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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툿찡포교베네딕도회 대구 수녀원 안칠라 수녀
“저, 여기 있습니다.”


취재 김선자 수산나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월 1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축성 생활의 날’로 지내는 주님 봉헌 축일 전야 미사를 거행하며 미사에 참례한 축성 생활자들에게 “축성 생활은 은총을 바라보고, 이웃을 찾고, 희망할 줄 아는 것”이라고 권고했다.

‘이번 달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는 지난 62년 동안 축성 생활 안에서 모든 것을 선물로, 모든 것을 은총으로 보고 말하며 살아온 안칠라(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수녀를 만났다.

축성 생활은 거저 받은 사랑의 선물임을 안다는 안칠라 수녀는 군종단(현재의 군종교구)에서 30년, 본당에서 10년을 소임하는 동안 특히 전교에 힘썼다. 여든 일곱, 지금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만사 제치고 달려가고 싶다는 안칠라 수녀의 삶은 ‘전교’의 삶이었다. 안칠라 수녀는 “월남전이 끝나갈 무렵 다친 군인들이 후송됐던 곳이 당시 효목동 제1육군병원이었는데, 1천 명이 넘는 환자들을 만나 그들의 애환을 들으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특히 간호사관학교 13기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은 지금도 많이 생각난다.”고 소회를 말했다. 이어 안칠라 수녀는 “지금도 군은 황금어장이지만 그때도 황금어장으로 군인들은 무조건 종교를 믿어야 하는 것이 의무화된 시기여서 나는 한 사람에게라도 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복음을 전하면서도 늘 부족함을 느꼈다.”며 “열정을 바쳐 전교에 힘썼기에 지금도 군인을 보면 좋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어린 시절 유학자인 아버지와 무속신앙을 믿는 어머니를 통해 종교심을 가졌다는 안칠라 수녀는 가톨릭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세례를 받았다. 같은 반이었던 모범생 친구가 수녀원에 간 것을 보고 수도자의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안칠라 수녀는 “그 시절에는 혼수 물품을 어릴 때부터 준비해 놓는 것이 의례적인 일이었다.”며 “부모님의 명으로 이불과 옷 등을 재봉질하기 위해 부산에 있는 오빠 집에 가면서 매일 미사에 참례하게 됐고 피난민들이 하느님께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메리놀회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며 신앙이 점점 자라났고, 그때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마태 10.32)이라는 말씀이 꼭 와 닿았다.”고 들려주었다.

하루 여덟 차례의 공동기도와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치고 텃밭으로 나가 2시간 동안 일을 하고 오후에는 독서, 바느질, 티비 시청, 휴식을 취한다는 안칠라 수녀는 “아카시아밭을 일구어 텃밭을 만들었는데 이 일이 내게 활력을 준다.”며 “땅을 일구다 보면 지렁이가 나오고 그 지렁이를 먹기 위해 날아온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이 시간 또한 행복”이라고 말했다. 은퇴 후에도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는 안칠라 수녀는 “나이가 드니 저녁 7시 30분에 잠자리에 들어 4시에 일어나 기도를 하며 ‘내일 죽어도 오늘 나무 한 그루를 심자.’라는 다짐으로 하루를 사는데,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열심이 하다가 하느님 곁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70대부터 시작한 독서를 지금도 꾸준히 하며 틈틈이 강의를 들었다는 안칠라 수녀는 “평생 주방일을 하시며 사신 수녀님이 계시는데 그분은 늘 책보따리를 들고 다니며 책을 읽으셨다.”며 “그 수녀님한테 영향을 받아 70대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책을 읽고 요약정리하는 메모 습관까지 갖게 됐다는 안칠라 수녀는 “안젤름 그륀 신부님의 저서 『자기 자신 잘 대하기』, 『다시 찾은 평안』이 나에게 전환기가 됐다.”고 소개하며 “그 이후 그 신부님의 책은 읽지 않지만 철학, 신학, 의학 등 인문학 서적을 주로 읽고 있다.”고 말했다.

언제 그분 곁으로 갈지 모르나 늘 ‘오늘은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이라는 여든 일곱의 안칠라 수녀는 지금도 그분의 부르심에 “저, 여기 있습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저, 여기 있습니다.

 

내 나이 여든 다섯

살갗은 터실터실, 다리는 천근만근

마음만 10대 소녀

가야 할 그 시간 소식 없이 오겠지.

오늘도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 2018. 4. 23 백 안칠라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