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오늘 우리의 생태 영성 살이
생태적 감수성에서 솟는 기쁨과 충만


글 황종열 레오 | 평신도 생태영성학자

 

저는 하느님을 이렇게 체험합니다. 하느님 바닥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존재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바닥이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저자들은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시편 62,7)라고 노래합니다. 이때 “바위”라는 말이 그 분께서 우리 존재의 “바닥”이시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면서 바닥이 되어 주시고, 또 우리의 바닥이 되어 주시면서 하늘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는 바닥과 하늘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서,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해 만물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참으로 우리는 그분을 딛고 그분을 바닥으로 삼아서 사는 존재들입니다.

하느님은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노래하는 것처럼 하느님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그분은 양식 이전에 저에게 숨을 쉴 수 있게 당신의 바람을 보내주시고, 제가 몸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당신의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아무 대가도 받지 않으시고 비도 내려 주셔서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마냥 주기만 하십니다. 하느님은 이 모든 땅바닥과 땅에서 나는 모든 양식들, 그리고 바람 - 숨과 빛 - 체온과 비 - 물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것들을 존재의 바닥으로 삼아서 살게 하시니, 그분은 우리에게 주시고 또 주시는 분이시고 그렇게 하셔서 우리 존재의 맨 밑바닥이 되어 주시는 “원-바닥”이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이렇게 매일 매순간 하느님의 탄생과 오심과 주심을 일상 속에서 체험합니다. 당신의 생명, 당신의 존재, 당신 자신을 당신의 온 창조물에게 내어주시는 하느님! 위에서 본 것처럼 밥으로, 물로, 빛으로, 숨으로 그렇게 하시고, 때로는 우리에게 가시들을 보내시기도 하지만, 당신의 카리타스 사랑으로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가족과 이웃들의 사랑의 사건을 통해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하느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과 부활이 하느님의 생명 살림 안에서 우리 가운데 아름답게 열매 맺기를 기원하면서 아홉 번째 나눔을 이어 가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찬미받으소서』에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창조물에게 생명의 기원이 되고 존재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이것은 창조된 만물이 하느님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들에게 생명과 존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는 것을 뜻합니다.(96항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온 창조물과 “우주적 형제애”(92항)와 “우주적 친교”(76, 92, 220항)를 나누는 “우주적 가족”(89항)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께 부여받은 생태적 감수성은 바로 우리가 우주 만물과 한가족이 되도록 불리었다는 영성적 진리에 근거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생태적 감수성에 비추어서 창세기 1장 에 전해지는 첫 창조 이야기를 다시 읽어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혼돈 속에서 “빛이 생겨라” 하셔서 빛이 있게 하셨습니다.(창세 1, 3) 이 빛이 작용하는 방식을 알면 하느님께서 빛을 통해서 하시는 일을 그만큼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빛은 무엇인가가 가로막아도 가로막힌 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빛은 가로막은 것을 계속 비추면서 가로막은 것의 뒤쪽까지 빛으로 물들게 하고 따뜻하게 해줍니다. 빛은 이렇게 포용적입니다. 빛은 배제를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의 파동이 이루는 이같은 비배타(非排池), 비배제(非排除)를 아시고,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신다.”(마태 5, 45)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를 증언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빛처럼 살라고 요청하십니다. 잘못하는 행동은 바로잡으면서 잘못하는 사람은 끝까지 용서하고 사랑하라 호소하십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은 참으로 잘못하는 사람들한테도 끝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정의가 사랑 안에 있을 때만 살리는 정의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빛을 창조하신 이후 그분의 빛이 없어 본 적이 없으니,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분께서 보내주시는 빛과 함께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우리는 참으로 복되고 또 복됩니다.

