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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치유의 해’
오다가 주웠어!


글 이영승 아우구스티노 신부 | 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 원목 담당

 

‘뜬금없이’, ‘그냥’, ‘오늘이니까’. 이런 단어를 들으시면 어떤 느낌이 드실까요? 최근 들어 제가 자주 하게 된 표현들이라서 그런지 저는 참 익숙한 말들인데, 여러분들도 평소에 자주 사용하시는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요즘 자주 사용하는 이 말들, ‘뜬금없이 ’, ‘그냥 ’, ‘오늘이니까 ’ 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드릴까 합니다.

 

먼저 ‘뜬금없이’입니다.

병원에서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번 얼굴을 마주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럴 때마다 늘 똑같이 인사드리곤 하는데, 요즘처럼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에 조금은 지쳐서일까요? 조금은 색다른 인사도 한 번씩 건네 보곤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지정된 물리치료나 재활치료 시간 이외에 병원에 마련된 체력 단련실에서 틈틈이 걷기 운동, 근력 운동을 하시는 환우분이 한 분 계십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하게 체력 단련실을 지키고 계신 분이지요. 특히 제가 다니는 동선과 아주 많이 겹치는(?) 체력 단련실에 늘 그분이 계셔서 반복되고 같은 인사를 드리는 것이 저도 지겹고 그분도 그저 그럴 것 같아서 어느 날 이렇게 인사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요. 아주 뜬금없이 말이죠. 그러면 그분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뭐…뭘…?” 그럼 저는 다시 말씀드리죠. “매일 매일 열심히 운동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요.” 라고요.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면 그분은 어색하게 웃으시며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뜬금없긴 하지만 저도 감사하네요, 허허허.” 네, 오늘도 이렇게 서로 한 번씩 웃게 되었습니다. 뜬금없긴하지만요.

 

다음은 ‘그냥’입니다.

병원에서는 제 자리에 앉아 오랜 시간 작업을 해도 그다지 덥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제 방(숙소)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면 왜 그리도 더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한 가지 큰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그건 바로 방석이었습니다. 원목실의 제 의자에는 오랜 시간 앉아도 괜찮을 여름 방석이 있어서 그나마 덜 더웠던 것이죠. 그러다 가만 생각해보니 병원에서는 오랜 시간 앉아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다 한 명 두 명,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분들의 수를 헤아리니 생각보다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방석을 하나 주문하는 김에 그분들에게도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세 차례에 걸쳐 나눠 주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시는 분들, 그리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기도 하시지만 그래도 일어서 있는 시간보다 앉아서 업무를 보는 시간이 더 많은 분들을 위주로 방석을 뿌리고(?) 다녔습니다. 뜻밖의 선물을 받으신 그분들의 놀란 표정에 저는 이렇게 말씀 드렸지요. “그냥요, 요즘 덥잖아요!” 그러면 더 길게 말씀드리지 않아도 서로 무언의 감사로움이 피어납니다. 저는 더운데도 묵묵히 일하시는 그분들의 마음에 감사하고, 그분들은 그런 자신들을 기억해주는 저의 무심한 ‘그냥’에 감사로운 것이지요. 그냥 서로 감사로울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더 그렇기도 하고요.

 

그리고 다음은 ‘오늘이니까’입니다.

이제 대충 어떤 느낌의 이야기일지 감이 오시려나요? 맞습니다. 오늘이니까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저희 전인병원 3층에는 카페가 있는데, 음료 쿠폰을 판매하고 있거든요. 한 날은 그걸 100장을 구매했습니다. 각 부서별로 수고의 의미로 전달해 드려도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그러지 않고 한 날은 주머니에 대여섯 장을 넣어 두고 병원을 다니다가 서로 마주치고 인사하게 된 직원 분들이나 보호자 분들에게 무심하게 “더운데 차나 한 잔 하셔요.”라며 건네 드립니다. 그러면 갑작스런 커피 쿠폰에 적잖이 당황하시며 이걸 왜 주시냐고 저에게 물으시지요. 그때 저는 어떻게 대답한다고요? 맞습니다. “오늘이니까요.”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오늘이니까에는 조금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그냥 오늘이니까요, 하고 돌아서버리면 정말 저 혼자 기분 좋아 보이고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주의하셔야 합니다!) 반드시 그 다음에 간단하게 이유도 말씀드려야 된답니다. “오늘이니까요. 오늘 하루 힘내시라고요!” “오늘이니까요. 오늘은 무지 덥잖아요?” 하며 간단하게라도 말이지요. 그래야 무심함 속에 담긴 마음들을 전할 수 있답니다.

어떠신가요? 여러분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것들이지요? 굳이 돈을 들여서 여러분도 주변 분들에게 이렇게 하시라는 것이 아니라 무심한 듯 보여도 상대에게 기쁨이나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참 많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무심한 듯한 배려가 때로는 기억에 오래 남기도 하거든요.

어느 날 아는 분이 저에게 “오다 주웠다!”라고 적힌 쇼핑백에 쿠키를 담아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쇼핑백의 그 문구도 재치가 있어서 기억에 남지만, 정말로 뜬금없이 그냥, 주신 선물이어서 더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뜬금없는 무심함 속에 어쩌면 더 깊은 감사를 담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연일 마스크를 착용해 피곤하고, 하루하루 지쳐가기 쉬운 요즘 여러분들의 무심한 사랑을 나눠보시면 좋겠습니다. 뜬금없이, 그냥, 오늘이라서 말이지요. 그러면 여러분도 누군가를 오늘 하루는 ‘살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 여러분! 오늘은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에게 이걸 드릴게요. 오다 주웠습니다. 바로, 제 마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