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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추모(追慕)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월간 〈빛〉 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때론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잊지 않고 기억해 주기만 한다면 그 존재는 우리 마음 속에서 되살아나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거란다.”

 

이희우의 소설 『길 위의 토요일』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이렇게 기억한다는 것, 특히 세상을 떠난 분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를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참 쓸쓸한 일이지 만 많은 이가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한다면,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되살아나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이달 14일은 故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님께서 선종하신 지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대주교님을 추모하기 위해 이달 9일 오후 5시에 범어대성당에서 추모음악제가 열리고, 14일에는 군위묘원과 성모당에서 추모미사가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상황이 엄중한 시기라 큰 행사를 열지는 못하지만 간소하고 조용하게 추모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추모(追慕)’라는 말은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추(造)’는 ‘쫓다, 따르다’라는 뜻이며, ‘모(慕)’는 ‘그리다, 뒤를 따르다, 사모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추모한다는 것은, 단순히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며 기리는 행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 그분의 뜻을 기억하고 그 뜻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이문희 대주교님을 추모하는 것은 그분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그분의 뜻을 우리가 제대로 깨달아 삶으로 실천하려는 노력을 뜻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대주교님께서 우리 마음속에서 되살아나 영원한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대주교님의 유고집을 준비하다가 「새싹」이라는 시를 접했습니다. 춥고 어두운 겨울과 코로나19의 암울한 시기를 떠나보내고, 따스한 새싹이 움트며 봄이 찾아오듯이 우리 마음에도 희망의 새싹이 자라나기를 바라며 대주교님의 시를 소개해 드립니다.

 

새싹1)

 

이제 시작하는 봄,

어린 살색이 바람에 흔들린다

 

큰 나뭇가지 끝마다

안온한 생명이 솟아오른다

 

왜 이렇게도 귀여운가

오늘따라 입맞추고 싶은 새싹

 

평생 처음 새싹을 보고 반해서

가슴 밑바닥이 떨린다

 

1) 이문희, 『아득한 여로』, 문학세계사, 2009.