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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天地不仁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었다.”라고 늘 말하는 사람이 있다 면, 우리는 그를 모범적인 신앙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좋은 일 이 일어나거나 기도한 내용이 이루어지면 그 모든 것이 주님께서 해 주신 일이라며 매사에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 는 모든 일을 주님께서 주관하시고 그분이 허락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우리 뒤통수를 치기도 합니다. 내게 나쁜 일이 생기거나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주님,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고 탄식하겠지요. 갑자기 몹쓸 병에 걸렸다거나 사업이 잘못되거나 승진이 되지 않았거나 하는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운명론 에 빠진 사람은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는데 어떻게 이러실 수 있느냐?’고 하느님을 원망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 살아가길 바라시지요.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가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면서요. 하지만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이들에게 나쁜 짓을 하지요. 이익을 위해 타인을 속이고, 환경을 파괴하고, 몸에 해로운 먹거리를 만들어 팔고, 음주운전을 해서 사람을 다치게 하고,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이고, 난민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못 본 척 합니다. 그리고 이런 수많은 잘못이 서로 얽히고설켜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이 불치병에 걸리기도 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죽음에 내몰리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닥친 불행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주님 탓만 할 때가 많습니다.

예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현세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모두 하늘이 주관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운명이나 팔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에 죄를 지어 하늘이 벌을 내리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더 편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많은 성현들은 하늘은 정해진 법칙대로 운행할 뿐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거나 화를 입힌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노자(老子)가 이야기한 “천지는 어질지 않다.”1)라는 구절은 제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어질다(仁)’는 것은 사람들이 만든 가치 기준이며, 하늘은 이런 사람들의 가치 기준을 초월해 있지, 그 기준에 얽매이거나 놀아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전국시대 후기 유학자인 순자(荀子)는 더욱 합리적인 자연관을 가졌습니다.

 

“하늘은 사람들이 추위를 싫어한다 하여 겨울을 없애지 않는다. 땅은 사람들이 먼 것을 싫어한다 하여 넓음을 없애지 않는다.”2)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좋은 일이 생겼다고 주님의 은혜라고 기뻐하고,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주님을 원망하는 가벼운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일을 겪으면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의 뜻에 맞을까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면서 달라지는 것은 주님이 아니라 기도하는 나 자신입니다. 기도는 요술램프의 요정이나 도깨비에게 우리의 바람을 들어달라고 외우는 주문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를 통해서 내가 바라는 것이 주님의 뜻에 맞는지, 나의 삶이 주님께 합당한 종으로서의 삶인지를 돌아보고 그분의 뜻을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1) 노자 , 『도덕경(道德經)』, 5장. “天地不仁.”

2) 순자 , 『순자(荀子)』, 「천론(天論)」, 6장. “天不爲人之惡寒也, 輟冬. 地不爲人之惡遼遠也, 輟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