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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골목신앙
기적을 일으키는 방법


글 이재근 레오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교수

 

일반 사람에게 기적이란 뜻밖에 찾아오는 행운일 수 있지만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적이란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상이다.

 

벌써 가을이다. 가을은 날씨가 참 좋다. 그래서 이성적이기 보단 감성적이 된다. 하늘이며 나무며 그 어떤 것 하나도 아름답지 않은 게 없고, 우리는 너무나 아름다운 이 가을에 아름다운 묵주기도를 바친다. 10월이 묵주기도 성월이 된 이유 중에는 이것도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나의 특별했던 묵주기도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내가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동생과 한 방에서 함께 지내던 나는 매일 자기 전에 동생과 함께 묵주기도를 했다. 하지만 앉아서 기도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신다고 배웠던 나는 당연히 하늘을 향해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누워서 기도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께서는 누가 버릇없이 누워서 기도하느냐고 혼을 내셨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누워서 기도를 하는 게 하느님을 마주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묵주기도를 누워서 해본 적이 있는가?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엄청나게 잠이 온다는 것을! 당연히 동생과 나도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었고 어느 순간 잠에 빠져버린 적도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서로 한 침대에서 거꾸로 누워 있는 것이다. 그러면 동생의 얼굴 옆에 내 발이 위치하게 되고 내 얼굴 옆에 동생의 발이 위치하게 된다. 그 상태에서 묵주 기도를 하다가 상대방이 졸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면 발로 얼굴을 차주는 것이다. 그러면 묵주기도가 끝날 때까지 졸지 않고 마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그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작아지거나 뭔가 웅얼거린다 싶으면 가차 없이 발로 얼굴을 다독여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묵주기도 5단을 누워서 졸지 않고 끝낼 수 있었다.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성모님께서 함께 기뻐해 주시는 것만 같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우리가 묵주기도를 했던 이유는 이루고픈 한 가지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분홍 소시지를 먹는 것’이었다. 지금도 시중에 팔고 있는 둥글고 길쭉한 모양의 그 분홍 소시지 말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너무나 먹고 싶어 했던 바로 그 반찬 말이다.

어머니께서는 분홍 소시지가 몸에 그리 좋지 않다면서 절대로 해주지 않으셨다. 대신 몸에 좋은 김치와 겉절이, 그리고 콩자반을 주로 해주셨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 않은가? 몸에 좋은 음식은 맛이 없다는 것을…. 왜 하느님께서는 몸에 좋은 음식을 맛도 있게 창조 해 주시지 않으셨을까? 왜 몸에 안 좋은 음식들만 맛있는 걸까? 치킨이나 피자가 몸에 좋은 음식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탄산음료가 고로쇠 물보다 훨씬 더 몸에 좋은 음료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예나 지금이나 맛있는 음식은 몸에 좋지 않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분홍소시지를 너무나 먹고 싶었던 동생과 나는 매일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며 엄마가 분홍 소시지를 반찬으로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너무 간절한 소망이었기에 묵주기도를 하다가 잠이 들면 하느님께서 그 소원을 들어 주지 않으실 것 같아서 서로의 발로 얼굴을 차면서 다독였던 것이다. 그렇게 기도한 지 9일이 지났을 때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다. 어머니께서 다음날 아침에 도시락 반찬으로 분홍 소시지를 구워주셨던 것이다. 왜 사람들이 “9일 기도! 9일 기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정말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먹었던 분홍 소시지의 맛은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있다.

 

‘기적’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 이유는 잘 일어나지 않고, 특히 나에게는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기적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너무 얻기 힘든 행운과도 같다. 그러나 노력하는 사람에겐 다르다.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적이란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상일 뿐이다.

우리 모두는 기적을 바란다. 더 구체적으로 기적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바란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해줄 수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에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기적은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난 후 나머지 결과를 하느님께 맡겨드릴 때 기적은 너무나 평범하게 일어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렸던 어린 시절의 나와 동생처럼 말이다. 난 지금도 가을이 되면 누워서 열심히 바쳤던 묵주기도와 분홍 소시지 생각이 난다.

 

묵주기도 성월인 10월! 이번 한 달 동안은 침대에 누워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마주보며 묵주기도를 바쳐야겠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동생과 함께 집에서 분홍 소시지를 구워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