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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편지
죽음의 로사리오


글 심탁 클레멘스 신부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교구 선교사목

 

천주교 할머니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리스도교의 가장 충실한 기도부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종교를 불문하고 할머니들이 신앙의 핵심 전수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콜마르 선교 둘째 해인 2017년 8월 어느 주일, 매일 미사를 드리며 성모신심으로 똘똘 뭉친 어느 할머니들의 기도 모임으로부터 점심 초대를 받았습니다. 보통 주일 점심시간쯤이면 긴장이 풀리고 해방감을 느끼곤 하는데, 저를 초대한 이 할머니는 과거나 현재에 본당의 제의방을 관리하거나 청소 등에 앞장서는 자원 봉사자로 거의 모든 대리구나 지역 행사에 참여하셔서 항상 앞자리에 앉아 기도를 하십니다. 열심한 ‘대구 할매들’을 떠올리게 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저를 마치 자신들의 손자를 대하듯 하십니다. 따뜻한 미소, 다정한 말씀, 웃는 눈빛으로 바라보시거나 간혹 어떤 분은 등을 두드리기도 하십니다.(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프랑스식 비주-뺨에 입맞춤-로 인사하곤 했습니다.) ‘키 작고 못생긴 아시아 신부가 객지에서 선교하느라 고생한다.’는 속뜻이 담긴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당신들 앞에 서 있는 이방인을 귀히 여기고 즐거운 마음으로 대하는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미사 후 간단히 인사를 나누던 사이였다면, 가정에 초대를 받은 현재는 사적인 질문이 가능한 상황이 되었고 나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또 부모님은 건강하신지, 형제가 몇 명인지, 몇 살에 신학교에 갔는지 등등. 결국 당신의 아들 나이와 비슷한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십니다. 그동안 10~20세 정도 아래로 보신 것 같습니다.

저를 초대한 크리스티안느 할머니와 크리스티앙 할아버지 부부는 제가 선교 오기 1년 전 저보다 한 살 어린 둘째 아들을 우울증 자살로 잃었습니다. 80대 노부부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신 채 신앙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기도가 없으면 하루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주님께 밀착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점잖고 중후한 할아버지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할머니의 신앙에 힘입어 조금씩 회심을 하시던 중,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하느님의 현존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 말씀을 참으로 믿으며 부부 일심동체가 되어 하느님께 매달리고 계셨습니다. 또 할아버지는 홀로 되신 할머니들을 미사와 기도 모임에 모셔오는 차량 서비스도 하고 계십니다. 집 안은 거의 할머니의 지휘로 이루어졌습니다. 프로 선수끼리 모이면 그 안에서도 또 우열이 갈리는 장면을 봅니다.

 

그날의 점심식사는 12시부터 시작됐습니다. 첫째, 식욕을 돋우는 아페리티프: 맥주나 위스키 혹은 크레망(샴페인 종류의 알자스 명) 등을 비스킷이나 치즈 조각 등을 곁들이며 담소를 나눕니다. 둘째, 전식: 속을 파낸 멀롱(멜롱) 반 조각에 포르토(술)를 붓고 얇게 썬 짠 맛의 돼지 허벅지 훈제와 함께 먹기. 셋째, 본식: 소고기 스튜와 시금치 요리, 그리고 레드 와인. 넷째, 후식: 달콤한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다섯째, 디제스티프: 소화용 독주(40도 정도의 쉬납스), 그리고 커피와 차.

이 정도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누면 보통 서너 시간 정도 걸립니다. 평소 소식에 가까운 식습관을 가진 저는 어른들께 잘 보이고 싶어 최대한 맛있게 과식을 했습니다. 게다가 식전주 크레망(알자스 샴페인), 전식주 포르토, 본식주 레드 와인, 후식주 쉬납스까지 과음을 했습니다. 이렇게 풀코스를 달렸으니 온 몸이 피로감에 속으로는 몸부림이 쳐졌지만 ‘조금만 참자.’ 하지만 아무리 참아도 터져 나오는 하품과 졸음을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식탁에 앉은 채 깜빡 졸았는데 “자, 식탁을 정리합시다.”라고 안주인께서 말씀하십니다. ‘아, 이제 집에 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니, 그때부터 성가집을 내어 놓고 식탁에서 성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오잉? 이게 뭔 시추에이션?’ 마침 아는 성가도 있어서 같이 따라 불렀습니다. 잠도 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그만 둘 수는 없다.’ 그렇게 20~30분을 찬양한 뒤 크리스티안느 할머니는 “자, 이제 방을 옮깁시다.”라고 제안했고 옆방으로 옮겼습니다. 벽에 상본이 있고 방구석에 십자가와 촛불이 켜져 있고 벽으로는 의자들이 놓여 있어서 마치 수녀원 분원에 있는 기도실과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신부를 초대했으니 프로그램을 짜서 진행하시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방을 옮기면서 안주인께서 하시는 말씀, “우리는 매 주일 이렇게 합니다.” ‘오잉…?’

 

 

초대된 이들 모두 묵주를 준비해 오셨습니다. 저만 묵주를 지니지 않아 묵주를 빌려 주셨습니다. 기도 지향은 사제들을 위해 영광의 신비 5단. “전능하신 천주 성부…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아뿔싸! ‘성령’을 믿기도 전에 졸기 시작했습니다. 졸다 깨서 버텨보려 했지만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몇 번째 성모송인지…. 잠시 후 또 깨어서 지금이 몇 단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헉 다 같이 먹고 마셨는데 왜 다들 멀쩡하신지? 길을 걸으실 때는 확실히 노인처럼 보였는데 대체 무슨 힘으로 이렇게 깨어 기도에 집중하고 계신지?(체력에 관한 다소 놀라운 의문도 생겼지만 그보다는 부끄러웠습니다.) 결국 묵주를 떨어뜨리고 깜짝 놀라 화들짝 깨어났습니다. 코를 골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자체가 고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람도 잠시 다시 꾸벅꾸벅…. 간간이 눈을 뜨면 기도하는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성모송이나 영광송을 바치는 모습이 보이는데, 마치 환시를 보는 듯 기도 소 리와 기도부대의 결연한 모습이 가물가물 아련히 멀어져만 갔습니다. 마침 성모 성가 때 깼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너무 부끄럽고 비참했지만 바로 이런 기도부대가 오늘도 매일 아침 사제들과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요즘은 이런 기도의 힘 덕분에 그나마 생존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