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신부님의 독서 일기
아픔에 다가설 수 없는 아픔


글 전형천 미카엘 신부 | 국내연학

 

2014년 가을, 평론가 신형철은 영화 평론집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내면서 속표지에다 이렇게 적었습니다. “신샛별 나의 절대적인 사람에게”, 그리고 책머리 말끝에다 이렇게 씁니다. “그녀를 정확히 사랑하는 일로 남은 생이 살아질 것이다.” 신형철은 사랑마저도 이렇게 선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절대적인 사람을 정확하게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신형철과 신샛별, 신샛별과 신형철, 이 두 문학평론가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4년이 지난 뒤 2018년 가을, 신형철은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엮어냅니다. 그는 자신이 슬픔을 생각하고 공부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내와의 일화였다고 고백합니다.

 

“아내가 수술을 받은 날 우리는 병실에서 껴안고 울었는데 울면서도 나는 아내와 다른 곳에 있는 것만 같았고 그 슬픔으로부터도 아내보다 더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p.8)

 

나에게 ‘절대적인 사람’,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가 아파도 그 아픔을 내 몸으로는 느낄 수 없어서 마지막까지는 다가설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서로를 껴안고 울었지만 눈물 흘리는 이유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아마도 엄혹하고 무참한 일이었겠지요.

신형철은 아내보다 먼저 슬픔에서 빠져나왔다고 자조합니다만, 그것마저도 그에게는 다른 슬픔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저 문장 너머에 다 표현하지 못한 일들이 꼭 있을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홀로 그 아픔을 벗어나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를테면 이런 일들이겠지요. 아파서 누운 아내 곁에 남편이 앉아 있습니다. 글을 써서 밥을 버는 사람인 남편은 마감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바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괜찮으니까 어서 일하러 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눈빛과 표정에서는 그냥 함께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남편은 모른 척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윽고 방문을 열고 나가는 남편과 아내의 눈이 마주칩니다.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함께해 주고 싶고 함께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어쩔 수 없이 속여야 하고 알면서도 속아주어야 하는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신형철이 느꼈을 무참함만큼이나 신샛별이 느꼈을 외로움도 컸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그렇게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도,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나의 아픔은 어떤 말로도 표현되지 않으니까요. ‘아프다’는 말 마디가 그것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탓이므로, 그건 말하는 사람의 잘못도 듣는 사람의 잘못도 아니겠지요. 말을 담아내는 병(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거기에 말을 담아두었다가 들려주고 싶을 때 귀에 가져다 대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느낀 것들이 그대로 전해지는 그런 병이 있다면, 서로가 느낄 아픔도 슬픔도 조금은 덜 하지 않을까요.

한 사람이 아플 때, 그를 사랑하는 사람은 슬퍼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하기 때문에 아픈 사람도 못내 슬퍼합니다.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지만, 그 아픔과 슬픔은 같은 아픔과 슬픔이 아닙니다. 그 사실은 우리가 함께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보다도 커 보이는지라, 그것이 기어이 우리를 좀 더 슬프게 만들고야 맙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막막한 슬픔마저도 ‘정확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아닐까요.

 

“앞으로 그와 나에게 오래 슬퍼할 만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그곳에 우리가 꼭 함께 있었으면 한다. 그 일이 다른 한 사람을 피해 가는 행운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같이 겪지 않은 일에 같은 슬픔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고, 서로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이므로.”(p.9)

 

아무튼 신형철은 이렇게 말을 덧붙이면서, ‘절대적인 사람’에 대한 ‘정확한 사랑’을 다시 한번 드러냅니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그런 무참함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그가 바라는 그대로 이루어져서 슬픔이 찾아와 함께 눈물을 흘릴 때, 같은 이유로 흘리는 눈물이면 좋겠습니다. 신형철과 신샛별 이 아프지 않고 오랫동안 사랑하며, 함께 많은 글을 쓰기를 바랍니다. 이런 좋은 문장들로 사랑을 정확히 표현해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의 사랑이, 이 글을 읽으실 여러분의 사랑이 그런 사랑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p.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