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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예수 마음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얼마 전, 한 수녀님께 이콘(Icon)을 선물 받았습니다. 수녀님께서 직접 그리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화려한 금박 바탕 속에 근엄한 표정을 짓고 계신 예수님은 왼손에는 성경을 들고, 오른손은 강복을 주려는 듯 살짝 들고 계십니다. 책상 위 벽에 걸어 두었는데, 이콘 속 예수님의 표정이 묘했습니다. 어떤 때는 나를 꾸짖는 듯 무서운 표정이시고, 어떤 때는 무심하게 그냥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인자한 미소를 띠는 것 같기도 하고요.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오묘하다는 생각을 하던 저는,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표정이 다양하게 보인 건 이콘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내 마음이 뭔가 불편하고 생활이 엉망일 때는 예수님의 표정이 꾸짖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마음이 기쁨과 감사가 가득하여 사랑스러울 때는 나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눈길도 사랑 가득한 모습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복잡할 때나 심드렁할 때는 예수님의 표정도 텅 빈 듯 무심해 보였던 것 같습니다. 세상을 보는 우리의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마음이 지옥같이 힘들고 분노나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다면 다른 사람을 보는 나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겠지요. 반면에 내 마음이 평온하고 기쁨에 가득 차 있다면, 내 눈에 비치는 세상은 참 아름답고 사람들은 모두 사랑스러울 것입니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사람의 마음 안에는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심어 주신 선한 본성이 온전히 담겨 있다고 보았습니다. 성인이든 악인이든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선한 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인은 그 선한 본성을 잘 길러 보존하여 사랑의 마음을 잘 길러 낸 반면, 악인은 나쁜 환경으로 인해 그 선한 본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누구에게나 하늘이 심어 주신 선한 본성이 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서(四書)의 하나인 『중용』은 그 첫 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이 명하여 우리 마음에 심어 주신 것을 일러 본성이라고 한다.”1) 『대학』이라는 책도 이렇게 시작하지요. “큰 배움의 도는 내 마음 안에 있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다.”2) 그러니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하늘의 뜻과 닿습니다. 하늘의 뜻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며 바로 사랑입니다.

 

6월은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예수 성심(聖心) 성월입니다. 세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보고 계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실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내 마음은 어떠한지 돌이켜 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의 마음 안에는 하느님께서 심어 주신 선한 본성, 곧 사랑이 온전히 보전되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 사랑의 마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聖心)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고, 그 사랑의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심을 닮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갖 나쁜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원래 받은 모습인 사랑으로 가득 차 예수 성심(聖心)을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1) 『중용(中庸)』, 1장. “天命之謂性.”

2) 『대학(大學)』, 1장. “大學之道, 在明明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