이렇게 빛이 있게 하신 하느님께서 계속해서 하늘과 바다가 생겨나게 하시고 물에서 뭍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당신 말씀대로 있게 된 모든 것을 보시고 “좋다” 하셨습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공간 안에서 뭍에는 식물들이, 물에는 물고기들이 제 종류대로 있게 하시고 하늘에는 날 것들이 살게 하시고 그것들을 축복하시며 번창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우주 집의 정원인 이 지구에서 “기어 다니는 것과 … 들짐승들을 제 종류대로, 집짐승들을 제 종류대로” 창조하셔서(창세 1, 24-25) 사람보다 먼저 당신이 직접 만드신 집에서 살게 하시고 축복하시며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당신의 우주 가족의 막내로 당신 모습을 닮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셔서(창세 1, 27) 당신의 뜻에 따라 당신의 사랑의 관계를 당신의 온 창조물 가운데서 함께 배우고 전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당신 집과 그 집에서 당신과 함께 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보시면서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 31) 하셨습니다. 모든 식물, 모든 동물, 모든 생물이 다 “제 종류대로” “생겨”나서 “번성하라” 하신 말씀은 모든 생물의 다양성 협약의 으뜸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기어다니는 것들 중에서 지네를 보면 어떻게 하시는지요? 쉰발이라고도 하는 그리마를 보면 어떻게 하시는지요? 기기도 하고 날기도 하는 바퀴벌레는 어떠신지요? 소리 질러 누가 오게 한다, 피한다, 죽인다, 여러 반응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누가 있게 하셨나요?’ 하고 물어보면 많은 분들이 웃습니다. 하느님께서 이것들을 “제 종류대로” 있게 하시고 보시니 좋다 하셨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싫어하나요?’ 하고 물어보면 ‘그래도 싫어요.’ 하면서 웃습니다.

모르면 모를수록 두려움과 분노가 빨리 올라오고 알면 알수록 함께 살 수 있는 힘이 커집니다. 지네를 보기만 하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든가 죽이던 여학생이 새끼들을 등에 업고 다니는 지네의 모성애에 감복한 후 친구가 되어서 함께 노는 사례가 있습니다. 쉰발이가 집에서 바퀴벌레 알 같은 것을 먹고 산다는 것을 알고는 태도가 달라진 한 지인의 예도 있습니다. 영국 노팅엄대학에서 슈퍼 박테리아를 막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다가 바퀴벌레의 뇌에서 신항생물질을 발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이것들이 소중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를 배우는 동안 하느님이 온 창조물을 생겨나게 하셨을 때는 다 이유가 있으셨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면서 그동안 보기만 하면 죽이던 개미들을 더는 죽이지 않게 되었다는 한 자매님이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살림에 대한 믿음으로 온 생명에 대한 생태적 감수성을 지켜가는 것이 하느님의 생명 살림에 얼마나 잘 맞는 숭고한 일인가를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한겨울에 해가 날 때 느끼는 것과 같은 따스함을 닮은, 참으로 따뜻한 생태적 감수성으로 그분의 신앙 공동체 모든 분들의 날들이 아름다울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이같은 생태적 감수성이야말로 참으로 하느님 감수성이고, 예수님 감수성입니다.

 

우리는 지난 호에서 택화혁(澤火革, )괘, 연못 밑에서 불이 타오르며 새로운 세상을 익혀 가는 투신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을 지배로 전도시키고, 제 종류대로 제 꼴대로 살아갈 생명의 충만을 착취와 억압으로 변질시킨 권력자들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서로 결탁한 상태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신음하는 현실을 예수님이 아파하셨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살림이 다시 모든 사람 모든 존재들에게 작용할 수 있기를 바라시면서, 당신을 타오르는 횃불처럼 당시 민중과 지배자들 가운데서 뜨겁게 드러내셨습니다.

산(山)이 땅() 위로 솟아올라 깎이는 것처럼(剝),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느님의 살림을 향하여 일어나셨을 때, 민중은 그분을 따르고 불의한 지배자들은 그분을 모함하며 깎아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물(水)과 땅(地)이 서로 어울리듯(比) 예수님이 가난한 이들과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하느님의 살림을 경축하며 지내십니다.

바람(風)이 세상()을 휘돌며 때의 흐름을 읽듯이(觀) 예수님은 당대 사회에서 세력을 누리던 이들의 심중을 읽으십니다. 그런 가운데 천둥(雷)이 땅(地) 위에서 소리를 내면 비가 올 것을 내다볼 수 있는 것처럼(豫), 그분은 그들의 적대감이 높아지는 것을 보시고 오히려 적대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해(火)가 땅(地)을 비추며 태울 것 태우면서도 품어 안고 가듯이(晉), 그분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든 세력들을 몰아내시면서 성전을 정화하시고 하늘과 땅을 이어 온 땅 온 바닥을 새롭게 하실 준비를 해 가십니다.

