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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과 응답
기도하는 마음, 들어 올린 두 손


글 | 대구 가르멜 여자 수도원

 

“세계 평화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 바치겠습니다.”, “희망 없이 살아가는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재작년 4월 수도원을 방문한 교구 청년들이 쪽지에 꾹꾹 눌러쓴 기도입니다.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함께 나누길 바라며, 기도 청할 내용을 남겨 달라고 건넨 쪽지들이 오히려 저희 봉쇄 수녀들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나같이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을 기도에 담은 청년들도 많았습니다. 소박하게 당신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고백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 젊은이들과 나눌 수 있어 참 기뻤습니다.

 

앞산 안지랑 골짜기 아래 늘 열려 있는 기도의 집.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의 대구 가르멜 여자 수도원은 57년 전 서정길(요한, 제7대 대구대교구장) 대주교님께서 교구 내 관상 수도회의 필요성을 절감하시며 오스트리아 마리아 가르멜에서 파견되어 오신 수녀님들로부터 시작되었고, 지금은 봉쇄 관상수도 공동체의 특성상(21명 정원) 열일곱 명의 작은 수의 수녀가 침묵과 고독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통해 온 세상과 기도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 특별히 우리 교구의 사제들과 성소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교회의 심장 안에서 사랑이 되겠다.’고 한 소화 데레사 성녀의 말씀처럼 아무것도 아닌 우리가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 할 때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업적보다도 더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원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이런 기도하는 마음의 시작에는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진정한 행복으로 이끌어 줄 수 없다는 작은 발견과 이를 계속 이어가게 하는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이 뜨거운 심장 안으로 돌진해오는 성소자들과 입회자들을 통해 늘 확인하게 됩니다.

 

한편 면회실에 기도를 청하러 오시는 신자 분들, 수도원 방문을 하신 예비신자 분들은 처음 접하는 격자를 사이에 둔 만남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삶을 택하였는지? 수도원의 일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가족과의 만남을 포기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은지? 봉쇄의 삶이 힘든 적은 없는지? 이런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오히려 서로 나누임 없는 경청의 자리가 되어 가고, 우리가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가는 인간임을 깨달으며, 그럴수록 이 모든 것 너머에 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매 순간 오시기에 저희들의 웃음 속에서 하느님만으로 충분한 삶의 기쁨을 발견하고 안도하곤 합니다.

 

사실 ‘하느님의 정원’, ‘하느님의 포도밭’이라 불리는 이 가르멜 수도원 안에 사는 저희들도 순례의 여정에 필요한 매일의 생명수를 마시고자 말씀 안에 깊이 머무르며, 여섯 차례의 공동 기도 외에도 하루 두 시간의 묵상 시간을 충실히 지켜나갑니다. 그리고 제병 제작을 비롯한 일과를 통해 온 존재로 주님께 찬미와 흠숭을 드리며 끊임없이 ‘하느님의 얼굴’을 찾습니다. 일상의 수련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응답의 길입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성찬례, 즉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쪼개지심처럼 저희의 모든 지향은 세상을 향해 있습니다. ‘고통 받는 이들, 곤경 속에 있는 가정들, 가난한 이들, 아픈 이들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아니면 도움과 청원에만 그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탈출기의 모세의 기도처럼 “우리 인류의 운명이 여자 관상 수도자들의 기도하는 마음과 들어 올린 두 손으로 결정된다.”는 말씀을 저희에게 해주신 것도 이 길을 더욱 충실히 살아가라는 격려이자 촉구라 여겨집니다.

 

물론 이러한 충실성이 깊은 신앙으로 자라나기까지 우리에게 눈으로 보여 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인들조차도 마지막까지 신앙의 어둔 밤을 거치셨고, 앞서 사랑의 소명을 발견했던 소화 데레사의 경우에도 계속 어두운 터널을 걸어가는 듯한 내적 상태를 견뎌야 했습니다. 또 설사 그런 하느님의 깊숙한 손길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사실 공동체 생활 자체가 부르심과 응답의 치열한 장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한 공동체에 모아 주신 분이 바로 주님임을 명심하고, 기도 만큼이나 중요한 매일 두 차례의 공동휴식을 통해 드러나듯 ‘그리스도의 작은 공동체’로서 ‘서로 깊이 사랑하고 모두가 벗이어야’ 함은 관상 공동체 가운데서도 특히 예수의 데레사가 시작한 맨발 가르멜 공동체의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그래서 끊이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성소자들뿐만 아니라 이 안에서 20대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가 각자의 마음에 살아계신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실제적인 풍요로움이야말로 저희의 성소입니다.

  

65년 된 수도원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어진 주님의 성전에서 올해 다시 성모님의 달을 맞았습니다. 기적과도 같이 올려진 벽돌 한 장 한 장에는 이러한 삶을 존중해 주시는 많은 분들의 봉헌, 특히 교구의 사제들과 신자 분들의 기도하는 마음이 담겨 저희를 감싸고 있음을 느낍니다. 지난 대림 이후 저희도 성모님과 함께 말씀으로 ‘용서와 화해의 해’를 맞이하며 각자 구체적인 기도와 봉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고’ 또 그런 기도여야만 ‘아버지께서도 우리(모두)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는 것과 공동체가 함께 이렇게 매일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미 받은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좋으신 하느님께 각자가 품은 지향은 속으로 간직하고 있지만 아마도 이럴 것입니다.

 

“주님, 모든 교구민들, 특히 어려움 중에 있는 사제들, 선교사들, 냉담 중인 형제자매들, 당신이 사랑하시는 청년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저희의 기도가 필요한 이들의 용서와 화해를 위하여, 매 순간 저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을 봉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