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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탐방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미사
“나는 천주교인이오.”


취재 김선자 수산나 기자

한국천주교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 200주년 기념미사가 지난 8월 21일(토) 오전 11시 성모당에서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의 주례로 거행됐다. 한국천주교는 성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기리기 위해 2020년 11월 29일부터 2021년 11월 27일까지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라는 주제로 희년을 선포하고 순교 영성을 본받아 믿음의 가치를 더욱 깊이 새기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복자 김진후(비오, 증조부)•김종한(안드레아, 작은할아버지)의 후손인 성 김대건 신부는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 솔뫼에서 김제준(이냐시오, 부친)과 고 우르술라(모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 신학생으로 선발된 성 김대건 신부는 1844년 12월 15일 중국 길림성 소팔가자에서 부제서품을 받았고, 1845년 8월 17일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후 조선에 입국해 사목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조환길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김대건 신부는 학식뿐만 아니라 신덕과 용덕이 뛰어나셨던 분으로 신학생 시절 박해가 심했던 조선에 두 번이나 입국해 사정을 살피고 돌아갔다.”며 “당시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일은 공부보다는 조선으로 가는 안전한 길을 개척하는 것이었음을 김대건 신부가 1845년에 쓴 열 번째 편지의 내용인 ‘하루 빨리 중국에 있는 주교님과 신부님들을 안전하게 조선으로 데리고 오는 일이 긴급합니다.’에서 알 수 있다.”고 소개했다. 계속해서 조환길 대주교는 “온갖 역경을 헤쳐 조선에 재입국한 김대건 신부는 박해를 피해 숨어서 사목을 하다가 1846년 5월 중국에 남겨진 선교사들을 데리고 올 방법을 찾기 위해 연평도와 백령도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한양 포도청에서 심문과 고초를 겪고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며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는 오늘의 복음 말씀처럼 사신 분으로 예수님을 가장 닮은 분”이라고 말했다.

옥에 갇혀서도 중국에 남겨진 신부들에게 편지를 쓰고,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라고 묻자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 라고 답했던 성 김대건 신부는 사제로서, 선교사로서 주님께 대한 사랑과 교우들에 대한 사랑이 넘쳤던 사제였다.

한국천주교는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 기간 동안 ①고해성사 ②영성체 ③교황님의 지향대로 주모경 바치기 ④교구가 지정한 희년 행사나 신심 행위에 참여하면 전대사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대구대교구에서는 주교좌 계산성당, 김천황금성당, 복자성당, 본리성당, 성건성당, 성김대건성당, 성산성당, 성서성당, 신동성당, 용계성당, 죽전성당, 현풍성당, 흥해성당, 관덕정순교기념관, 신나무골, 진목정, 한티순교성지를 순례지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