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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同胞
- 우리는 모두 한 형제자매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 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해야겠습니다.

얼마 전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산을 쓴 채 성모당 내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신부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쳐다보니, 어떤 아저씨가 마스크도 없이 비를 맞으며 다가왔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정신이 조금 온전치 못한 사람 같았습니다. 그분은 배가 고프다며 돈을 요구했습니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다가오는 모습에 저는 놀라 잔뜩 경계하며,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마침 지갑도 없었기에 죄송하다고 말하고 얼른 돌아섰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그럼 우산이라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우산을 주면 제가 비를 맞을 수밖에 없으니, 저기 카페에 가서 우산을 빌려 달라고 부탁해 보라고 말하고는 얼른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걸어가면서 나의 모습과 행동을 돌아보니 가관이었습니다. ‘사제라는 자가 이 무슨 모습인가!’ 비에 젖어 배고파하는 사람을 저는 피하기에 바빴던 것입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을 피해서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린 사제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루카 10,29-35 참조) 그분에게 카페에서 잠깐 기다리게 하고, 얼른 사무실에 가서 지갑과 우산을 가져와 그분을 도와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얼른 발걸음을 돌려 그 분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새 성모당 밖으로 나갔는지 카페에도 없었고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훗날 주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는 내가 비를 맞고 있어도 우산을 씌워 주지 않았고, 내가 배고파 신음할 때도 도와주지 않았다.’ 심히 부끄러웠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돌처럼 굳은 마음과 완고한 자세를 가진 사제가 되었을까, 하고 반성했습니다.

 

북송(北宋) 시대의 유학자인 장재(張載)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을 아버지라 칭하고, 땅을 어머니라 부른다. 나는 미미한 존재로서 그 가운데 혼합되어 살아 있다. ••• 모든 백성은 나의 형제(同胞)이고 만물은 나와 함께한다. … 무릇 천하의 노쇠하고 지친 사람, 병들고 장애가 있는 사람, 형제가 없는 외아들, 늙어서 자식 없는 사람, 아내가 없는 홀아비, 남편이 없는 과부들은 모두 나의 형제들이며, 어렵고 괴로운 처지에 놓인 채 호소할 곳조차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1)

 

하늘을 아버지로 두고 땅을 어머니로 둔 우리는 모두가 같은 배에서 나온 동포(同胞), 즉 한 형제자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가난하고 불쌍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도 내가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나의 가족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장재는 이 글을 서재의 서쪽 창에 붙여 두고 제자들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서명(西銘)」이라고 불리며 유학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암송되었습니다. 이 글을 관통하는 중심 사상은 인(仁), 즉 사랑의 마음입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가난한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 같은 사회의 소외된 이들의 삶이 더 힘겨워졌습니다. 세계적으로도 후진국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의료 상황도 심각한 상태에서 코로나19에 대처할 능력은 없습니다. 선진국들의 독점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률도 현저히 떨어집니다. 현실이 답답하고 암울할수록 눈을 들어 주변의 이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저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시고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봅시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에페 1,4- 5)

 

 

1) 장재, 「서명(西銘)」. “乾稱父, 坤稱母. 予玆?焉, 乃混然中處. … 民吾同胞, 物吾與也. … 凡天下疲?殘疾?獨鰥寡, 皆吾兄弟之顚連而無告者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