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남미 성지순례기
남미 성지순례를 다녀와서(5)
- 멕시코, 페루,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글 정은미 레지나|성김대건성당

  

5. 멕시코 - 칸쿤

성지순례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성지순례의 마지막 코스인 칸쿤은 멕시코에 있는 미국풍 휴양도시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리마에서 5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멕시코 칸쿤에 도착한 우리 순례팀은 그동안 빠르게 진행된 일정에 피로와 함께 약간 지친 상태에 있었다. 그간의 일정을 보상하고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칸쿤에서는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휴식하며 지금까지의 순례를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칸쿤은 멕시코반도에서 카리브해로 뻗어간 유카탄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바다를 따라 길게 펼쳐진 호텔들은 칸쿤의 명소로 세계 각지에서 각광받고 있는 꿈의 휴양지로 우리나라에서는 신혼여행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도 한다. 공항에서부터 대리석으로 멋지게 치장된 대합실과 편리한 주차시설, 아열대 기후에 밝은 햇살, 싱그러운 야자수 나무 그늘의 가로수 길, 시원하게 펼쳐진 천연의 숲은 가장 아름다운 휴양지로 개발할 만큼 전망과 경치가 아주 멋진 곳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 주변은 아름다운 섬들과 칸쿤의 명소들을 방문하기 좋은 장소였고 호텔 안에는 모든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즐겁고 편안한 휴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호텔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칸쿤성당이 있다는 점이다.

 

매일 아침 식사 전에는 시원한 야자수 가로수 길을 여유롭게 걸어서 성당으로 갔다. 성당은 현대식 건축물로 내부에는 여러 가지 열대식물들과 함께 천장과 양 사방 벽이 트여 있어서 시원한 자연의 바람을 쐬며 미사를 드릴 수 있었던 색다른 모습의 성당이었다. 대성당과 소성당이 있는데 우리는 대성당에서 현지 신자들과 여행 온 관광객들 속에서 미사를 봉헌하기도 하고, 우리끼리 아담하고 작은 공간인 소성당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묵상하고 성체를 모시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호텔에서 자동차로 3시간가량 걸리는 곳에는 비교적 잘 보존 된 마야문명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태양신 숭배와 인신공양, 하늘과 땅 위, 땅 속의 사나운 동물들(독수리, 재규어, 뱀)을 공경하며, 문자 없이도 놀라운 건축 솜씨를 드러내고 영농법을 발전시킨 인디오문명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불가사의 중 하나인 쿠쿨칸신전이 있는 치첸이사의 피라미드와 용사들의 투지를 불사르는 경기장, 그리고 ‘세노테’라는 거대한 물웅덩이가 있었다. 중남미에서 일어난 3대 고대문명은 멕시코의 아즈텍문명, 페루의 잉카문명과 유카탄반도를 비롯한 중남미에 넓게 분포된 마야문명으로 나뉘는데, 고대문명들이 큰 강을 끼고 발생하는 것과 달리 마야문명은 깊은 오지나 밀림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사실 그곳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3시간 내내 밀림 속을 가로질러 가는 듯했다. 쿠쿨칸신전과 전사의 신전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희생 제물로 사람들을 바쳤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아즈텍문명, 잉카문명, 마야문명은 건축물이나 종교의식은 비슷했지만 언어는 서로 달랐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참 특별하고도 신기하게 본 관광지 중 하나인 세노테! 이곳은 세상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만큼 아름다우면서도 신비스러운 형태의 엄청난 규모의 우물 같은 물웅덩이였다. 세노테란 멕시코 유카탄반도 일대에서 볼 수 있는 지형의 하나로 지반이 무너져 내린 싱크홀에 의해 노출된 석회암 암반에 비나 지하수가 스며들고 침식작용으로 자연우물이나 동굴 같은 형태를 이루는데 그 규모가 지상에서 수면까지 약 50m, 지름 60m, 수심 40m 정도라고 했다. 이곳에서 순례객들이나 관광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들어가 수영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물을 무서워하는 나에겐 공포의 순간이었다. 사실 가이드가 나중에 설명한 바에 의하면 이 웅덩이는 인신공양을 위해서 희생된 어린이들을 버리는 무덤과 같은 곳이

