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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치유의 해’
사랑의 고백을 수신하세요!


글 이영승 아우구스티노 신부 | 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 원목 담당

날씨는 무덥고 그렇다고 마스크는 마음 편히 벗을 수도 없는 요즘, 한 선배 신부님께서 저를 보시더니 조금 지쳐보였던지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데? 그걸 해봐.” 라고 말이지요. 그 순간에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바로 대답은 드리지 못했지만, 한참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사제로 살아오면서 주변 분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많이 들었던 말이, “신부님은 호불호가 정확하시네요!” 라는 것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 역시 확실하다는 뜻이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도 모자란데 굳이 좋아하지 않는 것 때문에 내 마음을 쓰고 신경을 쓰고, 내 자신을 힘들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좋아하는 것들에, 좋아해야 할 것들에 더 시간을 들이고 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네 삶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지만 이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에 마음을 너무 써가며 나를 힘들게는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마음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겠지요. 막연한 미래에 대한 걱정만을 쌓아 가는 일, 나에게 상처를 준 누군가를 생각하며 매일매일 미움과 분노를 내 안에 채워 가는 일, 내 몸을 건강하게 하기보다는 망쳐만 가는 덧없는 일에 내 시간을 쏟는 일 등 이런 것들을 아예 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 내가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나와 내 주변도 무너뜨리고 마는 이런 일들에 우리의 아까운 시간과 마음을 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그 시간과 마음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써보시면 어떨까요?

저는 좋아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바쁩니다. 이것도 좋아하고 저것도 좋아해서 여러 가지 것들을 더 좋아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많이 바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저 자신을 너무 슬프게 만드는 일을 경험하고야 말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더 이상 좋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많은 것들 중에서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웃음을 공유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대화는 일이 되어 버렸고, 웃을 일들도 줄어버렸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힘들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웃는 것과 함께하는 것은 비록 몸의 거리는 유지하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대화가 일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저는 참으로 슬퍼졌습니다.

병원에서의 하루하루가 가슴 뿌듯했던 이유는 매일같이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것이 일이 되어 저에게 다가오자 저는 좋아하지 않는 일에 온갖 마음을 쓰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좋아서 하는 대화가 아니라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어서, 그래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되어버렸던 것이지요.

그래서 계속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여러분들도 자주 이용하실(?) 그 방법을 사용해보기로 했습니다. 바로 기도, 말이지요. ‘왜 갑자기 대화가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어쩌다 예전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제일 불편한 것이 되어버렸을까?’

그렇게 기도 안에서 물음에 물음을 던지고, 그분의 대답을 청하고 청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동안 듣지 못했던 말,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말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사랑한다’라는 말이었습니다.

특히나 호불호가 강한 저는,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사랑한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고, 너무 흔하디흔한 말처럼 들릴 정도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사용했던 사람이었는데, 최근에는 이 말과 너무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제 자신에게도 인색했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인색했고, 좋아하는 것들에게도 인색했고, 심지어는 하느님께마저 사랑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기에 인색했던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 요즘 같은 상황에서 너무 철없어 보일 거란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더 해주어야 하는 말이 이 “사랑해.”라는 말이 아닐까요? “힘내.” 라는 말보다는 “사랑해.”라는 말이 요즘 같은 때에 더 서로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한 가지 꼼수(?)를 부렸습니다. 매일 “사랑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 많게는 수백 번까지도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게 요즘 제가 좋아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것 덕분에 제 마음도 많이 건강해졌습니다. 어떤 방법인지 궁금하시지요?

바로 여러분 모두가 자주 사용하시는 스마트폰 메신저의 알림음을 “사랑해.”로 바꾸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스마트폰 메신저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시지를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기도 하고, 의견을 주고받고 공지를 전달하고 필요할 때는 감사의 인사나 안부도 주고받지요. 비대면을 강조하는 요즘 시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밀려드는 메시지에 지쳐버리기도 하는데, 이제는 메시지가 올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행복해집니다. 더 이상 온라인 상의 대화는 일이 아니라 기분 좋은 일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물론 병실에 드나들 때나 미사 때에는 알림음을 꺼두지만 혼자 있을 때는 알림음을 켜두고 저에게 오는 사랑의 고백들을 기쁘게 수신합니다. 쉬는 날에 찾아오는 메시지들도 이제는 마지못해 확인하는 무언가가 아닌 누가 또 나에게 고백을 하는 건가, 하며 능동적으로 확인하게 될 정도니까요. 그러다 보니 좋아했던 대화들도 더 이상 일이 아니라 내가 마음을 더 쏟고 싶은 것이 되었고, 혼자서 배시시 웃긴하지만 웃을 일도 많아졌습니다.(저는 메시지를 수신할 일이 참 많거든요.) 그리고 상대방에게 답장을 보내는 일 역시도 행복한 일이 되었습니다. 비록상대방의 알림음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말이죠.

덥고 더운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무언가 지쳐만 가고, 좋아하던 것들이 더 이상 좋아지지 않게 된 분들이 계시다면 잠시 삶의 변화를 줘보시면 어떨까요? 아니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 보신 지가 얼마나 되셨는지요? 주변에서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할 사람이 없다고요? 아니요! 충분합니다. 비록 기계음일지라도, 여러분의 알림음을 한번 “사랑해.”로 바꿔 보세요. 그러면 매일매일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전에 한 가지! 그 사랑의 고백을 듣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적어도 한 번은 보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마세요. 그래야 답장으로 그 고백을 들으실 수 있을 테니까요.

자, 폰을 꺼내시고 알림음을 변경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아무에게나 메시지를 보내세요. 가장 빠르게 답장을 받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잘 지내?” 그러면 곧 여러분은 듣게 되실 거예요. “사랑해.”라고 말이지요.

더운 여름, 사랑의 고백을 한가득 받으셔서 여러분이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조금이라도 누리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더 많이 하시려면 마음의 건강부터 회복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