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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칼럼
요제프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글 여명진 크리스티나 | 음악칼럼니스트, 독일 거주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재의 수요일 예식에서는 이마에 재를 얹으며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창세 3,19 참조)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을 되새기게 됩니다. 이 구절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말씀인데, 자칫 ‘먼지로 돌아가리라.’ 는 하느님의 말씀이 엄하고 두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말씀에도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7)라고 하셨지만 인간의 생명은 계속 이어져 갑니다. 또한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린 인간에게 더 튼튼한 가죽옷을 입혀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축복과 사랑,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한 천지창조 이야기는 오랜 시간 많은 화가, 음악가에게 영감을 불어 넣었습니다.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1732-1809) 역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통해 장엄하고 신비로운 천지창조의 과정을 음악으로 담아냈습니다. 오라토리오는 종교적 극음악입니다. 오케스트라, 합창단, 독창자가 성경의 이야기나 종교적 이야기를 연주하는데, 합창의 비중이 크고 연기나 무대장치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는 천사 가브리엘(소프라노), 우리엘(테너), 라파엘(베이스)이 등장하고 전체 3부, 총 34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부는 빛과 어둠, 하늘과 땅, 뭍과 바다를 창조하는 나흘을, 2부는 새와 물고기, 동물과 사람이 창조되는 다섯 번째 날과 여섯 번째 날을 노래합니다. 3부에서는 창조된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등장해 세상의 아름다움과 하느님의 위대함을 이야기합니다. 하이든은 이 곡을 3년에 걸쳐 완성했는데, 그 시간이 그에게도 깊은 신앙적 체험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는 훗날 “나는 《천지창조》를 작곡할 때만큼 경건한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다. 이 작품을 기쁘게 완성할 힘을 달라고 매일 무릎 꿇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고 고백했습니다.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2월, 《천지창조》 2부 천사의 삼중창 중 “주님께서 얼굴을 돌리시면 만물은 두려움에 떨고, 주님께서 숨을 거두어가시면 인간은 먼지로 돌아가네.”라고 노래한 라파엘의 가사가 더욱 마음 깊이 다가옵니다. 한낱 먼지와 같은 연약한 존재에 하느님의 숨이 닿아 생명력을 지닌 인간이 되었음을 자주 잊고 지냅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어려움 앞에서 ‘내가’ 헤쳐 나간다고 생각했고, 살면서 얻은 성공 앞에서는 ‘내가’ 이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주신 삶 속에서 모든 순간이 그분과 함께 해나가는 것임을, 주님께서 허락지 않으신다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음을 잊고 있었습니다.

하이든은 창세기의 천지창조 이야기에서 뱀의 유혹, 인간의 죄 같은 어두운 부분보다 창조된 세상의 아름다움, 찬란함, 창조주 하느님의 위대함에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하느님의 축복과 사랑을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는 “목소리 높여 주님을 찬양하라. 모든 피조물아, 주님께 감사하라. 주님 이름 기리며 찬양하리니, 주님의 영광 영원토록 머무르리!”라는 웅장한 합창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축복과 생명의 힘이 넘쳐나는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쫓겨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시선과 손길은 지금 이 순간까지 늘 우리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죄로 인해 고난과 고통을 겪게 되더라도 하느님은 우리를 버려두거나 외면하지 않고, 모든 순간에 한처음 천지창조 때부터 이어진 축복과 사랑으로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사순시기, 모든 것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고, 하루하루가 새로워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