라고 했는데 그곳의 물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시원했다. 살해당한 어린이들의 시체가 버려진 곳이라고 미리 이야기 했다면 아무도 그곳에 가서 목욕을 하거나 수영을 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어리석은 인간의 그릇된 종교의식이 끔찍한 인신공양의 제례를 가져왔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렇게 희생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스페인 정복자들이 들어왔을 때 상상할 수도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대제국의 수많은 백성들이 수십 명의 스페인 기마군에게 정복당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러한 무지와 공포의 종교심으로 나라가 멸망하고 종교심이 무너지고 난 뒤, 허탈감에 빠져있는 중남미인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며 보호자로 발현하신 과다루페의 성모님의 모습은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 같다.

 

오늘날의 멕시코 칸쿤은 사실 전통적인 성지의 개념과는 동떨어진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하느님의 사랑과 거룩하심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아름다운 해변과 원시적인 숲이라고 할 수 있는 아열대의 밀림들, 기묘한 모양을 가진 섬들의 모습과 자연환경이 하느님께로 이끄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간의 무지와 죄악으로 빚어진 역사의 비극들을 통하여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돌봐주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묵상거리는 생생하고도 강렬하게 다가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수많은 이야기와 신비의 수수께끼로 치장된 멕시코의 동쪽 바다, 거대한 큐바섬이 지척에 있는 카리브해의 에메랄드빛 아름다운 해변과 고대 마야문명의 웅장함! 신이 내린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마음껏 즐기고 만끽할 수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넓게 이어진 관광지와 바다 가운데 있는 수많은 섬들이 있어서 휴식과 즐거움을 찾는 세계 곳곳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우리도 자연적인 아름다운 곳, 무애레섬(여자들의 섬)을 찾아 하얀 밀가루처럼 부드럽고 고운 바닷가 백사장을 걷기도 하고 수영을 즐기기도 했고, 인공적으로 잘 꾸며진 놀이동산인 엑스칼렛에서는 흥미진진함 속에서 낭만을 찾기도 하고, 호텔에서 편안하게 휴식과 명상에 잠기는 등 자유로운 선택을 하며 여유있게 보낸 멋진 마무리 여행들이 긴 여정의 남미 성지순례를 돋보이게 했다고 본다.

우리가 칸쿤에 머문 3일은 그간 힘든 성지순례 중의 피로를 뒤로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재충전하는 시간이 되었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더욱 깊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행운과도 같았던 칸쿤에서 마지막 미사를 봉헌한 후 각 조의 대표들이 그간의 성지순례 중 느꼈던 은총 가득한 시간에 대한 소회를 간단하게 발표한 다음 우리는 모든 순례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칸쿤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성지순례는 20박 22일의 비교적 긴 여정이었던 만큼 시간적으로 정해진 일정에 맞게 빠르게 움직여야 했고 각 나라로 이동하기 위해 여러 차례 비행기를 갈아 타야 했으므로 체력적으로 힘도 많이 들었지만, 다들 잘 이해해주고 따라 주었기에 별 탈 없이 무사히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성지순례를 주관해주신 박재식(토마스) 신부님과 좋은 순례가 되도록 이끌어 주신 능곡성당 황주원(미카엘) 신부님, 파라과이 한인성당 정도영(베드로) 신부님, 그리고 성지순례를 함께하면서 순례 처음부터 끝까지 매일 미사를 집전해주시고 좋은 강론을 해주신 원로사제 이성배(사도요한) 신부님께 감사드린다.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과달루페 성모님께 감사와 사랑을 드린다.

 

* ‘남미 성지순례기’는 이번호로 끝맺습니다. 정은미 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