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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삶
십자가와 함께 걸어가기


글 서보효 라이문도 신부 | 교구 성직자국장

 

고통의 순간들이 우리 삶에 깊이 파고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자기에게 주어진 짐이 너무 무겁고 힘겨워질 때도 있습니다.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해 보지만 매번 결코 쉽지 않다는 것만 느끼게 됩니다. 고통(짐)은 정말 우리 삶의 일부분인 것 같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고통(짐)을 잘 극복하는 것이 잘 살아가는 삶처럼 여겨집니다. 잘 살아가기 위해, 고통(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신앙인은 고통(짐)을 자신의 십자가로 여기며 그것을 잘 받아들이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오라 하셨기 때문입니다.1) 하지만 억지로 참고 인내하며 받아들일 때가 많아 고통(짐)은 잠잠하다가도 다시 고개를 들며 우리를 괴롭힙니다. 또한 십자가를 외면하고 싶고, 피하고도 싶고, 치워버리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분명 십자가를 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무거운 십자가와 같이 걸어갈 수 있을까요?

 

먼저 자신에게 무엇이 십자가인지 알아야 합니다. 흔히 십자가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나 짐이라 생각하는데, 십자가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외적 십자가와 내적 십자가가 바로 그것입니다. 외적 십자가는 겉으로 드러난 고통이나 짐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고통(짐)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것, 불행한 생활환경 속에서 생겨난 것, 타인에 의해 주어진 것 등 여러 상황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고통(짐)을 십자가로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고통(짐)은 법과 정의의 심판에 의해 해결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에게 닥친 고통(짐)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할 자신의 외적 십자가입니다.

 

외적 십자가를 인내하며 참고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 십자가입니다. 고통(짐)이 너무 힘들어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하거나 회피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는데, 이것은 자신 안에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 안의 이 부족한 부분이 바로 내적 십자가입니다. 예를 들면 넉넉하지 못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꿈을 포기하고 위험한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러한 환경을 원망하며 매일 불행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마음 안에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지만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 등이 부족해서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마음 안의 부족한 것이 바로 내적 십자가입니다.

 

내적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고통(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통(짐)을 느낄 때, 그렇게 만든 외부적인 요인을 찾기보다 고통(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지 않기에 끊임없이 남을 비난하고 심판하거나 잘못된 정책, 제도, 환경에만 불만을 가져 자신의 마음은 항상 부정적이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 잘못된 외부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고, 때론 그것을 변화시키려 노력해야 할 필요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 상태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하다면, 외부적인 잘못된 원인을 넘어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해칩니다. 내적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나가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져야 할 내적 십자가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되어야 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내적 십자가를 발견하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필요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성찰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찾고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외적 십자가는 고통이 아닌 영적 성숙의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분명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왜 우리에게 쉽지 않는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 하셨을까요? 이 질문은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왜 하필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을까?’ 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쉽고 편한 많은 방법이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죄인들이 죽어간 치욕적인 사형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을까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주님의 큰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힘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너무나 부족해 모든 것을 이기고 완성시키는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주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신 십자가는 우리 또한 그 사랑 안에 머물기를 바라시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되길 바라셨습니다.2)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단순히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넘어, 완전한 사랑 안에 머물길, 참다운 기쁨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셨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몸소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매일 조금씩 채워가려는 노력이 우리를 완전함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자신의 십자가는 결국 주님을 닮아가게 하는 열쇠가 됩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주님의 크신 사랑이 담겨있는 표현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잘 깨닫게 되면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깨닫게 됩니다. 고통(짐)을 통해 자신의 내적 십자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더욱 주님께 나아가고 그분을 닮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어떠한 것이라도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도구가 됨을 고통(짐)을 통해서도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기쁨과 행복의 지름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내 안에 있는 십자가를 발견하고 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큰 축복입니다.

 

1)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2)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