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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도원 순례기
은총의 빛 가운데 머물다


글 김윤자 안젤라 | 선산성당

 

2016년 한국천주교 111곳의 성지순례를 마친 후, 그 여운이 남은 우리 일행은 또 다시 전국의 수도원 순례에 나섰다. 하지만 수도원의 경우 크고 작은 수도원이 워낙 많기에 엄두가 나지 않아 완주의 계획은 세우지 않기로 하고 기회가 되는 대로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순례하기로 했다. 언제까지 가능할 지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의 짧은 순례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아침에 출발할 때는 안개비가 살짝 차 유리로 내려앉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나 맑은 날씨로 바뀌었다. 오전 9시에 선산을 출발하여 상주에 있는 관상수도원인 카르투시오 남자 수도회 향하다 보니 안동교구 개운동성당이 눈에 띄었다. 미사에 참례하고 수도원 순례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으로 시계를 보니 9시 45분이라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성당으로 들어갔다. 일행인 안나 언니는 미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니 아마도 하느님께서 안나 언니를 아주 어여쁘게 보셔서 우리를 개운동성당으로 인도하신 것만 같았다. 성당에 들어서니 성당 문 입구에서 주임신부님을 만났는데 참으로 오래간만에 만나는 신부님이었다. 신부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미사에 참례하는데 신부님께서는 우리 일행을 상세히 소개해 주셨다. 전국 성지 순례를 마치고 다시 수도원 순례를 시작하는 분들이고, 이 중에 한 분은 당신이 신학교에 있을 때 근무하셨던 분인데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면서 2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그대로라고 하셔서 황송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미사를 마치고 카르투시오 남자 수도회를 찾아갔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수도원은 수도원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패널 공사장 인부들이 거처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소박했다. 게다가 관상수도원이기에 일반 신자들이 성당에 들어갈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마침 지나가시는 수사님과 우리 일행이 마주쳤지만 그냥 고개만 숙이고 지나가시는 그런 정도라고나 할까. 아무튼 수도원 자체도 너무 열악해 보여서 그냥 무엇이든 있는 대로 다 퍼드리고 오고 싶은 그런 애잔한 마음을 뒤로 해야만 했던 수도원이었다. 늘 가슴속에 그려오던 수도원이 아닌 패널로 지어진 수도원, 그리고 그 패널로 지은 집도 다 이용하시지도 못하고 몇 분만 기거를 하신다고 하셨다.

  

카르투시오 남자 수도원을 나와서 상주에 있는 가르멜 여자 수도원(교회의 어머니)으로 향했다. 아침에 비가 촉촉하게 내린 덕에 공기는 상큼하면서도 너무 맑았다. 가는 길마다 단풍으로 물들어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으로 상주 가르멜 여자 수도원에 도착했다. 수도원으로 들어가면서 보이는 전경은 그야말로 책에서나 보았던 중세 수도원, TV에서 보았던 외국의 아름다운 수도원과 같은 바로 그런 아름답고 멋진 수도원이었다. 조용히 성당으로 올라가서 큰 나무 대문의 성당 문을 살짝 열어보니 성당 안은 너무나 고요하면서도 편안했다. 우리 일행은 함께 성체조배를 드리고 난 후 성당을 나와서 수도원 곳곳에 물든 가을을 만끽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가슴 가득 받아들이고 즐겼다. 그리고는 수도원 사무실에 들렀는데 마침 일행 중 한 분인 헬레나 형님이 아는 분을 만나서 근처에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이 있는지 알아보고 그분의 안내로 잘 해결할 수 있었다. 모처럼 여유로운 점심시간을 보낸 후에 다시 안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으로 우리가 찾은 곳은 안동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한국관구)로, 그곳은 전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수녀원이었다. 그때는 깊은 산속에 있어서 산길을 따라 갔던 기억이 나는데 수십 년 만에 가보는 길은 아파트를 지나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수녀원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는데 율리안나 형님이 온 얼굴에 함빡 웃음을 띤 채 어느 수녀님께 달려가더니 서로 부둥켜안고 반기는 바람에 모두들 줄줄이 따라 가보니 그 수녀님께서는 선산성당 옆 성심양로원에 계셨던 수녀님이라고 했다. 서로들 얼싸안고 반기고 난리가 났다. 나는 그 수녀님을 모르니 그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멀거니 서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 그래도 그렇게 반갑게 반기고 맞이하는 모습은 정말로 보기 좋고 흐뭇하고 행복한 상황이었다. 기쁨과 즐거움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니 나 자신도 덩달아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이해하셨는지 수녀님께서 내 손을 꼭잡아주시면서 잘 왔다고 하셨다. 그런 걸 내가 놓칠 리가 만무하지.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사진도 찍고, 수녀원에 들어가서 여기저기 구경시켜 주시는 바람에 참으로 신나는 수도원 순례를 하고 차를 한잔씩 얻어 마시고 나가려는데, 마침 관구장 수녀님께서 오셨다고 해서 가서 뵈니 관구장 수녀님 역시 선산 양로원에 계셨던 수녀님이시라고 했다. 조금 전보다 더 반가운 상황에서 사진을 찍으며 지난 몇 십 년 전의 기억들을 하나씩 이야기하며 시간가는 줄도 모를 만큼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나와서 수녀원 바로 뒤에 있는 묘지로 갔다. 묘지로 올라가는 길에 관구장 수녀님과 박석희(이냐시오, 전 안동교구장) 주교님 이야기를 하며 옛날 기억들을 떠올리는데 묘지로 향하는 길은 단풍이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융단을 밟고 올라서니 수녀원을 바라보며 자리한 묘지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함께 기도를 바치고 수녀원을 내려와서 집으로 오는 길에 안동 농은수련원 앞을 지나쳐 가려는데 그곳 성직자묘지에 잠들어 계시는 박석희 주교님 생각이 떠올라 함께 가신 안나 언니가 잠시 들렀다가 가자고 하였지만, 이미 날도 저물어 가고 있는지라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천천히 오는 길에 산속으로 지려고 하는 해를 보면서 율리안나 형님이 “우리 모습이 지금 저 정도로 기울었겠지?”라고 하시기에 내가 “저것보다는 조금 더 기울어지지 않았을까요?”라고 했더니 헬레나 형님은 “아니다, 저것보다는 아직 덜 기울었다.”고 하셨다. 운전을 하면서 나는 문득 ‘아니지, 이미 저보다도 더 기울어진 우리가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가는데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해는 벌써 산속으로 쏙 빨려 들어가버리는 것이었다. 바로 나의 인생이었다. 저 해가 바로 지금 나의 인생 그대로인 것이다. 남은 인생 정말 아름답게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나는 선산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좋으신 하느님! 이렇게 오늘의 수도원 순례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가슴 아리고 아련했던 기억들, 반가웠던 얼굴들, 이 모든 것 하느님께 다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막 흘러내리고 있는 제 눈물도 하느님께 선물로 드립니다. 제가 수도원을 소개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당신께서 열심히 보여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늘 한 발, 한 시간 늦게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래도 저는 모든 것이 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