 한 번에 25헥타르를 벌목했기에 많은 비용이 들었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던 중 본당의 한 신자에게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 저 큰 경작지에 바로 풀을 심으실 겁니까? 화전이라서 저기 옥수수를 심으면, 수확이 아주 좋을 텐데요. 옥수수가 무릎 크기로 자랐을 때 옥수수 사이사이에 풀 씨앗을 심으면 서로 성장에 방해 되지 않아서 초지도 조성하고 옥수수도 먹으니 일석이조가 될 텐데요.”

저는 이거다! 싶었습니다. 빈민들에게 한 헥타르씩 경작 권을 주는 대신에 경지 정리와 씨앗 파종과 김매기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었습니다. 본당에서 한 헥타르씩 옥수수를 심을 경작지를 분양한다는 소문이 돌자, 금방 신청자가 다 채워졌습니다.

옥수수를 심고 씨앗을 파종하면 넉 달 후에는 초지를 볼 수 있으리라 예상했건만, 그 결정이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실수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문제의 시작은 경작을 하는 농민들과 그 땅을 벌목하여 경작지를 조성한 저와의 목적의 차이에서 시작됐습니다. 농민들은 더 많은 옥수수 수확을 원했고, 저는 풀의 빠른 성장을 원했습니다. 원래는 1미터 간격으로 옥수수의 이랑을 만들어야 풀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데, 농민들은 더 많은 수확을 위해 약속을 어기고 어떤 이는 80cm의 거리를, 어떤 이는 60cm, 심지어 어떤 농민들은 풀이 자라지 못할 정도의 밀도로 옥수수 파종을 했던 것입니다.

본당의 다른 수많은 일로 너무 바빠 채 신경을 쓰지 못했고, 제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여러 경작지의 풀이 밀식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며 바쁜 사목 가운데 시간을 쪼개가며 노력한 것들이 수포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한 헥타르 초지 조성당 거의 천 불이 소요되는 벌목비용과 비싸게 수입한 브라질

산 씨앗의 구입비용을 송두리째 날리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의 후원자들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보내주는 성금임을 알기에 저의 마음은 한없이 괴로웠습니다. 그 괴로움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고 은연 중 생각하며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마을 신자들에 대한 섭섭함, 나의 선의가 욕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되갚는다는 것에 대한 미움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중한 책임감과 이렇게 프로젝트를 그만두면 사제적 양심을 지키며 살아왔다고 앞으로 강론대에서 외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일의 수습에 나섰습니다.

먼저 경험이 없어 두 이익이 충돌하게 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을 하고, 농민들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풀이 죽은 곳에는 다시 비용을 들여 수입 씨앗을 구입해 마을 전체 추장에게 청해 밍가라는 공동 작업으로 재파종을 실시하였고, 밀식을 한 곳에는 어쩔 수 없이 자식같은 재배물을 속아내는 작업을 실시했습니다. 이제 막 꽃이 피고 지고 어떤 것은 이삭을 맺기 시작하는 옥수수를 잘라내는 일은 보기가 힘든 일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힘들어했지만 겨우 거의 모든 경작지의 초지 조성 작업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화가 나고 마음이 조금 상했지만 한 번도 사람들 앞에 드러내놓고 화를 내지 않았고, 모든 일이 잘 마무리 되어가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 다음호에 계속

 

 

볼리비아 후원자들을 위한 영상 QR 코드 https://vimeo.co/315041702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 후원

대구은행 505-10-160569-9 재)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조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