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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의 독서일기
빨간 시집의 물음에 초록색 소설이 답할 때


글 전형천 미카엘 신부|국내연학

 

그 무렵 잠들지 못하는 밤이 많았습니다. 아무 일도 없이 긴 밤을 버틸 자신이 없었으므로, 꺼운 커튼을 치고 작은 등불을 써서 책을 읽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별일조차 못되는 일이겠지만, 학교에서만큼은 일탈이었습니다. 자주 잠들지 못했으므로 일탈은 일상이 되었고, 몸을 숨겨 읽은 책에 마음도 감추어두곤 했습니다. 그렇게 신학교에서의 마지막 몇 해를 보냈습니다. 이제와 그 책들을 그때의 절박한 마음으로 읽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끔 다시 펴보면 하얀 기억과 감춘 마음이 새록거립니다.

 

어쩌다 빨간 시집을 다시 꺼냈을 때 책장 한쪽 끄트머리는 소심하게 접혀 있었습니다. 제멋대로 그어놓은 밑줄과 동그라미를 손끝으로 더듬어보려다, 흘려 쓴 쪽지가 무심히 떨어졌습니다. 시 한편에 마음이 멈추었고, 책의 물음에 놀라 황망히 책을 덮어버렸던 밤이 또렷해졌습니다. 들키고 싶지 않은 생각을 허공에 달아놓은 채 걸음 없이 사방을 서성거렸고. 던져진 질

문에 무어라 답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어서 허탈했더랬지요.

 

“우리 스무 살 할아버지의 손에는

신분제를 타파하는 죽창이 들렸고

우리 스무 살 아버지의 손에는

계급차별에 맞선 총이 들렸고

내 스무 살 손에는

군사독재와 계급체제를 무너뜨릴

화염병과 팜플렛이 들렸었다.

 

스무 살,

지금 네 손에는 무엇이 들렸는가?”

 

- 박노해,『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스무 살의 역 사”,325-326.

 

 

누군가 대신 대답해 줄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묻고 싶었습니다. 선배들은 서울역에서 돌아서야 했던 기억, 거리에 가득한 최루가스, 살기 위해 태워버린 학교신문,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다고 들었던 꾸지람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이 청춘을 보낸 시기는 아마도 무척이나 엄혹했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말은 뜨거웠습니다. 무어라 할 말이 있는 선배들이 조금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이 제 것이 될 수는 없었고, 더 늦기 전에 대답을 찾아야만 할 것 같았지만 여전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얼마가 흐른다면 할 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쪽지를 써서 끼워두었습니다. ‘그래서, 할 말이 생겼는가?’ 다시 책을 폈을 때 그 쪽지가 무심히 떨어졌고 저는 질문을 건져냈습니다.

 

쪽지를 앞에 두고 초록색 소설을 폈습니다. 빨간 시집을 까맣게 잊을 무렵 읽었던 책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이었습니다. 1955년에 일본 젊은이들의 제6회 전국협의회가 있었는데, 이를 줄여서 ‘육전협’이라 부릅니다. 원래 일본의 운동권은 무장투쟁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학교를 떠나서 지하 군사조직에 가담해서 훈련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육전협에서 무력투쟁을 포기하고 평화적 방법으로 운동을 이어가기로 결정합니다. 안락하고 평탄한 삶의 길을 포기하고 투쟁을 시도하는 혁명가로 살기로 결심하고 투신했던 젊은이들이 충격감과 상실감에 빠집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육전협의 시대와 세대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은 주인공 ‘후미오(나)’가 헌책방에서 어떤 전집을 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전집에는 옛 소유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는데, 약혼녀 ‘세쓰꼬’는 그 도장의 주인이 도쿄대 역사연구회 회원이었던 '사노’였음을 알아봅니다. 후미오와 세쓰꼬는 사노의 행적을 알아보다가, 그가 스스로 삶을 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읽게 됩니다.

 

 

“… 문득 어떤 의문이, 어떤 물음이 떠올랐다. 나는 죽음을 앞두고 무엇을 생각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것과 거의 동시에 무서운 답에 번개처럼 번쩍였다. / ‘나는 배신자다!’ / 그렇게 생각하겠지. 나는 나 자신에게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그 외에 어떤 답도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 시바타 쇼, 『그래도 우리의 나날』, 82.

