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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치유의 해’
샤워 제대로 하셨습니까?


글 이영승 아우구스티노 신부 | 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 원목 담당

 

우리의 일상에서 활기를 앗아간 질병과 함께한 지도 반년이나 지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치기도 하셨고 또 예기 치 못하게 삶의 기반을 잃으신 분들도 참 많습니다. 어떤 분의 표현처럼 ‘꾸준히 하면 희망이 보였던 삶도 이제는 없는 것 같은’ 요즘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또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병원에서의 하루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건강해지리란 희망으로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또 하루 종일 꾸준히 재활에 힘쓰다 잠자리에 드는 반복된 일상이 제가 만나는 환우 분들의 대부분의 삶입니다. 하지만 어디 우리 삶이 늘 같은 일만 반복이 되었던가요? 괴롭고 지친 일들 가운데에도 웃을 일이 한두 번쯤은 생기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저희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달에 두 번, 코로나19로 중지했던 ‘빙고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경품 팡팡 빙고게임’! 이라고 이름은 지었지만, 엄청나게 대단한 경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소하게 일상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선물드리는 것뿐인데도 환우 분들의 반응은 엄청납니다. 어느 정도로 대단한지 지난 달에 빙고게임이 있었던 날의 대화를 잠시 공유해 볼게요.

 

A환우 분 : “(숨을 헐떡이며) 오늘 빙고 있는 날이죠?”

저 : “네, 이따 오후 2시 30분부터 있습니다.”

A환우분 : “아, 그러면 치료 받는 시간 조절해야겠네요.”

저 : “(살짝 웃으며) 아니, 빙고게임보다 치료가 우선이세요.”

A환우 분 : “아녜요, 신부님. 저한테는 빙고게임이 오히려 더 치료가 되는 거 같아요, 엄청 웃다가 내려오거든요. 그럼 얼른 치료시간 조절하고 올게요.”

저 : “아 … 저 … 저기 …”(이미 멀리 사라져 버리신 환우 분 … )

 

손바닥만한 종이에 무작위로 적힌 숫자들을 하나씩 뒤집다가 3줄 이상의 숫자가 뒤집혔을 때, 재빨리 “빙고!” 하고 외치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단순 놀이지만, 환우 분들의 집중력은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제가 농담으로 이런 말까지 서슴없이 건네곤 합니다.

 

“여러분, 이 놀이에 목숨 걸지 마시고(?) 치료에 목숨을 거셔야 합니다!”

 

그래도 재미있고 행복한 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병실을 여기 저기 오가면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빙고 게임 또 언제해요?” 이니까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 불현듯 찾아오는 것들이 우리를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는 생각 말이지요. 반복된 일상은 그저 당연한 것이고 예기치 않았던 것들이 평범했던 우리의 삶을, 우리의 감정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최근의 상황들이 그것을 가장 잘 이야기 해주고 있겠지요.

그런데 일상의 평범하고 반복된 행동들이, 우리의 삶을 혹은 우리의 감정을 기쁘게 해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예기치 못한 일이 아니어도 내가 매일 하는 행동이 나의 하루를 활기차게 하고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매일매일 내가 반복해서 하고 있는 것들을 먼저 찾아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매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나요?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 저는 한 가지 놀라운 질문을 받았습니다. 어떤 심리치유사가 일에 너무 지친 나머지 대학 동창을 만나 괴로움을 토로했는데, 고민을 듣던 심리치유사 친구가 책의 저자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너, 샤워는 제대로 하고 있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시죠? 그 심리치유사도,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말의 의미를 설명하는 친구의 말을 듣고 금방 이해를 했습니다.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유일하게 나 혼자 있는 시간이자, 간밤의 피로와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 내리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 바로, 샤워하는 시간인 것이죠.

누구도 아닌 나 혼자 씻으며 하루를 준비하고 또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책의 저자에게 물었던 그 친구의 물음은 다름 아닌, 그 시간을 정말 소중히 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쏟아지는 물줄기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오늘 하루를 준비할 수도 있는 그 시간을 대충대충 흘려보내지 말라는 조언이기도 했겠지요.

그러고 보면 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요즘 ‘나를 돌아볼 시간’이 너무 없다고 말합니다. 일상이 팍팍해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래서 더 그런 시간을 내는 것이 사치인 것처럼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그런 시간을 충분히 일상 안에서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반복된 나의 일상 안에서 말이지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고, 흐르는 물에 고단함과 걱정거리도 함께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나와의 대화를 가장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는 그 시간(물론 깨끗이 씻는 일에 집중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이 적어도 하루 한두 번은 그렇게 나를 씻어내면서 마음정리도, 일상의 정리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여러분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피정이나 여행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고 의미가 있지만 현실 상황 안에서 그러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기에 이미 주어진 그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도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저는 재활에 의욕을 잃으신 몇몇 환우 분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곤 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믿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할 수 없고 나를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지요. 마찬가지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돌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 한 달은 이렇게 자신에게 되물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나, 요즘 샤워는 제대로 하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