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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편지
신부들의 세계(3) 그분이 오셨다!


글 심탁 클레멘스 신부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교구 선교사목

프랑스 교회에서 외국인 선교 사목자들의 경우 3년마다 계약 갱신을 합니다. 두 교구 간의 주교님 동의와 선교사 본인의 원의가 합의되어야 합니다. 첫 3년간 콜마르 선교 활동을 마감하면서 새로 가톨릭 교육 담당으로 임명된 보좌주교님께 보고서를 올리고 개인 면담을 한 후 2019년 9월 오베르네로 부임하였습니다. 콜마르 지역의 교목겸 청소년 담당 때와는 달리 주요 임무가 정해져서 훨씬 안정적인 선교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선 일상적인 평일·주일미사, 장례미사, 병자성사 및 병자방문, 두 군데 병원 원목실 미사 별도, 유아세례, 혼인 대상자 28시간 주말 교육(한국식 카나강좌), 어린이 교리반 부모 교리교사 봉사 교육, 격주로 일회 두 시간씩 청소년 교리(보조자, 기타 반주), 그리고 어린이와 청소년 별도의 연수 연간 네 차례 등.

 

사목의 사회학적 감성 …  2019년 9월 한 달 적응 기간을 갖는 동안 주임신부와 저는 평일미사 및 장례미사 분배를 거의 일대일로 나누어 봉사했습니다. 보통 격주로 미사 계획을 짜고 격주보에 공지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 한 번뿐인 평일미사를 99퍼센트 협력 사제인 저에게 맡기고, 수시로 있는 장례미사, 세례식도 하나 둘, 청소년 견진성사팀 교리교육 등도 얹어 줍니다. 사실 평일미사 강론 준비도 한두 시간 걸리고, 주일미사 강론 준비는 더욱 시간이 필요한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에게 주어지는 임무가 점점 짐처럼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은퇴사제의 별도의 도움은 논외로 하더라도 ‘왜 공평하게 업무를 분담하지 않는 것일까? 나를 외국인 노동자 내지 고용된 노예로 보나?’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서프라이즈 … 1년의 새 본당 선교활동을 지내면서 느껴진 바, 저의 심리적·실천적 난제는 주임신부의 변덕, 특히 서프라이즈 임무 하달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마치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듯 버럭버럭하는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면역이 생깁니다. ‘내가 모르는 무슨 스트레스가 있나보다.’라고 여기거나 ‘어디 안 좋은가? 아픈가?’라고 생각하면서부터 속이 편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어려운 문제는 이미 정해진 스케줄에서 이탈하여, 예를 들면 월요일에 갑자기 자신이 면담하고 준비한 장례미사를 나에게 주례하라는 등의 선택의 여지없이 밀어부치는 처사입니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가 어쩔 수 없는 긴급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판단이 된다면 나름 적응하기가 쉬웠을 테지만 평소에 해오던 처신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고 느끼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갈지 저 자신의 앞으로의 반응과 태도에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휴식과 운동이 부족하여 몸이 쇠약해지고 있음을 느끼는 제 입장에서 ‘좀더 잘까? 운동할까?’라며 조금 여유있는 고민을 하는 순간, 인터폰으로 ‘사무실로 내려 올 수 있니?’라며 연락이 옵니다. 휴일이나 식사 시간에 오는 연락은 은근히 불편합니다. 신부의 휴일이나 휴식이 존중되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장례미사를 두 번 하는 동안 내면으로부터 저항감이 생겨났습니다. 본인이 급한 일이 생겼다느니 병원에 예약을 했다느니….

더욱 괴로운 것은 장례미사 현장입니다. 주임신부의 말투로 적힌 긴 원고, 이방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문장을 앵무새처럼 읽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상주들 얼굴을 보면서 강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원고만 바라봅니다. 게다가 서프라이즈 두 번 다 장례미사 원고가 같았고 망자의 이름만 바뀌었는데, 그것조차도 미처 고치지 않은 탓에 한 원고 안에 망자의 이름이 두 개가 나왔습니다. 미리 읽어 보지 않았으면 사고를 낼 뻔했습니다. 강론 중에 상주 뒤쪽에 참석한 신자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들은 항상 같은 장례미사 강론을 듣던 사람들인 것을 알아 챌 수 있었습니다. ‘혹시 이런 전례 태도와 사목 형태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또 서프라이즈 … 2020년 11월 20일 금요일, 오후 6시 30분 평일미사가 있는 날이자 주일 강론 원고 교정을 받는 날입니다. 정오가 되어 갈 무렵 사무실에서 인터폰이 옵니다. 특유의 빠른 말투로 역시나 ‘내려오라.’는 주임신부의 명이 떨어집니다. 또 무슨 일이 있구나, 직감했습니다. 그날 부로 입원을 하니 오후 장례미사를 맡으라는 것입니다. 근처에 은퇴사제가 계시긴 하지만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운전하는 것을 싫어하시니 저더러 맡으라는 것입니다.

