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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새해 계획
- “하려고 하지 말자.”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여러 계획을 세웁니다. ‘올 한 해를 어떻게 살까?’, ‘이것만은 꼭 이루자.’ 이런 마음으로 금연 계획을 세운다든지, 운동이나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런저런 다짐을 하며 한 해를 시작합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저는 새로운 제안을 하나 할까 합니다. 저의 제안은, “뭘 하려고 하지 말자!”입니다. 이 무슨 생뚱맞은 말인가 싶으시지요? 우리는 의도를 갖고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더욱 무리하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포기하고 자책하면서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기도 합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하려고 하지 마라.’ 사실 이건 저의 말이 아니라 이천오백여 년 전 노자(老子)의 말씀입니다. “무위(無爲)”라는 말은 ‘함이 없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번역되지만 더 정확하게는 ‘인위적으로 무언가 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노자가 볼 때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는 많은 이들이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 의도를 갖고 ‘하려고 해서’입니다. 당시 중국 사회는 대혼란기였습니다. 왕의 자리를 탐해 신하가 왕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입니다. 재물을 더 많이 갖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재물을 탐내고 훔치고 사기를 치고 무력으로 빼앗습니다. 건전하게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일도 경쟁을 불러오고, 과도한 경쟁은 결국 상대방에게 피해를 줍니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내가 위로 갈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듯합니다. 이런 세상에 노자(老子)는 외칩니다. 무위(無爲)하라고,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지 않음(無爲)을 행하고, 일 없음(無事)을 일삼고, 맛 없음(無味)을 맛보라.”1)

 

이 무슨 역설의 말인가 싶지만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밤낮없이 고민하며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일에 치여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사람들, 맛있는 음식을 찾아 식당을 돌아다니며 식욕을 채우려는 현대인의 욕망을 꿰뚫어보는 옛 성현의 말씀입니다. 노자(老子)는 자연(自然)을 보고 배우라고 합니다. 자연은 말 그대로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찾아오며, 낙엽이 떨어져 죽은 것 같지만 봄이 오면 다시 새순이 올라와 꽃을 피웁니다. 해가 지면 다음날 다시 해가 떠오르고, 쉼 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물은 다시 비가 되어 하늘에서 내립니다. 이 모든 게 자연(自然)스럽습니다.

 

“도(道)는 언제나 하려고 함이 없으나(無爲), 이루지 않음도 없다.(無不爲)”2)

 

무위(無爲)라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태도는 마치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이 그것을 땅에 묻어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주인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태도와 같습니다.(마태 25, 14-30 참조) 무위(無爲)는 의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억지로 하려고 하는 태도를 버리라는 뜻입니다. 억지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생각은 나의 욕망에서 나

온 경우가 많습니다.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낳고, 결국 나는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이번 새해에는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기보다 자연(自然)을 바라보며 자연(自然)스럽게 사는 것을 배워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생각하며 매사에 감사하고,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고,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겁니다. 자연스럽게요.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마태 6,28-29)

 

1) 『도덕경』, 63장.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2) 『도덕경』, 37장. “道常無爲而無不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