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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편지
다시 낯선 곳으로


글 심탁 클레멘스 신부|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교구 선교사목

 

9월 24일 : 본당 신부와 직원들과 함께 금요일 오전에는 보통 주보 작성을 위한 준비회의를 합니다. 회의 후 이 글을 쓰려고 저의 방 책상에 앉는 순간까지도 5분 전 발사된 평신도 협력자의 분노조절장애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듯 좌측 가슴 심장 쪽에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목회의를 통해 주임 신부는 저를 위한 송별미사인 만큼 주례-강론-성가곡-성가대 구성-송사 답사 등을 ‘저의 소신껏’ 준비하라고 말했습니다. 편집기술이 부족한 저는 특별히 이번 주 미사에 성가곡 가사의 초안을 잡은 후, 평신도 협력자나 사무장의 검토와 섬세한 편집 기술의 도움을 받고자 도움을 청했습니다. 평신도 협력자는 꾸지람을 시작합니다. 저는 초안을 글자크기 10포인트로 A4용지 네 면에 꽉 차게 편집했습니다. 글자가 작으면 신자들이 읽기 힘들다며 협력자는 글자 크기를 12포인트로 키우더니 모두 재배열을 시작합니다. 글줄 배열, 작은 그림 등 위치가 모두 변경되었습니다. 결국 4면이 넘어가자 성가대원들과 지휘자와 함께 토론 후 결정한 가사의 절 수를 줄이라고 합니다. 미사 시간이 길어진다는 이유입니다.(송별미사 당일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미 자신이 신학적으로 잘 꾸민 송사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담담히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평소와 다른 모습, 공유되지 않는 내용, 영혼이 없는 글자의 낭독, 낯선 미소를 날리며 웅변하는 장면들. 말씀의 청자는 저도 신자들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인 것 같았습니다.)

급기야 그녀의 손에서 누군가를 향한 타박이 터져 나옵니다. 줄바꿈 엔터가 먹히지 않으니 키보드를 손으로 내려칩니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 ?) 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 마치 키보드랑 대화하는 것 같았지만 저는 모멸감을 느낍니다. 송별미사를 앞둔 상황이라 저도 언행에 조심합니다. 그러나 조금 전, 급성 분노조절장애 바이러스의 폭발력에 방심한 채로 위협과 분노를 느끼며 감염되었습니다. 코로나19 백신 두 방으로는 턱도 없습니다. 갑자기 심장 박동수가 높아지며 왼쪽 가슴에 약간의 통증을 느낍니다. 머리쪽으로 피가 몰리는 듯 얼굴이 커지는 것 같다가 더 이상 표정 관리가 안 되어 ‘일단 피하자!’ 다행히 저는 폭탄을 되돌려 주지 않고, “지금까지 수고해 줘서 고맙다. 나머지는 내가 나중에 알아서 할게! 안녕!”이라고 말하며 급히 방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칭찬합니다. ‘잘했다. 잘했다! 잘 참고 잘 피했다!’ 혼자서 잠시 부르르 떱니다. 몸이 약해진 걸 느낍니다.

지난 9월 9일에는 새 부임지에서 협력할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새 주임 삐에르 신부의 주도로, 은퇴한 전례학 교수이며 9개 중 하나의 본당을 맡고 있는 신부 맑셀, 까리따스 최고책임자를 지낸 종신 부제 장-마리, 그리고 저랑 네 명이 회동을 했습니다. 서로 부드러운 인사말 가운데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전임 본당 신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첫영성체와 견진성사 교리반을 해체했고, 은퇴한 교수 신부가 통상 2년짜리 교리반을 1년으로 줄여서 속성반을 구성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일종의 ‘교리 속성반’을 꾸리고 있고, 전 주임 신부와 반대의 길을 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새 주임 삐에르는 그동안 매달 9개 본당을 순회하던 주일미사 시간을 고쳐 두세 개의 거점 본당의 미사 시간을 시범적으로 고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반대 토론은 없었습니다. 각자 자기 소개겸 사명을 소개합니다.

