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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골목신앙
빼빼로데이


글 이재근 레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빼빼로는 초콜릿이 발린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는 과자이다. 초콜릿이 발린 부분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나머지 손잡이 부분은 내가 먹는 날, 그날이 바로 빼빼로 데이다.

 

가을의 정점이자 세상을 떠난 소중한 이들을 기억하는 11월이 되면 항상 떠오르는 과자가 있다. 바로 빼빼로다. 나는 빼빼로를 좋아한다. 많이 좋아한다. 어렸을 적 어떤 추억이 있거나 인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맛있어서다. 특히 손잡이 부분과 초콜릿이 듬뿍 발라져 있는 부분의 대조가 오묘해서 좋다. 하지만 이런 빼빼로를 정말 싫어하게 되는 달이 있는데 바로 11월이다.

 

나는 1년 중 11월을 가장 사랑한다. 이유는 내 축일과 생일이 11월 10일이기 때문이다. 세 살 때 유아세례를 받은 나는 부모님께서 생일과 같은 날의 성인을 세례명으로 정하시는 바람에 세례명이 ‘레오’가 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축일과 생일을 같은 날로 맞췄다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축일이라는 것은 그 성인이 태어나신 날이 아니라 선종하신 날인데 왜 굳이 생일과 맞추려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철학적으로 보면 탄생과 죽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한 그 성인이 선종하신 날은 하늘나라에서 새롭게 태어나신 날이기 때문에 의미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래도 뭔가 싫었다.

그런데 그 이유보다도 축일과 생일을 맞추는 것에 대해 싫어했던 더 큰 이유가 따로 있다. 그것은 생일과 축일을 하나로 합쳐놓으면 매우 큰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생일과 축일의 날짜가 다르면 일 년에 두 번 축하받을 수 있는데 이걸 하나로 합쳐놓으면 한 번밖에 축하를 못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예비신자교리를 할 때마다 예비신자들에게 축일과 생일은 꼭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으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야 두 번 축하받을 수 있다고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 생일 다음날은 11월 11일 빼빼로데이다. 이것이 왜 나에게 악재인가 하면 생일과 축일을 합한 선물로 빼빼로만 받게 되기 때문이다. 남들은 축일과 생일, 그리고 빼빼로데이까지 일 년에 세 번 선물을 받고, 또 다양한 종류의 선물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게 한번으로 합쳐져 버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선물이 아닌 다양한 종류의 빼빼로를 선물로 받게 된다. 심지어 어떤 해에는 생일과 축일 선물로 빼빼로만 100개 정도를 받은 적도 있다. 신자들은 나를 위해 오리지널 빼빼로, 누드 빼빼로, 딸기맛 빼빼로, 아몬드 빼빼로 등 다양한 종류의 빼빼로를 주지만 나는 다양한 종류의 슬픔만 경험한다.

그렇다고 내가 빼빼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빼빼로를 좋아한다. 오히려 평소에 즐겨 먹는 과자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과자 TOP 3에 들어간다.(그냥 11월에만 잠시 싫어하는 것뿐이다.) 특히 초콜릿이 듬뿍 발라져 있는 부분을 굉장히 아낀다. 만약 친구가 내가 먹고 있는 빼빼로를 한입 뺏어 먹었는데 그게 손잡이 부분이 아닌 초콜릿이 발라져 있는 부분이었다면 그 친구는 더 이상 나와 함께할 수 없다.

 

그러다 작년 11월, 평소와 똑같이 강론 준비를 하던 중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날은 내 축일과 생일인 11월 10일 저녁이었고, 다음날인 11월 11일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강론을 준비할 때였다. 축일 선물로 받은 빼빼로를 먹으면서 강론을 쓰고 있었는데, 군인으로서 자신의 명예이자 전부이기도 한 망토를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잘라줬던 마르티노 주교의 삶을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되었다. 너무 멋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저렇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가족, 동기 신부, 신자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나눠주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에게 받고 있었다.

나는 망토를 잘라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잘라주기는 커녕 소중한 사람의 망토를 나눠 받는 사람이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나의 것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되자 내가 가톨릭 사제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이것을 깨닫게 된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중한 이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후회는 그들이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하게 된다. 어쩌면 위령 성월은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로하는 날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나눠줬던 망토를 기억하고 고마워해야 할 시기이다. 더 나아가서 그들이 나에게 해줬던 것처럼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위해 망토를 잘라 줘야 할 시기이다.

 

나는 지금 빼빼로를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나에게 소중한 선·후배 신부님들이 함께 살고 있다. 빼빼로를 망토에 비유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시작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언젠가는 소중한 이에게 기꺼이 내 전부를 잘라줄 수 있는 나의 시작 말이다. 이를 위한 첫 단계로 초콜릿이 듬뿍 발린 빼빼로를 들고 옆방부터 놀러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