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프랑스에서 온 편지
신부들의 세계(2)
- 질투와 견제, 정체성


글 심탁 클레멘스 신부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교구 선교사목

2019년 초겨울 어느 날, 지역 담당 주교대리 요셉 신부님으로부터 호출이 왔습니다. 차로 20분여 떨어진 셀레스타(Sélestat) 본당. 여기 주교대리는 본당 주임신부 임무를 기본적으로 수행하면서 주교대리를 겸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비서 외에는 보좌신부 한 명이 본당 사목을 나누어 맡고 있으니, 주교대리 타이틀이 명예가 될지는 몰라도 업무량과 책임은 그만큼 더 무겁고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헌신적인 순명과 희생 정신을 갖추거나 혹은 명예를 즐기지 않으면, 감당할 수고가 커서 부담스러울 수 있는 직무로 보입니다. 게다가 일선 본당의 신부들이 무슨 사고나 병으로 미사에 차질이 생길 경우, 특히 미사를 위해 재빨리 누군가를 파견해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어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본인이 직접 출동합니다. 키는 저와 비슷하지만 복부 인격이 근사하게 자리잡힌 소탈하고 배려 깊은 착한 목자 요셉 신부님의 호출입니다. 저의 스트라스부르 선교 시작 첫 만남이 이분과 이루어졌고, 열 살 어린 자신의 친동생과 저의 나이가 같다며 다정하게 대해 주시던 분이라 별 긴장감 없이 사제관을 찾아갔습니다.

알고 보니 콜마르 지역장 신부(50세, 서품 20년차, 제가 제안했던 주교좌 중·고교 내 교리반 운영을 반대했고, 주교발령이 언제 있냐며 저에게 물었던 인물 중 한 사람)가 저의 불성실함에 대해 고발하였고, 주교대리께서는 저에게 그에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 저를 호출한 자리였습니다.

● 주교대리 : “클레망, 지역 청소년 피정에 불참한 적이 있었나?”

○ 나 : “아, 예! 주최측(지역장과 교구 평신도 여성협력자)이 피정 준비 모임에 공식적으로 저를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그 증거로 준비 모임이 있던 날 회의 시간에 맞추어 지역장이 속한 본당에서 봉헌되는 월요일 저녁미사와 성시간을 진행하라고 저에게 맡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콜마르(Colmar) 준비 모임에서 제외되었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교리반 청소년 피정이 있던 그 주말은 스트라스부르 한인 공동체의 주일 미사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역장 본당의 미사와 성시간을 마치고, 피정 준비 모임 중인 회의장에 가서 인사하면서 저는 이 피정에 참석할 수 없다고 모두가 있는 곳에서 말하고 나왔습니다.”

● 주교대리 : “아 봉?(=그래?) 내가 들은 것과 다르구나! 그리고 네가 스트라스부르 한인 공동체도 책임지고 있다고? 그 근거는 뭐지?”

○ 나 : “교구 주소록을 보십시오. 한국인 이주민 담당 신부로 나와 있고, 거기에 저의 주소, 전화번호까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 드렸습니다. “무슨 오해가 있었다면 제가 직접 지역장과 말해서 오해를 풀겠습니다.”

● 주교대리: “아니, 내가 있는 자리에서 같이 이야기하자!”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주교대리와 지역장이 저의 우센(Houssen) 마을 사제관으로 왕림해서 삼자대면을 했습니다. 주교대리께서는 똑같은 질문을 저에게 하셨고, 저도 지난번과 똑같이 답변했습니다. 지역장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 “끌레망, 여기 알자스에서는 네가 알아서 할 수 있는 일도 담당자에 물어보고 하는 게 좋은 거야. 내가 한 수 가르쳐 준다. (주교대리를 쳐다보며) 그렇죠, 요셉?” (…) 왠 동문서답이람, (…) 주교 대리 요셉 신부님은 묵묵부답.

 

2019년 2월초 학교 개방의 날, 교구에서 파견된 평신도 유급 교리교사 프레데릭이 교내 종교 행사를 주관합니다. 저는 몸살 기운으로 힘들었지만 일단 출근을 했습니다. 오전에 성당 안내를 했으나 너무 힘들어서 그에게 조퇴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끌레망….” 하면서 양손으로 저의 목을 감고 흔들었습니다. 장난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결코 즐겁지 않은 상황이었고, 또 기운이 너무 없고 대응 할 기력도 없어 물러나 집으로 귀가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한기가 들고 얼마나 몸을 떨었던지 오한 외에도 마치 무슨 공포심에 사로잡힌 것 같았습니다. 빨리 전기요를 켜고 누우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몸이 서서히 회복되면서 동시에 분노 같은 것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할 곳이 없구나, 싶었습니다. 훌륭한 평신도 친구들이 좀 있긴 하지만 신부들과 또 교구 직원들과의 일들이라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고 그들 역시 스스로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말자!’ 싶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에게 사제관을 마련해 주고 지원해 주고 있는 본당 신부가 떠올랐습니다. 평소 월요일에 같이 점심도 먹곤 하던 소탈하고 유머있고 편안한 사람. 그보다는 제가 알자스에서 만나 본 가장 사목 역량이 뛰어난 도미니크 신부! 전직 은행원 출신의 세 살 많은 신부가 바로 가까이, 차로 20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14개의 본당을 보좌신부도 없이 거뜬히 혼자서 담당하며 평신도 조직을 통해 사목하고 있습니다. 각 본당 내부 조직을 관리하고 지역 단위별 및 통합적으로 회의를 진행하며, 청소년 사목뿐 아니라 노인사목에도 배려를 아끼지 않는 유능한 경영자적 사목자입니다. 부끄럽게도 저 자신이 난감한 지경에 빠지게 되니 그가 그동안 저에게 베풀어 준 깊은 배려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2019년 5월초, 드디어 마음의 친구를 찾아 나섰습니다. 도미니크 신부에게 전화를 하고 면담과 성사를 요청했습니다. 월요일인데도 핵심 본당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성당에 단 둘이 앉아 그간의 고마움과 감사를 전하면서 고민을 이야기하고 성사도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영적 동반자가 되어 달라고 청했습니다. “나도 죄인일 뿐이야.”라며 조심스럽게 허락을 해 주었습니다.

 

도미니크 신부는 이곳에 부임하기 전, 남부 알자스 순고(Sundgau)지역에서 지역장을 했지만 지금은 평범한 본당신부로서 이 넓은 지역 사목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대화 중에 도미니크 신부는 저에게 “지난 2월에 지역회의에서 너에 대해 불리한 이야기가 돌았다.”는 것도 알려 주었습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또 그 자신도 “일종의 주변 동료들의 견제와 뒷담화가 있음을 알지만 사목적으로 할일이 많아 그런 주제에 고민을 하거나 신경을 쓸 시간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겉으로 유연하고 유머가 넘치는 모습 이상으로, 진정 사심없는 그의 사목적 태도에서 명예욕이나 권력욕이나 상처나 질투 같은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존경심이 우러났습니다. 개인적으로 또 놀라운 것은 공식행사 이외에는 거의 매주일 점심을 연로하신 부모님과 식사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실천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프랑스에서 ‘효도’라는 단어를 들어 본 적은 거의 없지만 ‘생활 속에 살아 있는 효자가 있다.’ 것에 새삼 감동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