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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의 생태 영성 살이
하느님의 한 바닥 위에서 이루어 가는 무등(無等)의 영성 살이


글 황종열 레오 | 평신도 생태영성학자

 

아기로 오시는 예수님의 고운 숨이 여러분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시기를 기원하면서 2021년 마지막 나눔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한 하느님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찬미받으소서』 89항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를 모두 하나로 이어주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카리타스, 하느님의 사랑은 보이질 않습니다.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것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위가 아니라 밑에 있습니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바닥이 바로 우리 모두를 하나로 이어줍니다. 이런 점에서 공동체는 바닥을 공유하는 존재들의 모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독재자나 교만한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의 공통점은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바닥을 파괴합니다. 이들은 자기와 친한 이들은 자기 영역에 받아들이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자기 영역 밖으로 밀어내면서 잘 소통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정의를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들과 자신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은 잘 보지 못하고,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낮춰 보고는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찬미받으소서』를 중심으로 사람과 사회와 자연이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의 눈을 뜨고 살고자 시도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인간 생태”나 “사회 생태”라는 의식조차 없이 하느님의 한 바닥 위에서 모든 사람과 사람을 하나로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을 보고, 특히 폐병 환자들을 하느님의 한 집안 식구로 맞아들여서 형제애를 실천하며 살았던 한 선구자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대구와 경상북도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요, 산이 비교적 작고 적은 전라도 광주에는 무등산이 있습니다. 이 산은 호남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꽤 큰 산입니다. 사연없는 산이 없겠지만 이 무등산도 수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없을 무(無), 등급 등(等), 등급이 없는 산, 無等山.

우리가 일반적으로 만나는 세상은 신체에도 경제에도 지위에도 지식에도 가족에도 나라에도 온통 등급이 매겨져서 일등을 쫓아다니는 유등(有等)한 세상입니다. 이 다툼의 세상에서 차이를 차별이 아니라 다양으로, 풍요로 일으켜 세우는 어머니 같은 산. 자기를 찾아든 온 생명에게 등급 매기지 않고 제 종류대로 제 꼴로 살게 하는 무등의 산. 온 생명 모든 존재가 자기로 숨쉬다가 숨 다하면 받아안아서 자기와 함께 다시 생명을 키우는 일에 참여하게 하는 무등산. 이런 산이 바로 하느님의 품을 잘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전라도 광주 무등산은 하느님에게서 와서 하느님의 품을 닮은 산의 한 상징입니다.

결핵으로 거의 죽음에 이른 사람들을 이 무등의 산속으로 모시고 들어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1950년 전쟁 이후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유등한 세상에서 결핵에 걸린 사람들은 쓸모없는 존재들, 병을 옮기는 위험한 존재들로 여겨져서 기피되고는 합니다. 요즘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사람들이 기피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습니다. 가족도 가까이 하기를 꺼리며 돌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환자들 자신이 병을 옮길까봐 스스로 가족과 떨어져서 외롭게 살다가 혼자 죽음을 맞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김준호(레오, 1924?2010) 선생은 오갈 데 없는 결핵 환자들이 죽기까지 편안하게 물 마시며 숨 쉴 곳을 마련해 주기위해 이들을 모시고 당시에는 인적이 드물었던 무등산 깊은 곳으로 찾아 들어갔습니다. 물 흐르는 곳 가까이에 움막을 쳐서 이들이 머무르게 하고는, 광주 시내로 내려가서 양식을 얻어다가 이들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김준호 선생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난의 영성과 소화 데레사 성인의 작은 꽃의 영성에 따라 사랑을 살기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광주 무등산에서 하느님의 무등의 영성을 실천하며 살 때 그의 영성살이를 동반해 온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동정녀들과 함께, 특히 조비오 몬시놀의 도움을 받아서 1999년 1월에 예수의 소화 수녀회를 창설하게 됩니다.

김준호 선생은 유등한 세상에서 외면당하는 존재들이 하느님의 눈길로 바라볼 때 어떤 존재일 수 있는지, 그와 그의 동료들이 후에 세운 “소화자매원”에서 누워서 생활하던 “유자” 자매를 보라면서 이렇게 증언한 적이 있습니다. 백유자 자매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전신마비장애인이었는데, 김준호 선생은 이 자매를 하느님의 공주라면서 매우 귀하게 대하였습니다.

 

“자매원에 가 보라. 유자를 가 보라. 그 사람이 예수다. 어느 집사가 가보고 그냥 가 버렸어. 영안으로 봐야 보이지 살 눈으로 보면 거지여 병신이고. 똥도 못 가리는데 지극한 고통을 겪고 있는데 그렇게 기뻐하더라는 거야. 4차원 세계에 사는 사람이여. 영으로 사는 사람이여. 살눈으로는 안 보이는거여.”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 영눈으로 볼 때 모든 사람이, 특히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억울한 일을 당하며 신음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이 보내주시는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영눈으로 볼 때 비로소 그들이 하느님의 존엄한 아들 딸이라는 영성적 진리가 더 잘 보입니다. 이 영의 눈으로 하느님을 관상하는 것처럼 사람들, 가족들, 이웃들, 시민들을 관상하는 기쁨을 우리 가운데 강생하시고 우리 가운데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신 예수님과 함께 더욱 깊고 충만하게 우리의 삶 속에 육화시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그들의 바닥으로서 그들과 함께 있어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시면서 당신의 빛을 우리의 영에 충만하게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 우리 시대에 요청되는 “예언적 복지”의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 무등의 영성에 기초하여 너를 하느님의 자녀로 알고 사는 복지를 저는 “예언적 복지”라고 부르는데요, 이 또한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이런 무등의 영성과 예언적 복지를 실천하는 축복을 우리 교회 모든 구성원들이, 우리 신앙 공동체의 모든 분들이 충만하게 누리실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건건(乾乾 )에서 곤곤(坤坤 )을 지나 다시 건건(乾乾) 에 이르신 건건곤곤 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온전히 우리 존재의 바닥으로 내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하나로 이어주신, 온 존재의 바닥이신 주님께서 우리 에게 청하십니다. “바닥들의 바닥(坤坤)을 돌보십시오. 비우고 비워서() 내가 사랑하는 모든 존재에게 집이 되어 주고 품이 되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들이 아버지 하느님을 숨 쉴 수 있게 해주십시오.”

우리 가운데 살러 오신 아기 예수님의 고운 숨이 하느님의 온 창조물과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위로와 평안의 원천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새 해에 다시 기쁘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