육화부터 시작된 그분의 깊은 순명을 통해서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워 가신 예수님이, 낮추어진 땅(澤)에 물이 모여들고 땅(地)에 가까운 존재들이 다시 또 그곳으로 모여들어 생명의 경관을 이루듯(), 자신을 낮추고 낮추셔서 당신을 찾아오는 만인과 만물들을 품어 살리십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하늘(天)과 땅(地)이 서로 대치하기라도 하는 것처럼(否), 땅으로 내리셔서 온 땅의 바닥이 되신 분께 자신들이 하늘이기라도 한 듯 대립하는 땅의 세력들에 의해서 온 하늘의 하늘이신 분이 거부당하십니다.

하늘(天) 아래 산(山)이 몸을 숨기듯, 그분이 올리브 동산으로 물러가셔서 “아버지 앞에 서신 예수님이 피땀으로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지만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비가 쏟아지는 날 하늘(天)은 그 하늘이어도 물(水)들이 서로 하늘이라며 다투는(訟) 세력들에 의해 하늘의 하늘이신 예수님이 재판에 넘겨지셔서 십자가 극형을 받으시고 다투는 세력들이 보는 앞에서 실패자로 숨없는 차가운 몸으로 돌무덤에 묻히셨습니다.

하늘(天)에 바람(風)이 일어 새로운 대면()을 위한 돌파구를 열듯이, 예수님은 당신의 상처와 죽음으로 하늘과 땅, 생명과 죽음을 하나로 이어 소통하게 하셨습니다. 하늘(天)에서 천둥(雷)이 일면 실망시키지 않고(无妄) 생명을 기르는 물이 세상에 내리듯,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죽음에서 일으켜지셔서, 새 생명의 공동체, 새 생명의 집안, 새 생명의 순명자들이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하늘(天)과 불(火)이 하나로 화하여 동체가 되듯이(同人), 예수님은 하늘의 하늘로서 하늘과 하나가 되시고 땅의 땅으로서 땅과 하나가 되시어 온 우주 만물, 온 존재, 온 생명의 원천, 온 인류의 맏형이 되셨습니다. 당신의 죽음과 일으켜지심으로 이제는 하늘과 땅, 생명과 죽음이 더는 둘이 아니고 하나의 다른 양태임을 계시하셨습니다.

이 새로운 날들을 여시고 제자들에게 당신 부활의 숨을 불어넣어 주신 예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던 제자들과 잠시 함께 지내십니다. 그후 때가 되었을 때 하늘(天)을 향하여 용이 연못(澤)에서 떠올라 허공을 발판 삼아 뛰어오르듯(廣), 당신 제자들에게 온 창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시고 하늘로 떠나시면서 당신의 사명에 순명할 모든 존재에게 존재의 바닥이 되어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맏형 예수님은 마침내 삼위일체 하느님 사이에서도 당신의 온 창조물 안에서도, 그리고 온 우주와 사람들 사이에서도 하늘이 바닥이고 바닥이 하늘이라는 계시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하늘(天)이 하늘(天)과 합하여 온 존재 만물의 어버이(乾)가 되듯이, 온 창조계 만물의 생명의 근원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생명의 주, 존재의 주로서 온전히 살아 계십니다.

아! 하늘의 하늘 건건(乾乾)으로서 하늘의 하늘 건건(乾乾)을 떠나 땅으로 내려오셔서 땅의 땅 곤곤(坤坤)을 품어안고 다시 하늘의 하늘 건건(乾乾)에 이르신 곤곤건건(坤坤乾乾)이신 주님, 온 땅을 아시고 우리의 곤경과 부족과 실패와 고통과 열망을 아시기 때문에야말로 당신만이 저의 주님이십니다, 주님!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신앙 공동체 여러분에게 매 순간 온유하고 따뜻한 숨을 불어넣어 주시고 여러분이 기쁠 때나 분노할 때나 한결같이 그 숨을 온유하고 따뜻하게 쉴 수 있도록 지켜 주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