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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편지
겸손


글 심탁 클레멘스 신부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교구 선교사목

 

 

가끔 생각, 말, 행동으로 살고 싶은 적은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흔히 겸손은 주로 남을 평가하고, 남에게 평가받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의 저에게 겸손은 ① 하늘을 우러르기에도 송구스럽고 무의미한 이 죄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질 때 생기는 태도, ② 특히 헤아릴 수 없이 크고 위대하신 은혜와 사랑 앞에 또 그 현존 앞에서 너무나 두렵고 떨려서 어쩔 줄을 모르는 인간의 심정, ③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감히 이 무용지물의 죄인이 무한 감사로 당신께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드리는 신앙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말은 복잡하지만, 체험을 해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러면서도 그 말의 진정한 영성적 깊이와 크기는 알지 못해 자주 소화불량에 걸립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2020년 5월 30~31일)

코로나19로 인해 성가대가 없고 선창자도 몇 안 되는 관계로 본당 사목회의를 통해 주임신부는 자신이 모든 미사에 주례와 강론을 맡을 테니 저에게 기타 반주 및 선창자(솔리스트)로 공동 주례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참고로 토요일 저녁 오후 6시 30분, 주일 오전 9시 30분, 오전 11시, 오후 6시, ‘단 오전 9시 30분 미사는 지휘자 ‘제라르’와 반주자 ‘달리’가 있으니 미사에 출석하되 선창은 안 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사실 제 수준은 코드를 박자에 맞게 잘 치는 것도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보다도 악보의 작은 글씨로 쓰인 가사들을 정확하게 발음하며 노래하기는 훨씬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제가 좋아하는 곡으로 전례시기에 맞게 골라서 미사 때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신부가 제대에서 기타 매고 성가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주임신부의 요청이어서 ‘이 또한 코로나19가 주는 변화로구나.’ 싶었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전 금요일. 코로나19로 공식 행사가 중지된 소위 주교좌급 성당 신장개업 준비! 성당 입구와 출구의 구별 표지판 만들기, 안내표 만들기, 프린트 후 비닐 바인더에 끼우기, 780석에 좌석표 붙이기, 좌석간 거리유지 경계 리본 달기, 의자 좌석 소독, 바닥길 안내 테이프 붙이기 등 토요일 주례 사제는 (드물게 독신인) 종신 부제와 함께 제대를 중심으로 좌측 주례석에, 선창자 겸 반주자인 저는 우측 독서대에서 4미터 떨어진 곳에서 미사를 거행했습니다. 미사 후에는 열심한 몇몇 신자들과 함께 다시 성당 소독도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 사이에는 성당을 개방합니다. 저는 소독한 성당을 유지, 관리하는 것과 성당 개방을 유지하는 것의 상호 충돌이 일어나는 것 같아 질문을 했습니다. 내일 성당문은 몇 시에 열어야 하며, 낮 시간은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러자 ‘내일(주일) 오전 9시 15분에 문 연다.’고 주임신부는 답해 주었습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성령 강림 대축일 당일 오전 930분 미사.

첫째, 대축일 오전 9시에 조금 이르다는 느낌으로 11시 미사용 기타를 매고 앰프를 들고 사제관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성당 문을 여는 순간, 주임신부는 이미 거기서 부제와 함께 신자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으잉, 이건 뭐지?’ 미세한 의문을 가지며 제의방으로 가서 미사 준비를 했습니다. 드디어 미사 중 독서자 겸 응송자 한 분과 선창자가 같은 마이크를 사용하고 있었고, 거리 유지 또한 애매했습니다. 응송의 시편과 후렴 성가를 교대하는 과정에서 거리유지가 잘 안 된 것입니다. 보면서도 그런가 싶었습니다. 15분 넘는 강론이 귀에 잘 안 들렸으나, 마음에 새긴 것은 성령의 은혜로 더욱 창의적 정신과 인내로 위기를 잘 극복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부제가 맡은 일곱 개의 신자들의 기도는 길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곧 있을 오전 11시 미사곡 노래와 기타 연주의 어려운 부분이 떠올라 분심이 생겼습니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 공수된 스프레이 소독액으로 영성체 전·후로 주례사제의 손을 소독해 주었습니다.

