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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위로, 슬픔을 나누기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최근에 장례식장에 갈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썰렁했습니다. 감염 확산 우려에 부고를 전하고도 오지 마시라는 당부를 합니다. 비보를 접한 사람들은 조문을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어 난처해합니다. 유족들은 물론, 몇 안 되는 조문객들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조문을 드린 뒤, 음식도 먹지 않고 짧게 인사만 나누고 떠나갑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유족들은 슬픔 마저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켜야 하는 현실입니다.

 

장례예식은 어쩌면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한 것인지 모릅니다. 유족들은 떠나는 이에 대한 슬픈 감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떠나는 이가 이승에 남긴 여한이 없는지 살핍니다. 고인을 아는 지인들은 장례식장을 찾아 그를 추모하고, 유족을 아는 지인들은 그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며 위로를 전합니다. 상갓집에 모두 모여 떠난 이를 추모하며 남은 이들을 위로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우리네 장례예식입니다.

유교 문화에 따르면, 장례를 치른 후에 초우(初虞), 재우(再虞), 삼우(三虞) 제사를 치릅니다. 돌아가신 분의 영혼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사람은 혼백(魂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혼(魂)은 정신이요 영혼이며, 백(魄)은 형체를 가진 우리의 육신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땅에 묻혀 자연스레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그 육신을 떠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한다고 여겼습니다. 자손들이 제사를 지내며 혼을 달래, 영혼이 원래 왔던 하늘로 잘 돌아가기를 바라며 삼우제까지 지내는 것입니다. 혼(魂)과 백(魄)이 나누어져 백(魄)은 땅에 묻히고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기까지 삼일 정도가 걸린다고 생각하고, 또 장례를 치른 삼일 후에 묘소를 찾아 묘지가 제대로 갖춰졌는지 살피기 위해서 삼우제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 한 명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특히 고인을 잘 아는 가족과 친구들은 고인을 잘 떠나보내기 위해서 예를 갖추어 의식을 치르고, 이들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모여 그 슬픔을 나누며 위로합니다. 공자(孔子)께서도 상갓집을 방문할 때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를 다했습니다.

 

“공자께서는 상을 당한 사람 곁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는 배부르게 드신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 날에 곡(哭)을 하였으면 노래를 부르지 않으셨다.”1)

 

공자에게 상례(喪禮)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으로 함께 슬퍼하며 유족들을 위로하였으며, 오전에 상갓집에 가서 곡을 하고 오후에 잔칫집에 가서 술을 마시며 노래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진심으로 슬픔을 나누었다면 돌아서서 웃으며 노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위령 성월을 맞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죽은 이를 떠나보내며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죽음을 생각하다 보니,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삶’을 생각하는 것인가 봅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남아 있는 이들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 나의 남은 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훗날 나는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위령 성월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합니다.

위령 성월입니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한 계절,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남은 삶을 생각합시다.

 

“저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나이다.” (「위령감사송1」 가운데에서)

 

1) 『논어(論語)』, 「술이(述而)」, 9. “子食於有喪者之側, 未嘗飽也. 子於是日哭, 則 不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