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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칼럼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Hodie mihi, Cras tibi)


글 여명진 크리스티나 | 음악칼럼니스트, 독일 거주

한 해를 열심히 달려 어느덧 11월입니다. 우리는 교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1월을 위령 성월로 보내며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죽음’을 묵상하고, ‘죽음’에 머물게 되는 위령 성월이 조금은 무겁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저는 독일에서 교회음악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일미사와 평일미사, 세례식, 장례미사, 혼배미사 등 성당의 모든 전례음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가을이 깊은 11월이 되면 결혼식도 많지만, 일교차가 크고 날씨가 제법 쌀쌀해져서인지 유독 장례식이 많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결혼식과 장례식처럼 의미와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전례를 위해 부탁받는 성가와 연주곡이 늘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똑같은 곡을 어제는 장례미사에서, 오늘은 혼배미사에서 연주하기도 합니다.

〈길은 우리를 하나로 모아주고,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기를/ 들판 위로 비가 촉촉이 내리고, 당신의 얼굴에는 언제나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기를/ 당신이 가고자 하는 그 길 위에서, 내딛는 걸음마다 순탄하기를/ 서늘해질 때면, 머릿속엔 따뜻한 생각이 가득하고 어두운 밤엔 달빛이 당신의 길을 비추기를/ 우리가 다시 만날 그때까지 주님께서 당신을 떠나지 않기를/ 주님의 손길로 당신을 붙들고, 고이 보호해 주시기를/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주님께서 그 손 안에 당신을 꼭 붙들고 계시기를〉

잔잔한 멜로디에 아일랜드의 축복기도문을 가사로 한 이 곡 역시 세례식, 결혼식, 장례식 등 어떤 전례에서나 독일 사람들에게 굉장히 사랑받는 생활성가입니다. 언제 어느 자리에서나 하느님의 축복과 사랑 안에 머물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기쁘고 힘든 모든 순간에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같은 선율이 새로운 삶을 향해 내딛는 축복의 발걸음에도 함께하고, 때론 어떤 이의 세상 마지막 길 위에 울려 퍼지기도 하는 것은, 어쩌면 인생을 살며 만나는 삶의 모서리가 맞닿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을 묵상하는 11월 위령 성월에 이어, 12월 예수님의 탄생이 다가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죽음’이란 결코 가볍지 않아서 두렵고 아프게 다가오지만, 대구 중구 남산동 대구대교구청 내 성직자 묘지 기둥에 새겨진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Hodie Mihi, Cras Tibi)”라는 라틴어 문구처럼 ‘죽음’은 우리가 모두 언젠가는 겪어낼 필연적 순간입니다.

가톨릭 신앙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의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이기에,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내가 주님 안에 머물고, 내 안에 주님이 머물기를 바라봅니다. 또한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이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하며, 우리 가 다시 만날 그때까지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기를, 그리고 주님의 손길이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그 손 안에 우리를 꼭 붙들고 계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