이 지역은 개신교 신자들이 절대다수이고 가톨릭 신자는 소수입니다. 그런 만큼 부제는 에큐메니즘이 강한 사목지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기본 전례 봉사와 강론 외에도, 개신교와 함께하는 찬양 기도회, 혼인 준비 과정 및 부부 모임(Alpha Couple) 등의 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간단한 소개 후 저는 기타 토의 시간에 오베르네의 중요한 신심행위에 속했던 ‘성시간(Ador a­tion) 과 고해성사(Confession)’ 등은 없냐고 물었습니다. 부제는 저쪽으로 옆머리를 기울이며, 부정적인 의도를 풍기며, 묻습니다. “아도…. 과?(Adooo…. Quoi?) Je n’ai pas compris. Qu’est-ce que tu dis?”(나 이해 못했다. 너 뭐라 그랬냐?)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합니다. 시대와 상황에 적응한다며 ‘목욕물과 아기를 같이 버리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그와 동시에 은퇴한 전례학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합니다. “어디 그런 구시대 이야기를 하냐? 내가 어릴 때 미사보다 성시간을 더 열심히 하던 사목을 목격했다.(…)” 성시간과 고해성사를 즐겨 봉사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증오심 같은 것을 노출하는 신부와 부제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시간이 미사만큼의 등급은 아니어도 성모신심과 더불어 성체신심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텐데 이건 또 뭐지? 장차 이곳도 만만찮겠구나.’라는 예감이 듭니다. 전례학 박사일지언정 자신의 지성과 경험을 과신하고 전통적 신심을 경시하는 모습에서 교만한 지성인의 메마른 영혼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미팅을 마칠 때, 자신이 준비한 전례 자료를 나눠 줍니다. 넙죽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10월 5일 : 베스트호펜 시장과의 만남. 2021년 5월에 새 본당 발령(9월 1일자)이 났습니다. 이사를 앞두고 사제관 사전답사 차원에서 그 지역 시장과 만남을 갖습니다. 10월 5일 현재 사제관이 준비가 안 되어 있어 임시 숙소에 기거하게 됩니다. 늦어도 10월 15일 경에는 이사할 예정입니다. 한국과 문화가 많이 다릅니다. 이런 불편에 기가 죽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나그네처럼 선교 여정을 떠난 인생, 광야를 마다 않고 노숙을 두려워하지 않는 ‘노마드’처럼 새로운 환경을 찾아가서 무조건 적응하는 선교사임을 상기하며, 외적 조건을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항상 주님의 뜻이 있는 곳에 길은 반드시 있고, 그 방법도 있다고 믿습니다. 10월 5일은 프랑스 주교회의가 수년 전부터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1950년 이래 교회 신부들의 아동 성범죄를 조사한 결과가 발표되는 날입니다. 그간 피해자가 20~30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를 보이며, 성직자들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날입니다. 부끄러움과 무한 책임으로 끊임없이 회개하고 보속하며 죽기까지 피해자들과 교회와 사회에 용서를 구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는 날입니다.

반면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 10월 1일부터 3일까지 평신도들이 앞장선 ‘새로운 선교 운동 총회’가 동시에 열렸습니다. 가장 놀랍고 감동적인 것은 제2일 미사 퇴장 행렬을 하기 전, 성당 중앙 통로에 신부들과 신학생들, 부제들과 주교님까지 2열 종대로 나란히 세운 다음, 파견 강복 전 신자들의 주도로 ‘사제들과 선교사들을 보내 달라.’며 하느님께 기도하고, 신자들 일동이 손을 뻗어 안수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이벤트와 그 순간에 발생한 강력한 에너지와 영적 기운에 뜨거운 눈물이 솟았습니다. 10월 5일 죄고백과 용서를 구하는 회개와 보속의 날에 있을 사회적 비난과 저주를 받을 준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죄의 연대성 때문에 과거 죄의 영향을 후대의 신부들도 받고 있으며, 특히 피해자들은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며, 우울증 환자들과 자살자들도 적잖다는 증언들이 있습니다.

지성인들의 교회 해체론, 종교교육 불가론이 등장합니다. 교회 안의 인간들의 죄가 커서 태산같이 무겁습니다. 참으로 거듭나기 위해 죄를 고백하고 자신을 내어 놓습니다. 분명한 것은 참된 교회는 죽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 머물며, 붙어 있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말라 죽습니다.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우리 죄로 인해 죽었다가 참생명으로 부활해야 합니다. 세상과 교회의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보속을 바치며, 동시에 우리가 하루하루를 창의적으로 살며, 주님의 때를 향해 나아가야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