급기야 미사 후, 지휘자는 안 하던 선창을 한 터라 신부들의 반응이 궁금해 ‘괜찮았어요?’ 묻는데, 주임신부의 예상치 못한 폭탄이 투하되었습니다. 지휘자에게 좋았다는 말 대신에, ‘너는 왜 사회적 거리 유지를 안 하는데?’ 갑자기 급선회하면서 저에게 ‘이건 끌레망 책임이야! 네가 직접 컨트롤해야지. 그리고 미사 전에 미리 와서 신자들 맞이해야지, 기타만 안고 다니면 다야?’ 그 시간은 마침 미사 봉사 교대 시간이라 제의방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기에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오늘 주임신부가 남 상처 주는 은사를 받았나?’ 비록 속으로 말하긴 했지만 아마도 과거의 저였다면 그 순간 참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둘째, 오전 9시 30분 미사가 길었던 관계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10시 50분, 빨리 화장실 다녀와서 반주 준비를 해야 되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반주자와 선창자, 독서자가 입장했습니다. ‘어라?’ 주임신부에게 물었습니다. ‘나한테 오전 9시 30분 이외의 미사에서 성가를 다 맡으라고 하지 않았냐?’고. 그러자 ‘내가 언제?’, ‘….’ 주의력 결핍, 이해력 부족, 망각, 소통부재 혹은 부분적 정보공유 등으로 의사소통에는 단지 언어 실력의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11시 미사, 분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야, 너는 상처 주는 은사 받았냐?’라고 말해주고 싶은 생각이 떠오르는 바람에…. (참고로 주임신부는 1963년생으로 1997년 서품, 저는 1964년생으로 1991년 서품, 부제는 1965년생입니다. 우리 모두 한 살 터울의 친구들인 셈이죠.) 미사가 끝난 뒤 또다시 성당 소독과 청소가 이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보통 늦은 오후 1시 30분에 점심식사를 하러 사제관으로 돌아옵니다. 너무 긴장하고 스트레스가 심해서 ‘점심 먹고 저녁 미사 전까지 자야지.’ 생각했는데 드물게 사다 놓은 문어다리가 생각나서 물을 끓이고 고추장, 식초, 올리고당으로 초장을 만든 다음 밥을 뜨니 결국 점심식사가 3시경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설거지까지…. 그 사이 긴장감과 피로감은 다소 풀렸습니다. 눕지도 못한 채 잠시 앉아있다가 오후 4시 20분, 다시 저녁미사 준비행. 성당 문을 개방한 상태라 치워둔 악기들, 음향 장비들을 다시 세팅해야 됩니다. 물론 연습도 해야 하고요. 코로나19 이후 제대 미사 준비는 저의 전담이었습니다. 버릇이 생겨서, 성당에 한두 시간 전에 가서 준비를 천천히 해 놓고 필요한 기도를 하고 휴식도 취하며 연습을 합니다. 오후 6시 대축일 마지막 미사, 지역 합창단 지휘자를 저의 음악 밴드 지도로 어렵사리 모셔 온 덕분에 저녁에는 키보드와 기타, 그리고 저의 솔로로 미사곡을 진행했습니다. 두 번의 실전 경험이 있어 좀 더 여유 있고 풍성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너무 좋은 점은 미사 자체와 성가 가사가 그야말로 저에게 절절한 기도가 되어 주었고 위로가 되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가 잘 끝난 뒤 악기, 제대, 성당 문단속 등 모든 것을 제 손으로 다시 최종 마무리를 하고서야 비로소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저녁식사 생략. 오후 8가 되어 밀린 주일 제2저녁 기도를 바치는 동안 예상치 못한 진한 감동이 가슴을 채웠습니다. 설명이 어렵습니다. 기쁨, 환희 같은 종류입니다. 성무일도 한 단어 한 단어가 예사롭지 않고, 살아서 제 영혼을 어루만지고 위로하고 치유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사실 다소 힘들었는데, 힘든 하루였는데… 불쾌하고 화도 났고…, 단지 한 것이라고는 내 전공 ‘불 대포 같고, 비수 같은 말’을 억지로 참은 것밖에 없는데…! 이것이 기도하는 동안 받는 은혜일까요! 이 순간이 너무 귀해서, 프랑스에 있는 대구 선교사 유학생 형제들과 이 메시지를 나누었습니다. 끝으로 더 놀라운 것은 기도 중에 ‘남을 상처 주고 불편하게 하는 은사’의 그 주인공이 과거에는 저 자신이었다는 점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내면 관리와 언어 통제력 상실. 저의 주변 신자들, 선·후배 형제 신부들, 책임 있는 신부로 있을 때 직원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40대 주임신부가 되면서 보좌 때 안 보이던 주임의 고충과 어려움들을 좀 알게 되었고, 50중반 보좌급 협력 사제로 살면서 과거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접었습니다. 그 말 ‘너, 상처 주는 은사 받았나?’

 

여전히 저에게는 시작일 뿐입니다, 저에게 맞춤형 주님의 양성 교육: ‘저의 혈기에 찬 정의감이나 분노는 저 자신을 포함한 누구의 영혼도 구할 수 없으며, 오직 주님의 능력만이 성취를 이루신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저를 더욱 낮추어, 모든 것에서 배우고 믿고 아는 대로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초기 사도들처럼 수천 명 선교는 못할지언정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 겸손으로 당신을 드러내게 하시고, 당신을 배우게 하소서! 그 친구의 문제는 당신이 알아서 해결해 주시고, 당신 앞에 서 있는 이 하잘 것 없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성령 강림 대축일 후 월요일, 이곳에서는 이 날도 거의 주일처럼 미사를 장엄하게 드립니다. 하루 동안 저는 묵주를 들고 주변 들판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것을 잘 받아들이고 싶었으니까요. 모든 고난이나 고생 안에서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영광이 저에게도 주어진다면, 기꺼이 받을 수 있는 용기와 통찰력을 달라고 청해보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