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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바보같은 사랑 노래


글 허찬욱 도미니코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비틀즈(Beatles)는 1970년에 렛잇비(Let it be) 앨범을 낸 후 해산합니다. 멤버들은 팀을 해체한 후에도 각자의 활동을 이어나가지요. 가장 활발한 활동을 했던 멤버는 존 레논(John Lennon)과 폴 메카트니(Paul McCartney)였습니다. 이 둘의 성향은 많이 달랐습니다. 존 레논은 비틀즈 때 보다 더 무겁고 진지한 메시지를 노래에 담았습니다. 이매진(Imagine)이 대표적인 곡이지요. 국가와 민족도 없고, 갈등과 전쟁도 없는 세상, 선한 마음으로 함께 하늘을 우러를 수 있는 평화로운 세계를 존 레논은 음악을 통해 그려냅니다. 반면 폴 메카트니는 시종일관 사랑에 관한 노래들만 발표합니다. 존 레논은 그런 폴 메카트니가 영 마뜩잖았나 봅니다. 존 레논은 폴 메카트니를 이렇게 비판합니다. “폴 메카트니가 부르는 노래는 바보같은 사랑 노래밖에 없다.”고요.

 

폴 메카트니는 빌보드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가 하는 말을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까지 늘 사랑에 관한 노래를 불러왔죠. 나는 사랑 노래가 좋습니다. 저 말고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고요. (…) 사랑 노래가 어리석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지만, 사랑 노래가 뭐가 잘못된 거죠?”

 

1976년 폴 메카트니는 존 레논의 비판에 응수라도 하듯 ‘바보같은 사랑 노래(Silly Love Songs)’라는 곡을 발표합니다. 이 ‘바보같은 사랑 노래’는 많은 사랑을 받아, 5주 동안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합니다. 폴 메카트니의 많은 사랑 노래 중에서 사랑(Love)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노래입니다. 가사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바보같은 사랑 노래는 지겹게 들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아. 바보같은 사랑 노래로 세상을 채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게 뭐가 어때서? 난 정말 알고 싶어. 그래서 난 다시 노래해. 사랑해, 사랑해. 당신을 사랑해.”

 

누군가 사랑 이야기를 꺼낼 량이면 곧 상투적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들은 사랑이라는 말만 들으면 식상하다고 고개를 젓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저는 묻고 싶습니다. 정말 사랑이 상투적이고 식상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하는 사랑의 방식이 상투적이고 식상한 것인지를 말입니다. 사랑 자체가 식상한 것이라면 도대체 이 세상에서 식상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요.

 

신학을 공부하면서 사랑 이야기를 참 많이도 들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오신 육화도 사랑의 신비이고, 빵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성체성사도 사랑의 신비이며, 삼위일체도 결국 친교를 이루기 위한 사랑의 신비였습니다. 저도 신학생 때, 반복되는 이러한 사랑 이야기에 좀 지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귀결되는 모든 신학의 논의들이 너무 안이하다 싶었습니다. 열띤 고민과 성찰 없이 사랑이라는 몽글몽글한 단어 뒤에 숨어버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 자주 사용되어 텅 비어있는 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했지요. 신학에는 사랑이라는 단어보다는 좀 더 정확하고 더 날카로우며 단단한 개념이 있어야 한다고 저는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흐릿한 단어, 수만 가지 상념을 떠올리게 하는 이 단어가 이제는 싫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아졌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싫어했던 이유, 명확하지 않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저는 이제 사랑이라는 단어가 좋아졌습니다.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의미를 품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쓸 때마다 비어있는 그 넉넉한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들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확정하고 종결짓는 단어가 아니라 풀어놓고 열어가는 단어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하루에 수만 번 써도, 그 중에 같은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같은 사람이라도 마음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그 모습을 달리하는 것이 사랑이지요. 지금 말하는 사랑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늘 곱씹게 됩니다. ‘바보같은 사랑 노래’는 없습니다. 조금씩 달라지는 사랑의 의미를 묻지 않고, 사랑의 의미를 하나로만 고정하여 쓰고 읽는 바보같은 마음들이 있을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