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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저는 ‘엘비스 프레슬리’ 신부입니다


글 허진혁 바오로 신부 | 사회복지법인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차장

 

*대구가톨릭요양원(구 대구가톨릭치매센타)에서 원목신부로 근무하던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코로나19가 심화되면서 많은 것들이 막막해졌지만 집단 거주 시설인 요양원의 원목 신부인 제 입장에서 제일 큰 걱정은 엄습해 오는 우울감, 불안감, 그리고 전반적으로 침체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직원들뿐만 아니라 어르신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나마 출퇴근이라도 하는 직 원들과는 달리 어르신들은 외출 및 면회가 전면적으로 차단되었고, 건물 밖으로 잠시 나가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운 분위기였으니 어르신들이 체감하는 어려움은 말로 다 못할 정도였습니다. 상황은 저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사제관 숙소가 요양원 건물 내부에 있기에 저 역시 자연스럽게 격리 아닌 격리 생활을 하는 입장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어떻게 해서라도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고 싶어서 “원내 방송 DJ 프로젝트” 후속 계획(지난 11월호 참조) 으로 각층 순회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기타를 둘러 메고 홀에서 노래를 불렀고, 함께 동행했던 사회복지사팀은 탬버린을 흔들고 소고를 두드렸습니다. 성가뿐만 아니라 가요, 트로트 등등 주로 어르신들께서 좋아하시는 노래를 불러드렸는데, 기왕 하는 거 뭔가 좀더 즐거운 요소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추가적으로 가발과 행사용 반짝이 옷을 구입했습니다. 그야말로 깜짝 이벤트였지요. 하지만 막상 반짝이 옷을 입고 가발을 쓰려니 약간의 망설임과 함께 ‘이렇게까지 해도 될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점점 가라앉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면 그 만큼의 대척점에 선 신선한(?) 자극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무대 복장의 완성인 가발을 비장한 마음으로 뒤집어썼습니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아이언맨이 자신의 수트를 착용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지만 막상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일단 한번 크게 웃고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오늘은 엘비스 프레슬리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당시만 해도 길어야 한두 달이면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을까 싶어서 저는 네 개의 다른 종류의 가발을 준비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백발 할머니 가발 등 사순기간 동안 한 주씩 각기 다른 가발을 사용하고, 마지막 부활절에는 ‘코로나19의 종식을 선포하는 예수님’ 콘셉트로 예수님 가발(?)을 쓰려 했던 나름의 기획이었습니다. 그렇게 ‘순회공연’이라는 코로나19 극복 2차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계획으로는 모두 다섯 개의 각층 홀에서만(홀까지 나오실 수 있는 분들 대상) 공연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 문제로 그나마 홀까지도 나오지 못하시고 각방 침상에 누워 계신 어르신들 입장을 생각해 보니 속으로 얼마나 답답하실까 싶었습니다. ‘밖에서 무언가 흥겨운 소리가 들려오기는 한데, 과연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라며 말이지요. 결국 저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또 설사 한두 곡을 부를지언정 각방의 어르신을 모두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침상에 누워계신 어르신 한 분 한 분께 노래를 불러드리면서 저는 한 가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분명 그 전에는 제가 아무리 인사를 드려도 별 반응이 없이 그저 눈만 껌벅-하시던 어르신께서 제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드리자 환하게 웃으시며 박수를 치시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셨고, 심지어 어떤 분들은 눈물까지 흘리셨습니다. 옛 기억이 떠올라서 그러셨는지 아니면 단순히 고마워서 그러셨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어르신들의 반응에 저는 뭉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질적인 가치에 기반한 효율성과 효용성이 우선시되는 현대세계에서 어쩌면 가장 소외된 이들이라고 볼 수 있는 어르신들이시지만 그중에서도 침상에만 누워계신 어르신들은 가장 소외된 이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마음먹었습니다. ‘아, 이거 앞으로도 계속해야겠다.’

우리는 눈으로도 입으로도 사랑할 수 있고, 손으로도 사랑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발이 움직이는 사랑인 듯합니다. 발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나머지는 시작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하늘 끝에서 땅끝까지 내려오신 분이시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분명 사랑은 우리의 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봅니다.

어느덧 한 달에 한번 있는 어르신 생신 잔치가 다가왔습니다. 평소 같으면 풍물패 공연, 색소폰 및 아코디언 연주 등 다양한 공연 봉사팀이 와서 신명나는 시간을 가졌을 텐데 이젠 그마저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다들 걱정이 태산이었지요.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직원 각자가 그동안 꽁꽁 숨겨둔 비장의 무기(?)를 꺼냈던 것이지요. 우선 원장이셨던 정석수(유스티노) 신부님은 평소 연습해 온 바이올린 연주를, 저는 기타를, 파견 나온 신학생은 피아노를, 그 밖에 다른 직원들은 아코디언, 하모니카, 함께 준비한 율동과 춤, 노래를… 다른 누군가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만의 잔치였기 때문에 예전보다 훨씬 더 즐겁고 풍성한 공연이 되었습니다. 어르신들과 직원들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 트로트 메들리에 맞춰 관광버스 춤을 추던 그때 그 순간을 떠올려보면 그게 바로 기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죠.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 예수님을 따라나서느라 배를 쫄쫄 굶던 수천 명의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나눔의 기적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줄 수 있느냐가 아닌, 지금 내가 가진 작은 것을 나누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지 물질적인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