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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골목신앙
설렘의 시작! ‘새’라는 글자


글 이재근 레오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요즘 사람들은 핫 플레이스를 좋아합니다. ‘핫 플레이스’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기 있는 장소를 의미하는데, 인기가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사진 찍기가 좋습니다. 장소가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인생사진을 남길 수 있습니다. 둘째, 자랑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나는 가족이랑 친구랑 이곳에 갔다 왔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 등을 통하여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럼 친구들은 ‘좋아요’ 버튼을 꾹 눌러주고, 이렇게 쌓여가는 ‘좋아요’ 숫자는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이지만 핫 플레이스를 향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핫 플레이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들만의 핫 플레이스도 있습니다. 비록 모든 이에게 유명한 장소도 아니고 예쁜 사진을 찍을 수도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없지만, 자신에게 휴식을 주고 행복을 주는 장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엔 자신만의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 첫 가족여행 장소, 모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갔던 데이트 장소 등등 이런 곳이 바로 자신들만의 핫 플레이스입니다.

 

2021년, 저는 여러분에게 자그마한 신앙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핫 플레이스는 아니지만 자신들만의 추억이 있는 자그마한 핫 플레이스처럼 뜻 깊은 신앙이야기는 아니지만 저만의 작고 소소한 신앙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저는 이것을 ‘우리 동네 골목신앙’이라고 이름 지어 보았습니다. 마치 대형 백화점의 할인행사에 모든 사람들이 열광하지만 때로는 우리 동네 슈퍼에서 하는 할인 행사가 더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우리 동네 골목신앙’이 여러분에게 따뜻함을 전해드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우리 동네 골목신앙’의 첫 번째 이야기는 새로움을 뜻하는 ‘새’라는 글자입니다. 이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새롭게 한 해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새해, 새 물건처럼 어떤 단어든 ‘새’라는 글자 하나만 붙으면 요술처럼 설렘으로 바뀝니다.

새 물건으로 설레었던 저의 추억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사회는 한참 ‘휴거설’로 시끄러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밤 12시가 되면 세상이 종말한다는 믿음에 빠져 있었고 여러 방송사도 이러한 현장을 앞다투어 보도했습니다. 당시 대구로 이사를 와서 다음날 학교를 가야 했던 저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진짜 휴거가 일어나서 내일 학교를 안 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내일 학교 갈 때 쓰라며 부모님께서 새 가방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새 가방을 보는 순간, 휴거가 일어났으면 좋겠다던 저의 생각은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빨리 내일이 와서 새 가방을 메고 싶다는 설렘만이 가득했습니다. 다행히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고 저는 설렘 가득한 첫 등교를 새 가방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기억 속에 새 물건을 받고 설레었던 추억이 분명 있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왜 ‘새’라는 글자만 붙으면 모든 단어가 우리에게 설렘을 주는 걸까요? 그건 아마도 희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해도 된다는 희망, 다시 새롭게 꿈을 꿔도 좋다는 희망, 그리고 지난 과거는 잊어도 된다는 희망! 물론 이 희망은 확실히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그저 헛된 희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희망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설렙니다. 어쩌면 하느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도록 ‘새’라는 글자를 만들어 주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를 절망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건 희망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희망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희망이 아니라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희망이라면 어떻습니까?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보장해주시는 희망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이 희망과 함께 올 한 해도 멋지게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1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절망하지 않도록 ‘새’라는 글자를 만들어 주신 예수님께서 선물로 주신 새! 해! 입니다.

새해가 되었으니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들이 있겠지요. 우선 새 다이어리를 신중하게 구입합니다. 운이 좋으면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을 수도 있겠네요. 신중하게 고른 새 다이어리에 처음으로 글자를 써 내려갑니다. 내용은 올 한 해에 대한 각오와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연말이 되었을 때 과연 몇 개나 이루어져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꿈을 꿀 수 있고 희망할 수 있기에 우리는 지금 설레고 행복합니다.

 

2021년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설렘과 희망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길 기도합니다.

 

* 이번 호부터 새로 연재되는 이재근 신부님의 ‘우리 동네 골목신앙’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이재근 신부님은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2006년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