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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선교 신앙수기
잃은 양 찾기를 통한 사랑실천


글 박선영 카타리나 | 내당성당

 

우리 본당은 소공동체를 지향하는 본당이어서 지역별, 동네 위주로 봉사활동을 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일들을 계획하고 활동하곤 한다. 본당에서 ‘선교의 달’을 정해 기록 현황판도 만들고 공동체에 시상도 하고 선교왕을 뽑아 상도 준다는 소식에 선교에 관심과 열의에 넘쳐 각 공동체마다 경쟁이 붙을 만큼 선교에 열성적인 분위기였다. 공동체별로 냉담 교우 회두와 선교에 전력을 기울일 때, 어릴 적 유아세례를 받아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신앙 안에 성장하게 된 나는 나이 오십이 넘었지만 냉담 교우 회두와 선교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할 생각도 없었고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인 듯 그냥 방관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다른 공동체의 활동 기록 현황판의 기록이 점점 많아지는 반면 우리 공동체는 한 명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점점 걱정도 되고 ‘뭐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를 몰랐다. 그러던 중 우리 공동체는 우리 구역의 교적을 조사하여 냉담 교우를 찾아 전화 안부와 우편함에 주보 넣기를 시작하였다. 나는 우리 라인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냉담 교우 두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회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평상시에 인사만 나누는 분들로, 몇십 년 전부터 성당에서 뵌 분들이었다. 매주 주일 우편함에 주보를 넣고는 ‘가져갔나?’ 하고 우편함을 확인하곤 했다. 없어지는 걸 보니 ‘가져가시는구나.’ 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보를 일주일에 한 번 우편함에 넣는 일은 간단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하다 보니 2부를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또 가지고 와서는 우편함에 넣는 것을 잊어버려 다시 넣으러 가기도 했다. 쉬워 보이지만 습관이 되기까지는 조금 힘들었다. 게다가 자매님과 형제님을 마주칠 때마다 부담스러워 하실까봐 “성당에 같이 가자.”는 얘기는 못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만 나누거나 자녀의 안부를 묻는 정도의 관심만 가지곤 했다.

 

우리 공동체는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기도하며 활동을 계속했다.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부활을 앞두고 공동체에서 마련한 달걀과 부활 축하 메시지를 담은 카드를 냉담 교우 가정에 돌렸다. 한 가정은 직접 전달하고 부재 중 가정에는 문고리에 걸어 두었다. 문고리에 걸어 둔 가정의 자매님이 우리집에 찾아와서 “관심 가져 줘서 고맙다.”며 “성당에 다시 가겠다.”고 했다. 가족 네 명이 모두 부활 대축일 미사에 참례하고 신부님과 면담하였다. 정말 기쁘고 기쁜 부활이었다. 나머지 한 가정은 언젠가부터 우편함에 넣어둔 주보를 가져가지 않고 그대로 두거나 주보가 바닥에 떨어져 있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 재활용으로 버리러 가는 것을 보게 되었고, 실망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지켜보았지만 우편함 주위에 버려진 주보를 보고는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아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는 주보 넣는 것을 중단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선교도 시큰둥해졌다. 또다시 예전처럼 방관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나의 마음에 선교위원장님의 열정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선교위원회 주최로 우리 아파트 입

구에서 두 달 동안 매주 일요일 오후에 선교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당번을 정해서 하고는 있지만 당번이 아닌 날에는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몇 주가 지난 주일 오후,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입구에서 선교위원장님이 일찍부터 나오셔서 현수막을 걸고 의자를 나르는 등 혼자서 미리 준비하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열심히 하시던지, “주일 오후에는 쉬셔야 하는데 다른 분들은 당번 때만 하시는데 매주 하시면 피곤하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에 기쁘고 행복하다.”고 대답하셨다. 선교위원장님의 열정에 놀랍고 그런 신심이 부럽기까지 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차를 대접하고 홍보용 책자도 나누어 드리면서 당번 봉사자들에게 선교의 열정을 불러일으켜 주셨다.

 

한 사람의 열정이 뿜어내는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 일을 계기로 나 역시 선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내 주위에 있는 냉담 교우를 생각하다 보니 얼마 전 우리 성당 구역 내에 이사 온 외사촌 동생이 떠올랐다. 안부 인사도 할 겸 전화를 해 보니 가장 큰 고민이 7세 아들이 한글에 관심이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사실 그동안 나는 한글을 모르는 이들을 매년 가르쳐 왔다. 마침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였기에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달쯤 지나서 외사촌 동생에게 “이제 아이들 신앙교육도 신경 써야 하지 않겠냐?”며 성당에 다시 나올 것을 조심스럽게 얘기했더니 뜻밖에도 흔쾌히 나오겠다고 했다. 사실 가고 싶어서 아이들 데리고 몇 번 가 본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가정은 조당에 걸려 있어서 나와 남편이 함께 증인을 서서 관면혼배를 하고 냉담도 풀었다. 제부도 성당에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아이들도 주일학교에 잘 다니고 동생도 다시 재교육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 하느님 은총 안에서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두 경험을 통해 선교에 대한 그동안의 나의 인식은 ‘나는 못 한다.’, ‘나와는 상관없다.’였는데, 선교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점이다. 생각이 바뀐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자신만의 고집,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는데 다른 이웃에 관심을 둔다는 것 자체가 둘째 계명인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조그만 관심이 주위의 냉담 교우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됨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의 마음에 식지 않고 꺼지지 않는 선교 열정이 굳건히 뿌리를 내려 이웃 사랑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신앙의 여정을 걷고 싶다.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