 

복음적 감성으로 … 그런데 저의 내면에서 급반전이 일어 났습니다. ‘좋다, 뭐든지 줘봐! 해내지 뭐!’ 아버지 집에 일하는 자식들이 여럿인데, 누군가는 형제들의 빈자리를 채우고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 해내야지…. 선교한답시고 먼 곳까지 와서 이런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면 안 되지. 루카 복음 15장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그래, 돌아온 아들인 내가 아버지 집에서 일하다 어쩌다 죽은들 무슨 손해 날 일이 있단 말인가? 어차피 내 보속도 해야 하고 할 수 있으면 형제들의 몫도 희생으로 채워야 하고…. 내가 방황하고 죄 속을 떠돌 때 나를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고 보속하며 기다려 주신 부모님, 친척·친지들, 수도자들, 신자들, 송구스럽게도 미처 알지 못하는 영적 생명의 은인들에게 은혜도 갚아야 하는 마당에….’ 그날 주임신부가 입원하면서

그의 변덕, 서프라이즈, 버럭버럭이 진짜로 아파서였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니 그에게 더욱 연민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도 2011년 안식년을 떠나 오기까지 내면의 절벽을 만나 길을 잃고 육신의 질병들로 고달팠던 적이 있었습니다. 신부가 겪는 중년의 위기에 속하지 않을까요? 본의 아니게 그렇게 저는 주임신부 연수기간을 보내고 주임신부는 2021년 1월 10일 주일미사 공동 집전을 시작으로 사목에 복귀했습니다. 그간 코로나19통금과 제한 와중에 성탄절을 준비했습니다. 특별 임무로 조직한 어린이 성탄 성가대, 청소년 성가대 및 가족 성가대(총 30여 명)와 더불어 성탄 전야 미사를 스트라스부르 유학생 김창현(베드로) 신부의 주례로 기쁘게 거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탁월한 전례 진행에 동료로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밭에 묻힌 보물 … 성탄 준비가 힘겨웠지만 보물같은 내면의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저와 팀을 이룬 성가대 지휘자는 영국계 음악 교사겸 영어 교사인데, 성탄을 앞두고 부친상을 당해 영국으로 가야 할 상황이었으나 장례미사에 가도 보름간 격리 수용되고, 두 자녀를 데려 갈지 혹은 두고 갈지, 두고 가면 애들 등하교는 어떻게 할지, 전반적인 난제에 부딪혀 결국 포기하고 대신 아버지를 위해 성탄 성가 준비에 매진하기로 하였습니다. 전 단원들이 각자 연습하고 한 주간 단체 연습을 하되, 모든 기도와 연습과 봉사의 지향을 망자를 위해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의 연습은 경건한 기도 시간이었습니다. 상주가 지휘하는 성가대. 그 결과 텃세와 질투 등 모든 난관을 뚫고, 성탄 미사를 최선을 다해 봉헌하였습니다. 그 중 가장 귀한 것은 전례 자체의 기쁨뿐만 아니라, 단원들 간의 기도 안의 일치와 성취의 희열이었습니다. 주님 성탄의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선물이었습니다.

 

서프라이즈의 그분이 살아오셨다! … 2021년 1월 27일 수요일, 아침 미사를 마치고 사제관 사무실로 들어서는 저에게 토요일 오후 4시 30분(참고로 코로나19로 18시부터 06시까지 국가 통행금지령) 주일미사를 더 얹어 줍니다. 현장으로 복귀한 주임신부는 업무 분담 과정에서 자신이 그 미사를 주례하기로 했었는데….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이 느낌. 먹먹하게 잠시 서 있다가 저는 설명합니다. 그날은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성가연습이 있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첫영성체 교리가 있으며, 오후 4시부터는 1월 24일에 있었던 ‘말씀의 축제’ 평가회(참고로 교황님 사목 지도에 따라 주일 오후 2시부터 5시 15분까지 음악과 함께하는 바오로 서간 선포: 이사야 55장, 테살로니카 1서, 필리피서, 코린토 1서 전체를 24명의 평신도가 참여하여 조직하고 진행)가 계획되어 있는 날이라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임신부 왈, ‘평가회, 그런 거 필요없다!’ ‘….’ 선교는 광야의 요한과 예수님처럼 성령의 이끄심과 하느님을 대면하는 기도와 말씀의 능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