 

 

사노는 한때 군사조직에 가담할 정도로 운동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육전협의 결정 이후 학교로 돌아왔고, 졸업 후에는 다른 사람과 연락을 끊고 대기업에 들어가 성공가도를 달립니다. 사노는 외적으로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이어가면서도, 한때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졌던 유일한 것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상실감과 절망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배신자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사노는 지독한 무기력에 휩싸여 죽음을 택합니다. 그리고 그가 죽으면서 남긴 편지는 후미오와 세쓰꼬,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살던 인물의 삶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사노 씨의 유서가 내 손에 전해진 날 밤,내가 그 유서를 펼쳤을 때, 그 속에서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을릴까’하는 의문이 못처럼 내 가슴에 콕 박혔어. 마치 내게 던지는 질문 같더라. 그리고 그 대답을 찾았을 때, 나는 내가 그런 무서운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갖고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 … 내 생은 마른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기만 하고 있으니 죽음에 임박해서 움켜쥐려는 손에 뭔가 남아 있을 리 없다…… / 그걸 깨달았을 때, 내가 무엇을 해야 했을까. 포기는 하지 않았어. 어떻게든 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언젠가 내일이 오는 것을 바라지 않게 될 정도로 지칠게 분명하다.…”

- 시바타 쇼,『그래도 우리의 나날』, 175-176.

 

 

한 남자를 죽게 만든 치명적인 질문으로, 한 여자는 다시 태어납니다. 세쓰꼬는 자신의 삶이 이대로 괜찮은지 질문합니다. 그녀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지만 실패하고, 후미오와 파혼한 뒤 후미오의 곁을 떠납니다. 세쓰꼬는 후미오와 함께하는 안정 된 삶을 포기하면서 새로운 삶을 모색합니다. 후미오는 그녀의 선택을 “우리 세대를 탈출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받아들이면서 독백합니다.

 

 

“머잖아 우리가 정말로 늙었을 때, 젊은 사람들이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젊은 시절은 어땠냐고. 그때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우리 때에도 똑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이기는 하겠지만,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움에 익숙해지며 이렇게 늙어왔다. 하지만 우리 중에도 시대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로 용감하게 진출하고자 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답을 들은 젊은이 중 누구든 옛날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데, 지금 우리도 그런 용기를 갖고자 생각한다면 거기까지 늙어간 우리의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 짐을 부쳐 텅 빈 방안에 노을이 물들었다. … 그걸로 됐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과 이별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 시바타 쇼,『그래도 우리의 나날』,196.

 

 

이 소설은 오래된 소설이기는 하지만 결코 낡은 소설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오래된 것이나 각자의 자리에서 안간힘을 쓰는 인물들의 내면을 따라가는 일은 결코 낡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세상과 부딪히며 깨져나가는 청춘의 목소리는 어느 시대에나 반복되면서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던 그 시절의 청춘들은 이제 각자의 방법대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죽는 사람이 있고, 못 죽은 사람이 있고, 안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뜨거운 열망이 차가운 패배의식으로 바뀌면서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서 세상을 등졌습니다. 또 어떤 이는 잠시 멈추고 주어진 안락한 삶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 물었습니다. 또 어떤 이는 격랑이 지나가고서 주어진 안락한 삶을 적당히 받아들였습니다. 그 뜨거운 열정도, 컴컴한 절망도, 그 아팠던 시대도, 이대로 괜찮은지 물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채 그저 살아왔던 그 모든 것도, ‘그래도 우리의 나날’이었겠지요.

 

『그래도 우리의 나날』과 같은 소설을 ‘후일담 소설’이라고 한답니다. 대개는 운동권으로 살다가 방향을 잃거나, 혹은 스스로 방향을 바꾼 이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의 소설을 ‘후일담 소설’이라고 불렀다고 하더군요. 넓게 보면 빨간 시집의 시도, 선배들의 이야기도 일종의 ‘후일담’ 형식의 이야기였던 셈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후일담’은 시대와, 시대를 공유한 세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후일담이, 해방 이후에는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후일담이 가능하겠지요. 아마도 그런 후일담은 과거를 보존하면서 기억을 재생산하고, 또 미처 해결되지 못한 과거를 청산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동력으로 작동해왔겠지요. 물론 때로는 어제를 팔아 오늘을 산다고 비난받기도 하겠지만, 후일담은 후일담이므로 부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 세대에게는 어떤 후일담이 가능할까요. 내일의 취업을 위해 오늘의 청춘을 허비할 수밖에 없고, 세상의 빚을 갚다 제 빛을 잃어가는 젊은이들에게는 어떤 후일담이 가능할까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끝없는 경쟁에 내몰린 세대, 고결한 가치는 사치가 되어버렸고 경제적 성공에 열광하고 감각적 힐링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 세대는 어떤 후일담을 남길까요. 만연한 폭력 앞에서 대부분은 방관자로 일관하다가 자신의 이득이 줄어들면 선택적으로 분노하는 우리 세대의 후일담은 다음 세대가 어떻게 소비하고 해석할까요. 함께하며 일구어 낼 가치를 찾기 어려워, 어떤 가치에도 투신해 본 기억이 없으므로 후일담마저 박탈당한 세대로 기억될까요. 과연 우리 세대에게 후일담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요. 언젠가 우리 세대의 후일담을 나누어 읽으면서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오늘도 질문만 늘었을 뿐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 걸음, 2010.

시바타 쇼, 『그래도 우리의 나날』, 권남희 옮김, 문학동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