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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편지
풍전등화


글 심탁 클레멘스 신부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교구 선교사목

 

이번 여름 휴가 중에 짐 속에 넣어간 책들 중 하나는, 쟝 마리 루아르 저, 『하느님 없는 인간들의 이 나라(Jean-Marie ROUART, Ce pays des hommes sans Dieu, Bouquins, Par­ is, 2021)』입니다. 저자는 20대에 프랑스 학술원에 뽑혔을 정도의 천재적인 인물로, 현재까지 저명한 소설가요 수필가로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 제목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신학생 때 읽은 소책, 나찌 치하의 순교자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의 옥중편지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없이』라는 제목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 책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프랑스는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전통을 포기함으로써 철학, 윤리, 종교적 기반을 잃고, 결국 무신론적 인본주의와 유물론이 지배하는 소비주의 사회에 이릅니다. 이는 프랑스 스스로 국가의 근간을 해체하고 특히 종교적으로 무장해제된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에 현재는 이슬람인들의 위협 속에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특히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전통 문화를 해체하고 무장해제함으로써 정복적 태도로 승승장구하는 이슬람의 등장에 매우 무기력 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매년 5000여 명이 이슬람으로 개종합니다.”(Jean-Marie ROUART, 99쪽) 제가 살면서 보고 듣는 바, 이슬람 인구의 증가와 영향력으로 인해 정치인들은 선거 때 그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슬람신자들의 종교행사를 위해 비어 있는 성당들을 구매 혹은 대여하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프랑스 감옥에는 절대 다수가 외국인이며, 그 중 다수가 그쪽 종교인이라고 하는 내무부 통계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이슬람은 유럽에서 공포의 대상”(106쪽)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반면 프랑스 내에 제대로 서 있는 것은 거의 없고 엉망진창 망조가 들어섰으며, 시민 단체들의 영향력이 막강 하며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여전히 그 짓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기 파괴적인 상황은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합니다.(111~112쪽) 민주주의는 전국민을 엘리트로 간주하는 잘못을 저질러 국가 ‘유령선’을 타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역사의 가장 살인적인 바,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채 참된 지도자는 보이지 않고, 군사적•정치적으로 일치된 단결력도 없으며 무책임한 정치 시스템이 돌아가고, 정치는 분열과 부패로 만연해 있고 마치 외부의 적들과 공조하는 공산당을 바라보는 듯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제 국가 자원들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마호멧의 종교는 힘과 활력이 넘쳐나는데, 프랑스는 그저 나약하다고 합니다.(113쪽)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진단합니다. : 현재의 제도들은 물이 없는 땅에 서 있는 배와도 같이 항해 불가하며, 국가는 무능한 채 상징적 존재일 뿐,(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안을 제시합니다. : 믿음(croyance)의 문제를 해결하고 문명 (civilisation)의 저변을 (동맹국) 유럽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 그리하여 프랑스인들이 단결하고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힘을 모아야 한다. 첫째, 국민(nation) 의식과 정신을 회복하라. 나라의 지도자, 과거 역사, 문화, 가치, 원칙들, 체제나 종교 등을 함께 나누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노예적 상태를 반대하는 자유(liberté) 정신을 회복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문학과 언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학’은 프랑스의 문명과 프랑스인의 양심과 의식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것이며, 모든 역사의 진화와 모든 국가 이념들이 문학에서 탄생하여 각인되어 있다.(113~115쪽) 나름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간략히 소개해 올립니다. 중립지대가 없는 영적 전쟁터에서 상당히 무장해제 된 듯 보이는 나라와 교회를 걱정합니다.

 

한국 휴가 준비

저는 본래 백신 접종을 회피했던 반대론자였으나, 한국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미접종자들에게 불편한 일이 행정적으로 계속 개발되어 나왔습니다. 결국 마음을 바꾸어 화이자 백신을 두 차례 맞고 백신 접종 증명서(Pass Sanitaire)를 발급 받고, 코로나 음성 판정 증명서(PCR)를 준비해서 휴가 차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출발 전 백신 2차 접종 후 보름이 채워지지 않아서 대사관의 격리면제서를 발급받지 못했고 결국 인천국제공항 도착 후 작년처럼 2주 격리 대상자가 됐습니다. 귀국 즉시 다시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뭔가 불합리한 점이 느껴졌지만 정부의 강력한 지침에 일개 시민이 저항하는 대신 마음을 비우고 상황을 즐겁게 받아들이기로 하고, 교구청에서 귀국 선교사들에게 마련해 준 2주 격리용 아파트에서 조용히 잘 지냈습니다.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도와준 친구들과 가족들 덕분에 황제처럼 잘 먹고 잘 잤습니다. 그 결과 격리 해제 후 다수의 지인들이 작년보다 건강해 보인다고들 했습니다.

나머지 휴가 기간의 상당 부분을 통합의료원 전인병원에서 진료 및 치료를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종합검진으로부터 시작해서 한방내과, 소화기과, 물리치료, 도수치료, 최첨단 웰빙 관리까지 받으며, 앞으로의 선교 활동을 대비했습니다. 병원장, 대외협력실장, 간호부장, 원목담당 등 그외 모든 의료진들까지 저를 귀인 대하듯 전심전력으로 대우했습니다. 저는 도매시장 의 일개 상품이나 한 명의 환자가 아닌 ‘큰 고객’이 되어 있었습니다. 휴가 때면 인사 다닐 곳도 많은데 최소한으로 제한했습니다. 새로운 임지에서 선교활동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강 챙기기 작전에 집중한 것입니다. 또 짬짬이 몸과 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건들바위 옆 정기관 합기도 거합도장을 찾아가 총사님께 특별 개인지도를 받습니다.(이 대목은 기회가 닿으면 추후에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게다가 저를 젊게 만들겠다는 동생들의 성화에 못이겨 피부관리 시술도 받는 등 사랑의 지원과 지지를 듬뿍 받으며 집중 케어를 받았습니다. 산부인과만 빼고 다 다닌 느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지만 이럴 때는 형제가 많은 것이 큰 복이란 걸 느낍니다.

 

프랑스 공항과 떼제베

매제와 여동생의 도움으로 인천에서 받은 코로나 음성 확인서(PCR)와 프랑스의 백신 접종 증명서(PS)를 제시하여 빠른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샤를르 드 골 공항에 도착하니 아무런 검사도 확인도 없이 떼제베로 이동하여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한 뒤, 김창현 신부 집에서 하루 묵고 8월 22일 오베르네의 사제관으로 귀가했습니다.

검도장

이십여 년 넘게 그만 두었던 검도를 다시 시작하자마자 휴가 차 또 한 달을 넘게 쉬고 검도장을 찾아 갔습니다. 체력도 안되고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습니다. 대련 중 멈출 수도 없고…. 유튜브에 보니 한국과 일본에서는 마스크를 끼고 수련이나 시합을 하길래, 저도 따라해 보았습니다. 급속히 습기를 머금은 마스크가 호흡을 차단하는 바람에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다행히 사범이 먼저 마스크를 제거하라고 권해 주어 살았습니다. 여기서는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호면 아래쪽을 가릴 뿐 마스크를 끼지 않습니다. 대신 호면을 벗으면 마스크를 낍니다. 수련 후, 맥주 한 잔 하러 갑니다. 휴가 다녀온 제가 내기로 했습니다. 맴버 중 한 사람이 우리 도장의 장점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도장에는 여러 등급의 검도인들이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외국인들이 있으며, 더구나 신부 검투사도 있다.’고 하는 바람에 모두 크게 한바탕 웃었습니다. 속으로 말했습니다. ‘야! 나, 너희들 선교하러 왔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