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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극한성소”(1)


글 김윤식 안토니오 신부 | 하양성당 보좌

 

올해 100주년을 맞은 한국영화는 그에 걸맞게 빛나는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2019년 상반기 전체 관객 수 1억 932만 명, 극장 매출액 9307억 원으로 역대 상반기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수치는 거대 제작사인 ‘마블’과 ‘디즈니’를 중심으로 한 외화들의 큰 흥행도 포함한 것이지만, 한국 ‘영화문화’의 규모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지표가 되기에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또한 그 가운데에는 지난호에서 다룬 우리 영화 “기생충”의 눈부신 성과가 있었습니다. “기생충”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발판삼아 올 상반기 958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들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표상의 성과만을 놓고 봤을 때 “기생충”을 능가하는 한국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1626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입니다. 이 두 영화의 힘으로 2019년 상반기 한국영화 관객 수는 총 5688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91만 명(26.5%) 증가했고,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5.4%p 증가한 52.0%를 기록했습니다. 2013년 이후 6년 만에 상반기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이 50%를 넘어서면서 그 주도권을 한국영화가 되찾은 것입니다. 이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캡틴 마블”, “알라딘”과 같은 대형 외화들 사이에서 이루어낸 값진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맨 처음 연재를 시작하며 언급했듯, 많은 사람이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대중성’은 저의 영화 선택 기준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기에 저도 이 거대한 흥행 물결에 일찌감치 합류했었습니다. 그런데 개봉 전까지는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코미디 영화가, 1626만 명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영화의 흥행요소에는 참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적용되어, 좀처럼 그 예측이 어렵습니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는 누구나 흥행을 점쳤던 큰 상업영화들의 연이은 실패를 목격했기 때문에 “극한직업”의 흥행이 더욱 주목받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극한직업”은 참으로 재밌는 영화입니다. 잘 짜인 상황과 톡톡 튀는 대사들의 재기 발랄함으로 가득한 영화입니다. 각박한 현실 가운데에서 생각없이 한바탕 웃고 말 수 있는 그런 여유를 주는 영화, 그것만으로도 참 반가운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적으로 봤을 때는 연출과 개연성 등의 문제에 있어 따지고 들 만한 부분들도 많습니다. 또한 뻔한 스토리 진행과 진부한 표현(클리셰)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부분들마저도 이 영화의 장점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은 영화가 가진 공감대의 힘이 더 컸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그 ‘뻔하지만 뻔하지 않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미 포화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흔한 ‘형사’, ‘범죄’라는 소재가 ‘치킨’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기호식품과 적절히 버무려지면서 큰 시너지를 이끌어 냈습니다. 그 뻔한 ‘치킨’도 잠복근무 중인 형사가 직접 튀기는 치킨, 갈비 양념을 버무린 ‘수원 왕갈비통닭’이라는 뻔하지 않음을 만나며 하나의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형사물을 가장한 치킨 광고’를 본 것 같다는 후기가 나올 정도로 그 힘은 강력했습니다.

또한 이 영화의 제목 “극한직업”. 가벼운 코미디와 판타지로 가득한 이 형사물의 제목이 만약 ‘마약전담반’, ‘웃기는 형사들’ 정도였다면 와 닿는 느낌이 조금은 달라졌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랬다면 이 영화는 그저 ‘재밌구나.’, ‘그저 그런 형사들의 이야기구나.’ 하고 끝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수많은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삶 가운데 ‘극한직업’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치열함과 수고스러움이 결코 남의 이야기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감대는 자연스럽게 우리 삶의 자리로 이어집니다. “열혈사제”의 ‘열혈’이란 단어가 그랬듯이 “극한직업”의 ‘극한’은 모든 사람들의 삶에 금방 적용됩니다. 인터넷상에 ‘극한취재’, ‘극한병원’, ‘극한수업’, ‘극한작업’ 등 이미 수많은 패러디물이 즐비합니다. 이처럼 지금의 문화는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재평가, 재구성, 재생산하는 가운데 무한히 확장되는 양상을 띠기에,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공감대는 그런 재생산자들에게 아주 좋은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 교회 안에서도 크고 작은 움직임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특별히 신학교의 후배님들이 직접 만든 ‘극한 성소’라는 영상은 이번호 주제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습니다. 다음호에서는 그러한 교회 안의 움직임들과 ‘극한성소’라는 주제 안에서 나름의 성찰을 이어가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 추천영상은 그 영상들로 대신하려합니다. 유튜브에서 ‘대구관구 대신학원 성소주일’ 채널을 통해 신학생들이 직접 만든 ‘극한성소’를 비롯한 다양한 영상들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