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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정상화원리(Normalization)


글 류주화 시몬 신부 | 성요한 복지재단 상임이사, 일심재활원장, 2대리구청 사회복지담당

  

‘정상화원리’라는 말이 아주 생소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상화원리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참 중요한 말이자 생각이요 방향입니다. 정상화라는 말이 불편하게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속에는 비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내포하기 때문이겠지요.

‘정상화원리’를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10년 전 시설에 처음 발령을 받고 살아가면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쉬다가 점심을 먹고, 놀다가 저녁을 먹습니다. 그리고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가끔 프로그램이나 나들이가 있으면 덜 따분하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가요? 일할 걱정, 돈 걱정, 가정에 대한 걱정, 밥 먹을 걱정, 집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지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정말 이것이 행복한 삶인가?’ 저와는, 혹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이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과 격리되어 다른 세상을 만들어 놓은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참 평화로워 보이지만 의욕과 희망이 사라진 세상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시설병’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사회복지 사목을 하면서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잘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식사를 맛있게 하는 것, 불편하지 않게 생활하는 것, 아프지 않도록 잘 보살피는 것, 가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해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나는 사회복지 사목을 잘 하고 있어.’라고 생각하며 그 안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불편함을 제거해 주려고만 했지 사람답게 살도록 안내하고 도와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에게는 성취, 인내, 희망, 도전, 희생 등 더 높은 가치가 있습니다.

 

  

‘시설병’이 환경에서 온다면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저는 효율과 경영상의 이유로 정해져 있던 사회복지사의 근무형태를 개혁하고, 결재의 형태와 방향을 정리하고, 서류를 간소화하고, 하나의 표준을 만들어 사람들을 그 안에 밀어 넣는 일을 만류하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방을 리모델링하여 각자의 침대를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내 침대와 네 침대가 구분되고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각산성당 김성복(데이꼴라) 본당 주임신부님의 도움으로 직장에 나가듯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각산성당 소속 청천공소에 가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나가야 할 때와 집에 있을 때의 시간이 구분되고, 있어야 할 곳과 다른 곳에 가야 하는 공간의 구분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자기 집을 얻어 자립을 준비하는 형제자매들도 있고, 이미 시설에서 나가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 5월에는 혼배성사를 통해 새로운 가정도 생겼습니다.

장애를 가진 우리 형제자매들이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어설프고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분들에게 많은 기도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더욱 열심히 나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