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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의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 이야기
마르지 않는 우물 2차 프로젝트


글 김동진 제멜로 신부 | 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 주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마르지 않는 우물 2차 프로젝트가 한창이라 남미 산골 마을 사제관이 한국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몇몇 공동체는 이미 대 수원을 발견하여 감사와 환희의 축복식을 마친 상태이고, 또 몇몇 공동체는 착공이 진행 중입니다. 부디 다음 호에는 기쁜 소식을 후원자 분들과 〈빛〉 잡지 독자 분들께 전하고 싶습니다.

 

사실 우물 착공 걱 으로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보이지 않는 땅속 대 수원을 찾는 것이 어떤 스트레스인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나의 대 수원을 찾는 것도 힘이 드는 일인데 동시에 여러 공동체의 대 수원을 찾아 착공을 하고 있으니 힘이 곱절로 듭니다. 이렇게 일을 벌려 놓은 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할 뿐입니다. 원래 작년에 실패한 한두 공동체만 착공할 예정이었으나 다른 공동체의 어려운 사정 앞에 마음이 아프고, 공동체 미사참례에 감동하여 매번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6개 공동체 우물 착공, 거기에 2개 공동체의 심정 펌프 설치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가의 중장비를 한 달 기간 정해놓고 빌려온지라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3시간 거리에서 매일 엄청난 양의 디젤유를 사다 나르는 일, 총 몇십 킬로미터가 되는 험한 산길을 중장비가 들어올 수 있게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서 고치는 일, 거기다 실제로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10여 명이나 되는 기술자들이 혹여 불편하거나 마음 상하지 않게 시중드는 일을 조율하느라 정말 머리 아프지만 제가 자초한 일이라 누구를 탓하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그들을 위해 힘껏 애를 쓰고 있는 후원자들을 모아 그들의 삶을 위해 투쟁하지만, 한 번씩은 저를 실망케 하는 일이 생겨납니다. 수차례 반복되는 일이지만 며칠 전에 한 부부가 자녀 교육을 위해 장학금 청원서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보통 가정환경을 보고 학생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장학금을 지원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한 우물 착공에 큰 비용이 들고 일이 한창인 까닭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지금 너무 복잡하다며 돌려보내려 했더니 학생 아버지의 한마디가 저를 기운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신부님, 우리를 사랑 안 해서 안 도와주십니까?” 그들의 절박함과 어려움을 알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고 웃으며 돌려 보냈지만 그 한마디는 제 마음에 큰 돌덩이를 던진 것처럼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들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사제로서 사회사목을 한다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이지만 가끔은 이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과 현세를 넘어 초월을 선포해야 하는 두 사명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삶의 한가운데를 살다보면 막연한 환상만으로 그들이 한없이 순수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결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가난한 이들은 비겁해지기도 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 게을러지기도 하며, 제 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최악의 경우는 저를 속이기도 합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저는 늘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어린이의 얼굴입니다. 어제도 학교미사 때 자기가 아는 성가가 나오자 큰소리로 목청껏 신이 나 노래하는 한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처다보았습니다. 그러자 부끄러웠는지 이내 자신의 얼굴을 팔로 묻어 버리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두 번째는 예전에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었던 ‘국경없는 의사회’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감입니다. 노벨평화상 수상 후 국경없는 의사회 대표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침묵은 살인이기에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적 보람이 있든 없든 가끔은 실망을 하며 살아가든 우리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성모 성월,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회의 불의와 불평등에 침묵하지 말고 살아갑시다.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 후원

대구은행 505-10-160569-9 재)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조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