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여는 글
온고지신(溫故知新)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월간 〈빛〉 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얼마 전부터 박경리 선생님의 소설 『토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그러다 영 읽지 못할 거 같아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기로 있습니다. 역시 대가의 글은 흡인력이 있었습니다. 아직 초반이라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다 백여 년 전 당시 서민들의 삶에 대한 묘사가 제게는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먹고살기조차 팍팍했던 삶, 반상 제도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머슴살이의 설움과 양반의 횡포, 그 안에서도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보듬어 주는 정이 마음을 따스하게 해 주는 것을 느낍니다. 그 시절, 서민들의 삶은 어찌 그리 가난하고 힘겨웠는지요. 우리 교구 백주년을 기념해 낸 사진집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나 분도수도회의 역사를 담은 『분도통사』에 나온 사진을 봐도, 당시 서민들의 가난한 삶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면 불과 몇 십 년 전의 모습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긴, 꼭 그런 자료를 봐야만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 어린 시절만 떠올려 봐도 지금에 비하면 정말 가난한 삶이었으니까요.

 

우리는 참 많이 부유해졌고, 우리 삶은 참 많이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부유해졌다고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고 가난하다고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어쩌면 인생은 공평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 사회의 물질적 풍요는 많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 개인은 희생되었고,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사회에 대한 반발로 개인주의가 팽배해졌습니다. 하지만 지독한 개인주의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으니,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고립감과 외로움이 그것입니다. 현대 젊은이들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직접 사람을 대면하는 것은 불편하고 싫은데, 그렇다고 혼자인 외로움은 견디기 힘든 겁니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 이웃과 나누는 소소한 정이 온갖 역경을 이겨낼 힘을 주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오늘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1)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지요. 여기서 ‘온(溫)’이라는 글자는 갑골문에서 보면, 사람이 큰 목욕통에 들어가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그 주변으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따뜻하다’, ‘데우다’라는 뜻이 있고, 더 나아가 ‘익히다’, ‘구하다’, ‘학습하다’라는 뜻이 나왔습니다. 푹 데쳐 익힌다()는 뜻으로도 같이 쓰였습니다. 그러니 ‘온고지신’이란 말은, 옛날의 것을 제대로 배워 익혀서 그 뜻을 바로 깨달아 새로운 것을 알아 나간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지요. 우리의 과거를 제대로 돌아보고 거기서 깨달은 것을 나에게 맞게 익혀 나간다면, 새로운 세상이 오고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답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우리가 살아온 삶을 돌아본다면 새로운 세상의 변화에도 잘 맞춰 나갈 수 있겠지요.

 

그동안 『빛』잡지에서 수고해 주신 편집장이 퇴임을 하십니다. 오랜 시간 '빛'을 만들어 오신 분이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편집을 맡아 주실 신부님이 새로 오셨습니다. 『빛』잡지도 이제 새로운 시기를 맞았습니다. 과거를 돌아보고(溫故), 새로운 ‘빛’을 밝혀 주기를(知新) 기대해 봅니다.

 

1) 『논어(論語)』, 「위정(爲政)」, 11.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