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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생애 처음 꽃 받은 날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제가 생애 처음으로 꽃다발을 받은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벌써 35년 전 일이지요. 하지만 그날 느꼈던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당시 저는 성당에서 중등부 소년 레지오 부단장이었습니다. 단장은 교리교사선생님이었지요. 어느 날 같은 레지오 단원이었던 1년 후배여학생과 시내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무엇을 하려고 만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시내에 있는 성바오로서원에서 만나기로 해서 조금 일찍 가서 책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오더니 제게 꽃다발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당혹스러움이란 ….

지나가던 모든 사람이 저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버릴 수도 없고 들고 다니자니 얼굴이 화끈거려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짧은 시간 저는 머리를 굴려 묘책을 생각해 냈습니다. 우리는 시내를 벗어나 성모당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거기서 성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그 꽃을 성모님께 봉헌하자고 했습니다. 결국 그 꽃다발을 성모당의 성모상 아래에 놓고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여학생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입니다.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내가 마음을 다해 준비한 꽃다발을 성모당까지 들고 가 성모님께 봉헌하다니!’ 그 후 그날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않습니다. 벌써 35년이 지났으니까요. 하지만 더 이상 꽃다발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편해졌다는 것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웃지 못할 하나의 사건이지만 저는 본의 아니게 생애 처음으로 여인에게 받은 꽃을 성모님께 봉헌한 셈이 되었습니다. 물론 성모님께 대한 신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난처함을 피하기 위해서였지만요. 이 일 때문이었을까요? 그날 이후 그 여학생과의 사이는 흐지부지 되었고,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사제성소의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10월, 아름다운 계절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묵주기도성월을 맞아 성모당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습니다. 성모님을 찾으며 우리는 무엇을 어머니께 봉헌하나요? 어린 시절의 저처럼 미리 준비된 것이 아니라 제가 가지기에 난처한 것을 성모님께 슬쩍 밀어 드리는 것은 아닌지요? 당신의 전 생애와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봉헌한 성모님 앞에 우리는 무엇을 봉헌할 수 있을까요? 봉헌 생활을 하는 이들이나 사제 생활을 하는 이들도 과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어다.”1)라는 금강경의 말씀도 떠오르고요.

 

과거에 생애 처음 꽃다발을 받은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제가 직접 마련한 꽃을 들고 성모당을 찾아가 성모님께 봉헌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 『금강경(金剛經)』, 제10장. “應無所住, 而生其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